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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영글 Apr 26. 2024

백화수복

오래 살면서 복을 누려라

“9시도 이른데 무슨 8시야. 제사가 장난이야?”

“식구들 다 모이면 그냥 지내면 되는 거지 시간이 그렇게 중요해? 다들 내일 출근해야 되고 애들 학교도 가야 하는데 좀 합리적으로 삽시다. 시대가 바뀌면 엄마도 좀 바뀌어봐.”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니야. 누가 제사를 그렇게 일찍 지내!”

“생각해 봐. 말이 8시지, 제사 지내고 정리하고 밥 먹고 그거 다 치우고 집에 가면 11시 12시야. 다음 날 생각 안 하냐고.”

“그럴 거면 제사는 뭐 하러 지내!”

“그럼 지내지 말까? 난 솔직히 안 지내도 상관없어. 엄마가 하자고 하니까 그냥 하는 거지.”

“술 먹고 늦게 들어가는 건 되고, 1년에 한 번 있는 아버지 제사인데 그거 하나 못해줘?"


굶주린 새끼를 뒤로 한 채 사슴 한 마리를 가운데 마주 보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사자와 호랑이처럼 팽팽했던 두 사람의 기싸움은 암사자의 감정 호소로 일방적으로 기울었다. 워낙 믿음과 형식을 중요시 여기는 시어머니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본인이 피곤해서 그런 아들의 싸움은 매년 한 번씩 돌아오는 시아버지 기일에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다. 십 년 넘게 싸웠는데 둘 중 하나가 지는 척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두 사람은 얼마나 닮았는지 절대 양보하는 법이 없다. 이쪽 말도 맞고 저쪽 말도 맞으니 누가 이기든 크게 상관은 없지만 어차피 이기지도 못할 싸움에 매년 도발하는 그의 모습은 혹 며느리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오해를 살까 봐 조금 초조하다. 나는 그저 방관하고 있는 제 3자일 뿐인데.


@픽사베이


“그냥 8시 반에 지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시누이의 무심한 목소리에 두 사람의 줄다리기는 끝이 났다. 사자와 호랑이가 기싸움을 하는 동안 사슴을 뜯어먹는 하이에나처럼 조용히 제사 준비를 하고 있는 시누이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살포시 올려줬다.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제 자리를 되찾아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능숙한 조교처럼 빠른 속도로 착착 일을 진행하는 시어머니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괜히 눈치를 봤다. 멀쩡한 빈 접시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기만 하는 훈련병 같은 며느리는 얼굴도 뵌 적 없는 시아버지의 제사를 본인이 준비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입 밖으로 뱉을 용기는 없었다. 그저 내가 죽으면 맛없는 정종대신 좋아하는 맥주와 살아있는 우리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전이나 나물 따위 대신 초밥과 떡볶이가 올라왔으면 좋겠고, 집에서 네다섯 시간 걸리는 시댁 선산이 아닌 아이들이 놀러 오는 마음으로 가볍게 쉬었다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역시나 그 말 또한 입 안에서만 옴짝달싹 거렸다.

사실 제사라는 게 누굴 위한 건지 잘 모르겠다. 종교에 따라 상을 따로 차리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종갓집이라며 한복에 갓 까지 챙겨 쓰고 온 친척이 모여 음식을 향해 한참 엎드려 있는 집도 있다. 정말 조상 잘 만난 사람들은 명절에 해외여행을 가고 그저 그런 사람들은 부부싸움을 하며 시골을 간다고 한다. 좁은 땅덩어리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렇게나 다르다.




쪼르르. 정종을 주전자에 채우는 소리가 들리면 준비가 거의 끝난 셈이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은색 주전자는 얼마나 정성스럽게 보관을 하셨는지 늘 깨끗했다. 이건 당신의 것이라며 밥그릇 세트를 따로 넣어둔 상자에서 같은 모양의 그릇을 꺼내 20여 년 전 그녀만 남겨두고 떠나버린 남편을 위해 밥을 담는다. 그림움을 꾹꾹 눌러 담듯이 하얀 쌀밥을 가득 채워 담았다. 살아계셨을 때 떡과 생선을 좋아하셨다며 모양의 흐트러짐 없이 찐 생선과 포슬포슬 온기가 남아있는 떡을 자칫 먼지라도 묻을까 조심스레 옮겨 담아 아들에게 전한다. 나이 마흔이 훌쩍 넘어서도 엄마에게 큰소리치는 아들을 보셨으면 그가 중학생 때처럼 산 정상을 다녀오라는 벌을 내리셨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픽사베이


