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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위너코치 Oct 19. 2019

칠십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행복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3년차 요양보호사 엄마 이야기

그래도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떤 말끝에 엄마가 한 말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기분도 좋았지만 왜 그렇게 느낄까? 궁금해졌습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엄마는 1950년에 남원의 어느 산골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23살에 결혼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 온갖 고생을 하며 딸 셋을 키워냈습니다.

파출부, 만화가게, 연탄가게, 세탁소.... 돌아보면 고생하신 모습밖에 안 떠오르네요.


세월이 흘러 흘렀고, 어느새 언니가 결혼을 하고 조카들을 낳았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언니를 돕고자 10년 넘게 조카들을 돌봐온 엄마....

그러나 무엇이든 영원한 일은 없습니다.


언니가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면서, 조카들을 돌봐야 할 일도 없어졌고 적적한 시기가 시작됐습니다.


"할 일이 없으니까 찾았지. 뭔가 해야 하니까.
가만히 있으면 사람 사는 게 아니지."


엄마는 어떻게 어떻게 수소문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3년 전의 일입니다.

한달간 학원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가서 배우고, 어찌어찌 자격증을 땄지만 일자리를 구하기는 어려웠다고 합니다.

(* 요양보호사 교육원 한달 수강비는 40만원이었고. 매년 2번의 시험이 있다고 합니다.

같이 수강한 학생이 40명이었는데, 엄마의 나이가 가장 많은 편이었다고 합니다.)


계속 자격증을 가지고 요양보호사 구하는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그 정성이 통했는지 몇 달 만에 드디어 첫 직장을 구했습니다. 요즘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4시간씩 일을 합니다.


"할머니 방 치우고, 똥오줌 못 가리니까 기저귀 갈아주고, 목욕 시켜주고, 안마도 해주고, 운동도 시켜드리고, 밥 차려주고 하는 거지.
주말에 안 가면 똥오줌을 못 가리니까 지저분해 있고 그래. 그럼 그거 다 치우고, 씻겨드리고 하지."


요양보호사의 일이 고되거나 지저분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런 일 아니면 엄마 나이에 누가 오라고 하겠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지.
일하니까 마음도 편하고, 매달 돈도 꼬박꼬박 들어오고 얼마나 좋아.
예전에 장사할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해.
엄마 젊었을 때 이런 게 있는 줄 알았으면 이걸 하면 됐는데.
배운 기술도 없고 해서, 할줄도 모르는 장사 하면서 초조하게 살았지.
지금은 세월이 좋아졌어."


요양보호사 시급은 만원. 일 다니고 하려면 자신도 꾸며야 한다며, 그 돈으로 화장품도 사고 본인을 위한 옷도 삽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서만 돈을 써온 엄마에게 찾아온 놀라운 변화 중의 하나입니다.


"학원에서 한달 배운 걸로는 제대로 요양보호사를 하기 어렵다"며 이것저것 배우기도 합니다. 최근에 배우기 시작한 것은 발마사지. 할머니들 발마사지를 해드리기 위해서 배우기 시작한 겁니다.


"발마사지 강사가 그러더라고. 어떻게 그러냐고...
방금 가르쳐준 거를 어떻게 그렇게 바로 까먹냐고.
가르쳐주고 해보라고 하면 방금 배운 건데도 기억이 안 나. 앞이 깜깜해."


"그래도 한두 가지는 남지 않을까 해서 계속 배워.
여기 누르면 눈에 좋고, 여기 누르면 머리에 좋고, 여기를 흔들어주면 어디에 좋고...
그래도 한두 개는 남으니까."


엄마가 평생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 하나가 절에 다니는 거였습니다. 절에 다니면서 봉사활동도 하고, 불교대학에도 4년째 다니며 배우고 있습니다.


"불교대학에서 배운 것도 자꾸 잊어버리기는 하는데.
한 가지 요즘 공부하는 걸 말하자면 ‘초점 맞추기’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자기 삶이 달라져.
채널 9번을 틀면 9번이 나오듯이, 자기가 어떻게 삶을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지.
 불교 공부는 계속 하고 싶어.
안 그러면 인생이 먹고 자는 것밖에 안 되니까 마음을 계속 닦아야지."


들으면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평생 공부하고, 봉사하고, 일하라” 칠십세 할머니 버전의 이야기라고 할까요.


자식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아름답게 인생을 마무리하는 게 바람이라는 엄마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불경을 읽고 아침 운동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운동을 안 하면 할머니를 일으키지도 못해.
먼저 보살폈던 할머니는 이렇게 뚱뚱한데, 일으켜서 식사도 하게 하고 해야 하잖아.
준비하지 않으면 못해. 뭔가 하려면 준비가 있어야 하지.
엄마가 가서 조금이라도 나아졌다 싶어야 보호자가 엄마를 쓸 거 아니야”


칠십이라는 나이.... 지금의 저에게는 참 멀게 느껴집니다.

마흔이라는 나이도 어느새 훌쩍 저에게 찾아왔듯, 칠십도 그렇게 찾아올지 모르겠습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십년, 이십년 후에 지금의 저를 저는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초점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맞추고, 초조함을 내려놓고 좀 더 용기를 내어 걸어가봐야겠습니다.


“지금이 젤로 편해. 아무 걱정이 없으니까.
아빠도 시비 안 걸지. 아빠가 요즘에는 웬만하면 져주더라고.
사람들이 얼굴 좋아졌다고 해.
니그 어렸을 때 생각을 조금만 바꿔도 됐는데.
이렇게 살 수 있는 때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그렇게 초조하게 살지는 않았을 거 같아.”


"용기란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두려움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_ <마녀체력>(이영미 저) 중에서


칠십 세 나이에 두려움도 있을 거고 불안함도 있겠지만, 용기를 내어 일할 자리를 찾고, 배우고 또 배우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엄마의 이야기를 쓰며 이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저에게도 용기를 주는 엄마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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