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부터 마흔 즈음 사람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온라인 독서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선정한 책이 <익숙한 것과의 결별>(구본형 저)이었는데요.
마흔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싶어서였습니다.
제가 마흔 즈음 많은 고민을 하다 보니 느꼈던 것이, 마흔 이전의 삶이 '사회에서 원하는 나'를 만들기 위한 삶이었다면, 마흔 이후의 삶은 '내 스스로가 진짜 살고 싶은 삶'을 만드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려면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겠더라고요.
책에 보면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할 다섯 가지'라는 섹션이 나옵니다.
그 섹션에 나온 내용 중 하나가 '나의 묘비명을 어떻게 남기고 싶은지 정해보고,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작성'해 보는 건데요.
지난 9월 여행을 갔던 베를린의 모습. 유럽 여행은 처음이었는데, 가는 곳마다 다 멋지게만 느껴졌다. 베를린대성당에서 내려다본 베를린 시내 모습. 날씨가 맑았다가 갑자기 흐렸다가 다시 맑았다가.
나는 어떤 묘비명을 남기길 원하지?
내가 내 인생에서 꼭 원하는 것들은 무엇이지?
저도 한번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졌습니다.
그런 시간을 갖고 나면 많은 생각들은 있지만, 뭔가 구체화되지 않고 있는 삶의 방향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될 거 같았거든요.
그런 시간도 가질 겸 겸사겸사해서, 지난 추석 연휴 때 베를린 여행을 떠났습니다.
주요 준비물은, 노트와 펜.
비행기 안에서 우선 노트에다가 끄적끄적 적어보았습니다.
내 묘비명은..... 음.... 처음에는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모습
노트에 되는대로 끄적이다 바깥 한번 바라봤다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내가 사는 곳이 점 하나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참 아등바등 살았구나, 생각하며 다시 끄적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것들도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냥 적는 것만으로 재밌더라고요.
근방 슈퍼에서 산 하이네켄 맥주.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 조금 넘는 가격으로 엄청 맥주값이 쌌다.
베를린을 떠나는 마지막 날, 맥주 하나를 사들고 왔습니다.
분위기 있는 재즈음악을 틀고...
그동안 끄적여온 묘비명 완성!
하고 싶은 일 리스트도 완성!
적어놓고 보니, 삶의 우선순위가 다시 정리가 되었습니다.
맨날 급한 일 처리한다며 미뤄두었던 중요한 일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이제는 급한 일들 때문에 정작 중요한 일들을 뒤로 미뤄놓지 말자 싶었습니다.
그날 적은 묘비명을, 스마트폰에 담아놓았습니다.
종종 다시 보면, 순간적으로 놀랍니다. 아, 맞다. 내 묘비명이 이거였지.
"00000 하는 삶을 살았던 000,
우주에서 왔다가 우주로 돌아가다."
저는 제 이름으로 된 묘지를 만들 생각이 없기 때문에 제 기록 속에만 남아 있을 묘비명입니다.
이 기록도 저의 육신과 함께 한줌의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겠지요.
자연으로 돌아가는 날.... 후회 없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마음을 편하게 내려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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