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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박사엄마 Dec 15. 2020

장애인이라고? 아냐, 절대 그럴 리 없어.

내 아이의 장애 마주하기 1단계 : 부정하기  

"아기가 주수보다 작네요. 고기 좀 많이 드세요."


  둘째는 뱃속부터 작았다. 임신 중기 때부터 아기가 작으니 고기를 좀 많이 먹으라는 의사의 채근을 들었다. 잘 먹히지 않는 고기를 억지로 먹어 봐도 계속 나만 찌고 아기는 아주 더디게 컸다. 주수를 꽉 채워 낳았는데도 2.5킬로. 아주 야리야리했다. 병원에서 조리원으로 옮길 때에는 아기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고 큰 병원에 가 보라 했다. 그래서 나는 조리원으로, 남편은 아기 데리고 대학병원으로 각각 흩어져야 했다. 별일 아니겠지 하고 갔다가 이것저것 검사해야 한다고 해서 신생아 중환자실에 아기를 두고 남편만 돌아왔을 때 나는 울었다.

  심장에 구멍이 덜 막혔다고 했다. 위치가 좋아서 저절로 잘 막힐 것 같으니 정기 검진만 잘 오면 된다고 했다. 6개월 때, 구멍이 잘 막혔고 이제 심장 때문에는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기뻤다. 이제 잘 먹이고 따뜻하게 보살피면 문제없이 잘 클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성장과 발달이 더뎌 6개월임에도 몸무게 5킬로 미만에 뒤집기도 안 됐고 장난감에 손을 뻗지도 않았지만, 심장 문제가 해결됐으니 앞으로 쑥쑥 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작고 느리니 주변의 격려가 쏟아졌다. 세상에 느린 애들이 잘 큰 사례는 왜 이렇게도 많은지...... 미숙아로 태어나 두 돌에 뒤집고 다섯 살에 걸어서 지금은 유치원 선생님이 된 시가 친척 동생부터 시작해서 발달이 느려서 걱정했는데 지금은 잘 걷고 말하고 유치원 잘 다닌다는 동생 친구의 아이... 워낙 느려서 다섯 살에 걸었다는 유명 연예인까지. 그렇게 느린 아이도 있다더라, 그래도 다 잘 커서 결혼도 하고 잘 살고 있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사실 당시 나는 워낙 무지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좋은 사례들을 많이 들려주었고, 나는 더더욱 걱정하지 않고 멍청할 만큼 긍정적으로 살고 있었다.

  당시 박사 받은 지 딱 1년 된 새내기 시간강사였는데, 한창 일이 많이 들어올 때라 일을 놓을 수도 없었다. 거절하면 그대로 나가떨어지는, 고용 안정성이 매우 떨어지는 직종이기에 2월에 아기 낳고 3월부터 바로 대학 강단에 나갔으며, 8월부터는 나보다 고용 안정성이 높은 정규직 회사원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어 6개월 간 아이를 돌봤다. 6개월만 남편이 휴직을 하면 둘째도 거의 돌쯤 되기 때문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내가 강의를 좀 줄여서 어떻게든 둘이서 두 아이를 키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둘째는 1년이 다 되도록 여전히 백일 아가 같았고, 나는 그 사이 (비정규직, 비전임, 강의전담, 여전히 불안정한) 교수로 취직이 되어 도저히 일을 줄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믿을 건 엄마뿐. 우리는 친정에 합가 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멍청했다. '모성'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 엄마가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 키울 것이고 이제 우리는 안전하다 생각했다.




  돌 지나 어느 날, 둘째는 열이 오르며 온 몸이 경직되는 열 경기를 했다. 이후 두 번째 열 경기로 응급실에 실려 갔던 날, 뇌파 검사를 하기로 예약을 잡고 왔더랬다. 하지만 예약된 검사일이 다가오기도 전에 둘째는 다시 한번 열 경기를 했고 폐렴이 심해 입원을 해야 했다. 입원한 김에 우리는 각종 검사를 실시했는데, 뇌파, 뇌 MRI, 유전자 검사 등 필요한 검사는 그때 다 한 것 같다. 다른 검사에서는 이상 소견이 없었고, MRI 상 뇌가 살짝 위축되어 있고 백질이 연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원인은 알 수 없고 "상세 불명의 발달장애입니다. 제가 더 이상 뭔가 해 줄 건 없네요."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상냥하게 미소 짓고 감사하다고 하고 나왔더랬다.

