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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바 Jun 18. 2024

[ep.8]혼자보다 여럿이

크루런의 매력

내 달리기는 러닝머신 위에서 만들어졌다.

5km 마라톤을 겁 없이 신청하고 처음 뛰어본 날,

채 1km도 다 뛰지 못하고 맹렬히 돌아가는 러닝머신을 멈춰 세웠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몇 년 동안 몇 번의 마라톤을 뛰면서도 밖에서 달린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나는 길치이다.



길눈도 어두운 데다 방향치이기까지.

길을 잃어버리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혼자서 야외 달리기를 한다는 것은 나에겐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는 러닝머신은

오랜 시간 달릴 수는 있게 해 주지만,

내가 나의 달리기를 스스로 컨트롤한다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마라톤 대회에서는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으며, 햇살도 뜨거울 뿐만 아니라 내 달리기 속도가 '머신'처럼 일정하지 못하다. 몇 번의 대회를 거칠수록 인위적인 달리기보다 실전에 가까운 달리기 환경에 목이 말랐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문득 들어간 당*마켓에서 보물을 발견했다.

< 러닝크루 >

600명도 넘는 인원이 모인 크루가 있는 것이다,

그것도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모여서 달리는!

서울신문 하프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들어간 달리기 크루는 거의 매일마다 달리기 스케줄이 있었다.

3~10km까지 다양하게, 30분에서 1시간까지 일정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함께 러닝을 하고,

마라톤 대회가 있으면 같이 으쌰으쌰 신청도 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내가 찾던 거네!



길을 잃고 어디로 뛰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리는 나에게 꼭 맞는 모임.

너무 반가운 마음에 크루에 들어갔던 그날 1시간 달리기 모임에 참석해 6  00 페이스로 즐겁게 달렸다.

늘 혼자서 러닝머신에서 TV만 보며 뛰다가

여럿이서 서로 응원해 주며 한강변을 뛰자니

없던 힘도 솟아나는 느낌!


우리 크루 모여라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 정도는 크루에 나가 뛰는 중이다.

한강의 시원한 강바람을 쐬며 달리고 나니 이젠 러닝머신은 재미가 없어 안녕, 작별을 고했다.

보통 저녁에 러닝 일정이 잡히는데, 저녁에 갈 수 없는 날엔 아침에 혼자 강변을 달린다.

이제 페이스 조절하는 연습도 해보고,

랩타임 조절하는 연습도 해보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중.

전보다 더 전문적으로 달리기를 배워가는 느낌이랄까?

인스타 피드가 달리기로 도배되고 있는 중이다.


한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장점을 가진 크루런의 유일한 단점.

어쩔 수 없이 눈에 들어오는 장비들.



갖고 싶다...



러너용 워치, 신기만 하면 저절로 달리게 해 준다는 운동화, 싱글렛, 운동복 등등.

눈을 감아야 해..

안 보인다  안 보인다  보인다  보인다  잘 보인다.....

결국 가민 워치를 사고야 말았다.

네. 앞으로 더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크루 달리기를 하면서 몇 번 뵌 분과 나란히 달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ㅇㅇ 마라톤 신청하셨어요?"

"남산 업힐 훈련 나오세요~"

"인터벌 연습을 하시고.."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내 직업 정체성에 잠시 혼란이 온다.

(근데 다 해야 할 것만 같다. 세뇌가 무섭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이렇게 매력적인 보물을 또 하나 발견했다.

덕분에 내 삶이 또 이렇게 한 스푼 윤택해졌다.

아마 꽤 오랫동안 크루런의 매력에 풍덩 빠질 것 같다.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달리기'라는 노래가 귓가에 머문다.


이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아마 이미 달릴 준비가 되어있으신 분일 수도!

같이 달려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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