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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위너코치 May 11. 2019

20대와 40대의 정체성 찾기, 그 차이점은?

인생의 2차 성장을 위한 첫 번째 원칙- 정체성 확립하기

앞에서 마흔 이후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삶의 방식에 대해 포스팅했는데요.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책에서 소개하는 ‘마흔 이후 인생의 2차 성장을 이루기 위한 6가지 원칙’ 중 오늘은 첫 번째 원칙에 대해서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기”입니다.



마흔에 정체성을 고민한다고?


네 그랬습니다. 제가 20대 때만 해도 40대에 저의 정체성을 고민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왠걸요. 저는 오히려 더 심각하게 저의 정체성을 고민 중입니다.ㅋ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게 의미 있는 삶일까? 나는 왜 사나?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저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저보다 어린 친구들에게는 선뜻 이야기하지 못할 고민이기도 합니다. 내 나이쯤에는 뭔가 안정적인 면모를 보여줘야만 할 거 같은 인식 때문예요.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나만 하는 게 아니었구나 싶어서 공감이 갔어요.  

정체성 확립은 보통은 10대 20대의 주된 과제로 인식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자신을 끊임없이 재규정하며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2차 성장을 위한 필수 요소라고 말합니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에서는 전에 없던 새로운 성향을 띠게 되고 자신에 대한 인식 또한 확대하고 재정의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20대에 만들어지는 정체성과 40대 이후에 만들어가야 하는 정체성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20대의 정체성 vs 40대의 정체성


20대 때의 정체성 찾기와 40대 때의 정체성 찾기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20대의 정체성은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가정, 학교, 직장에서 각자 얻게 된 역할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정체성을 형성하지만, 마흔 이후에는 사회와 타협했던 정체성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과거의 성취로부터 자신을 풀어줘라


정체성? 하면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직업, 직함, 사회가 규정하는 그 무엇이 정체성이 되어 있는 것이죠. 그것을 정체성으로 규정해버리면 은퇴 후에는 결국 초라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흔 이전에 정체성을 구축하면서 거두었던 성공, 지금까지 나의 삶을 끌어왔던 정신적 모델, 습관, 역할들 속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내면을 새롭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죠. 그 이야기가 완전히 공감이 되었습니다.


사회적 지위도, 직업도, 더 이상 계속 할 수 없는 날이 온다면? 나의 정체성은? 책에서 말한 것처럼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해질 거 같아요. 

20대 때는 사회가 규정하는 000이라는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달려왔다면, 2차 성장을 보여준 사람들은 그것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 새롭게 정체성을 만들어 나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이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믿음은 과연 맞을까?


새로운 정체성을 수립하는 데 큰 걸림돌 중의 하나는 “젊음을 최고로 여기는 사회의 인식, 그래서 나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라고 말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매력이 없어진다고 여기고, 나이에서 오는 성숙함을 평가절하하는 문화는 우리의 노력을 좌절시킵니다.

몇 살이세요? 누가 물어보면 서른일곱 넘어가면서부터는 이야기하기가 꺼려졌어요.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하는 태도”가 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장애가 되어온 것이죠.


저명한 노인학 학자 제임스 바이렌 박사는 <나이 듦에 대한 그릇된 관념>에 동조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설명합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내용이 신경에 저장되고, 뇌는 이렇게 학습된 내용을 신경의 나머지 부분에 전달하고, 우리의 행동과 발달에 영향을 미칩니다. 

성인의 자아실현과 발달에 관한 탐구 프로그램을 만든 게이 루스 박사 또한 “우리를 위축시키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진정한 자기 모습을 잃어버리면서 그 세월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회가 심어준 나이에 대한 낡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 제2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 들어가며 변화하는 외모에 대해 소극적 수용이 아닌 능동적으로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중 매체의 메시지는 진실이 아니예요. 당신은 지금보다 젊었을 때의 자신이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때는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이 많았고, 자신이 정확히 누구인지도 몰랐고, 느긋해지기도 어려웠고, 사고의 깊이도 없었죠. 아름다움이란 외모보다는 정서와 더 연관되어 있어요. 젊음이 귀엽긴 하죠. 하지만 아름다움의 경우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빛날 수 있어요. 젊음에 비해 훨씬 깊이가 있으니까요.