그는 아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지나가는 어린아이만 봐도 너무 예뻐해 아마 살아계셨다면 이 집 손주들은 땅바닥에 발이 닿지도 못할 정도로 늘 안고 다니셨을 거라는 친척들의 말에 아이들의 크는 모습을 혼자 볼 수밖에 없는 그녀는 마음이 쓸쓸하다. 그를 닮은 아들과 딸, 그리고 그들을 닮은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를 떠올린다. 설날 한복을 입고 세배를 할 때면 높이 뛰어올라 바닥에 무릎을 꽝 부딪히던 장난꾸러기 첫 손주는 훌쩍 자라 할아버지 제사상에 술잔을 올린다. 자기도 하고 싶다고 떼를 쓰는 막내를 달래는 손녀도 제법 언니 티가 났다. 피곤함이 얼굴 가득 채워지다 못해 넘쳐 흐르던 사위는 내려오는 눈꺼풀에 잔뜩 힘을 주면서 장모님 말씀이 다 맞다고 살갑게 편을 들어주다 음식을 나르는 딸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제기를  받아 대신 옮겨준다. 당신 딸이 시집을 잘 간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 예쁘기도 한 것이 새삼 아들과 비교가 됐다. 떼잉, 며느리에게 못할 짓을 한 것도 같다.  

남편 대신 그녀가 모든 모습을 눈에 담고 있는 동안 침묵 속에 옷깃이 스치는 소리만 들린다. 우리의 인연을 확인이라도 하듯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요란하다. 소란스럽게 장난을 치던 아이들마저 조용해지면 천정이 내려앉기라도 한 듯 공기마저 무거워진다. 딸랑딸랑 풍경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그윽한 향 냄새가 그를 반기는 것 같기도 하다.

“할아버지가 오셨을까요?”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막둥이 손녀가 그녀의 손바닥 안에 다섯 개의 작은 손가락을 밀어 넣으며 물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를 끌어안손녀의 작은 몸이 가득 담겨 든든한 위로가 되어주는 듯했다.

“아이고, 화장실 좀 가야겠네. 늙으니 화장실을 왜 이렇게 자주 가는 거야.”

물어본 사람도 듣는 사람도 없는 혼잣말을 허공에 주절거리며 자리를 비운다. 품 안에 있던 손녀의 크기만큼이나 뻥 뚫려버린 것 같은 그움이 차올라 코끝이 빨개졌다.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익숙해질 수가 없다.




아들의 대학 졸업식날 사진에 그는 없었다. 드레스를 입은 너무나 예뻤던 딸은 아들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했고, 일찍부터 가장의 자리에 앉은 아들의 피곤한 얼굴 안쓰러움에 미안하기까지 했다. 엄마의 칠순이라고 자식들이 만들어준 생일상에서도 비어있는 옆 자리를 손으로 매만지며 휴대폰 속 저장되어 있는 그의 사진이 떠올라 눈물 차오르기도 했다. 함께 눈물을 흘려주는 딸을 보며 눈물을 닦아야 했지만 그립고 또 그리운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 혹 자식들이 서운한 소리를 할 때면 한없이 작아지는 스스로의 모습에 그리움이 사무치게 밀려와 ‘할아버지는 왜 돌가셨어요?’라고 묻는 손주들의 질문에도 목구멍에 무언가가 탁 걸려 아무 소리도 뱉어낼 수 없었고, 몇 시간의 외출을 마치고 들어온 깜깜한 집의 차가운 어둠은 무척이나 시렸다. 시간이 흐르면 채워질 줄 알았던 빈 잔은 여전히 비어있는 채였다.



사람의 마음의 크기는 그 사람만 알 수 있어 겪어보지 않은 내가 감히 담을 수 없기에 그녀의 마음을 함부로 달래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오래 살면서 복을 누리라는 술의 이름을 빌려 그녀의 비어버린 잔에 조금 술을 채워봤다. 하염없이 빈 잔만 바라보고 있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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