  병실에 아픈 아이와 단 둘이 있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그 오만 갖가지 생각은 굳이 여기에 적을 필요도 없을 만큼 흔하디 흔한 지리멸렬한 것이다. 그래, 일단 알아나 보자. 이런 검사들을 대체 왜 해야 하는 것인지 알아나 보자는 심산으로 나는 스마트폰을 켜고 '뇌파 검사'를 검색했다.


뇌파... 경기... 경련... 영아연축... 뇌전증... 약...
경련약을 복용하면 발달이 더 늦어진다...?


  뭔 소리야? 덜컥 겁이 났다. 그래, 그래도 경련약은 안 먹어도 된다고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나는 계속 검색을 이어 갔다. '발달장애', '뇌 위축', '뇌 백질'...... 그러다 느린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흘러들어 갔는데, 카페 글들은 모르는 말로 가득했다. 나 나름 국문과 박산데 온통 모르는 말들뿐이었다.


빨리 재활의학과에 가 보세요... 재활 대기 걸어야 해요...
재활치료는 일찍 시작할수록 좋아요... 원인이 뭐든 답은 재활밖에 없어요...


  그래? 재활이라고? 재활치료는 또 뭐야? 대기는 어떻게 하는 거야? 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재활병원... 사설 센터... 복지관...?
물리치료... 작업치료... 감각통합치료... 보바스... 보이타...?
입원 재활... 낮병동... 외래... 홈티... 대기... 대기... 대기...
재활은 장기전이에요...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어려웠다. 정말 모르겠더라.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아니,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평화롭던 내 일상을 뒤집어 놓을, 나를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그놈의 '재활치료'라는 것에 대해서 그냥 여전히 모른 채 살고 싶었던 것 같다. 대수롭지 않게 하나둘 글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어느새 지하 1층, 지하 2층... 지하 100층... 지하...... 어느 캄캄한 곳에 도착해 있었다. 마음이 먼저 빛도 공기도 없는 땅 속 어딘가로 파고 들어가 내 몸뚱아리까지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떨어지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길 만큼 강한 힘으로 말이다.

  

 뇌에 작은 점 하나만 있어도 뇌병변이에요...
 발달장애는 지적 장애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나뉘는데...
 장애 등록하고 아이 복지카드 받았어요... 가슴이 찢어지네요...
 우리 아이 장애인 만든 거 같아 속상해 미치겠어요...


  잠깐. 장애인? 장애인이라고? 이렇게 쪼끄맣고 귀여운 아이가 장애인이라고? 장애인이 되는 거라고?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절대 그럴 리 없다. 말도 안 된다. 정말 말도 안 된다.

  하자. 해. 재활. 물리치료든 작업치료든 하자. 하면 좋아지겠지. 금방 따라잡을 거야. 이렇게 멀쩡한데 무슨 장애인이야? 말도 안 돼. 무슨. 절대 아니지. 우리 애는 그들 중 하나가 아니야. 우린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이 카페 다시는 들어오나 봐라.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 했던가? 나는 수없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사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아이가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당시 미디어로만 장애인을 접한 나의 편협한 인식에는 장애인은 '우리'랑은 다른, 불쌍하고 도와줘야 하는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고, 그래서 두려웠고 무서웠기에 더욱 강하게 부정했다. 미디어의 힘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겪어 보지도 않은 장애인, 혹은 장애 가족의 삶을 불행할 거라 미리 예단하고 지레 겁먹고 이리도 벌벌 떨게 만들다니.  

  2018 늦봄,  아이의 장애를 처음으로 마주했던 잔인한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나는 아이의 장애를 금세 받아들였다. 내 맘이야 어쨌든,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인정이 빨라서 좋긴 하지만, 그 다음 단계인 끝없는 질문, "왜?"에서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더 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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