중년이 되어서야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했다는 헬렌과의 인터뷰 내용인데요. “아름다움은 젊음의 전유물이라는 대중적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한 헬렌의 대답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긍정적이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면, 자신의 외모에 자부심을 느껴야 하며 문화적 우상들에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것이지요.



내 안의 어린아이를 인정하기


아이 같은 어른을 키덜트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내 안에 어린아이를 인정하는 것이 균형잡힌 정체성을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말합니다.


인류학자인 애실리 몬테규의 연구를 소개하는데요.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유아기의 유치한 특성들을 평생 지니고 삽니다. 두상 모양부터 몸의 크기 등 유아기에 해당하는 특성들을 전 과정 내내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이것을 유형 성숙이라고 부르는데, 신체적인 특성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유아적 특성을 가지고 성숙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성인이 되어서도 아이처럼 지식을 갈구하고 놀이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지요. 몬테규는 유형성숙이 건강한 발달에 적용된다고 말합니다. 

어린 아이의 특성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유지함으로써 인간은 평생토록 매일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 내용이 신선했습니다. 


“모든 성인들의 삶에는 어린아이가 한 명 숨어 있다. 영원한 어린이, 늘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고, 그러나 결코 완성되지는 않으며, 끝없이 보살펴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교육을 시켜줄 것을 요구하는 어린아이가 우리 안에 숨어 있다”고 믿었다.”_ 칼 융


칼 융 역시 자기 내면의 어린아이를 다시 일깨우는 것이 궁극적인 성공의 척도라고 말했습니다. 


책에서는 평생 자신이 가진 어린아이 같은 특성을 홀대해온 50대 공무원 매튜와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자신 안의 어린 아이를 억압하고 있던 것을 알고 삶의 방식을 조금씩 조정하게 되었다고 해요. 사람들과 보다 친밀한 교류를 나누고자 하고, 자주 웃으려고 노력하고, 일보다 사람을 중시하고, 여가 활동을 위한 시간을 좀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 대다수는 완벽한 배우자로, 완벽한 부모로, 완벽한 직장인으로… 완벽하게 정체성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매튜는 스스로를 실수도 하고,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고, 발전하고 탐구하고 발견할 여지가 아직도 많은 어린아이로 보는 것이 자유와 평화를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야말로 제 자신으로 돌아온 기분이에요. 그동안 너무 일과 성공에만 집착해왔어요 이제 본질적인 것에 좀 더 가까워졌다고 할까요. 이제야 제가 내적으로 성숙해지는 느낌입니다._ 매튜


호기심, 독창성, 상상력, 즐거움, 흥분, 웃음, 장난기, 배움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 실수를 통해 배우려는 마음, 감정의 솔직함, 자발성, 현재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태도, 오래도록 변치 않을 인간관계에 대한 열망….. 


저도 가만 보면 제 안의 어린아이를 참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이 나이에 어떻게…. 이 나이에 뭘…. 하면서요. 저의 관념에 가로막혀 죽어 있던 어린아이를 다시 깨워야겠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


어린아이를 인정하는 것과 더불어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의 일부분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을 인정하는 것은 삶을 더 소중하게 만들지요.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상실이 뒤따릅니다. 마흔 이후에 정체성은 나이 들수록 젊어지는 것과 늙어가는 과정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이죠. 


이 시대를 융합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마흔을 넘어 새롭게 찾게 되는 정체성은 융합의 정체성이다 싶었습니다. 과거를 인정하되 과거 속에 갇히지 않고, 내 안의 어린아이를 인정하되 나이 들어가며 겪게 되는 상실 또한 인정하며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기. 


우리가 나아갈 방향과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선택해야만 비로소 앞에 놓이게 된다고 책에서는 강조합니다. 우리 인생의 전성기를 위해서 거기에 맞는 정체성을 재창조해볼까요? 아이처럼 실수해도 괜찮으니까요.


마흔의 우리를 위축시키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고리타분한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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