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유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2025)
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일본 제172회(2024년 하반기)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신인 작가인 스즈키 유이(鈴木結生)의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다만 이런 류의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은 줄거리가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 듯 하다). 괴테 연구 일인자인 히로바 도이치 교수 부부와 딸(노리카)은 부부의 결혼25주년 기념으로 이탈리아 식당에서 저녁을 한다. 도이치는 홍차 티백에 인쇄된 글("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Goethe,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을 발견하고 그 명언이 실재로 괴테가 한 말인지를 찾기를 시작한다. 결국 가족은 함께 명언의 출처를 찾기 위해 독일로 떠나고 가족들은 '혼연일체'로 사랑의 의미 찾기가 이어진다.
괴테의 <파우스트>,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를 이미 읽은 독자라면 더 빠르게 읽히거나 바르게 읽힐 수 있는 소설인 것 같다.
이 소설은 명언 같은 말이 권위를 가지고 사용될 때, 우리가 쉽게 믿게 되는 현실을 비판함과 동시에, 명언 찾기라는 '말'을 통해 가족 및 지인과의 삶과 관계는 더욱 사랑스러워짐을 이야기한다.
스즈키 유이(鈴木結生)는 2001년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났다. 현재 세이난가쿠인대학(西南学院大学) 외국어학연구과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다. 연간 1,000권의 책을 읽는 독서광으로, 고전문학을 폭넓게 탐독해 왔다.
어린 시절 후쿠시마로 이주한 후 동일본 대지진을 직접 경험하며 언어와 진실에 대한 깊은 관심을 품게 되어,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소설을 쓴 것이 문학의 출발점이었다.
2024년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책이 필요한가」로 제10회 하야시 후미코 문학상 가작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자 첫 장편소설로, 실제로 저자의 부모님 결혼기념일 식사 중 홍차 티백에 적힌 명언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했다. 이 작품으로 제172회(2024년 하반기)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작가로는 처음으로 아쿠타가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괴테(Goethe, 1749 ~1832) 연구 일인자인 히로바 도이치 교수 부부와 딸(노리카)은 부부의 결혼25주년 기념으로 이탈리아 식당에서 저녁을 한다. 도이치는 홍차 티백에 인쇄된 글("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 Goethe -")을 발견하고는 정말 괴테가 이런 말을 한 것인지 고심 하면서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말을 떠올린다.
딸은 러닝을, 아내는 정원 만들기 영상 시청을, 도이치는 TV 강연 준비 등 '각자의 취미'에 몰두 한다.
도이치는 시카리 교수와의 소통을 통해 명언이 전승형, 요약형, 위작형 등이 있음을 알게 된다. 도이치는 시카리 교수의 부탁으로 제자 쓰즈키를 지도하며 괴테와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간다.
도이치는 알고 있는 학계 동료 등 82명에게 해당 글의 출처가 어디인지 묻는 이메일을 보낸다. 관련 꿈을 꾸고 도이치는 학자로서 부담을 가진채 방송용 원고 마지막에 그 미확인된 괴테의 명언을 추가한다. 그리고 자유를 느낀다.
도이치 가족은 연말이 되어 센다이에 있는 처가를 방문한다. 도이치는 노리카가 남자친구를 사귄지 1년이 지나서야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난다. 장인이자 스승인 독문학자 운테이 만나부에게도 그 명언을 물어보지만 명확한 답을 듣지 못한다. 친구 시키리가 '날조'로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후 시키리를 만나고 딸 노리카도 추천한 <문예공화국> 읽기를 추천한다.
시카리 교수의 논문 날조와 도용이 문제가 된다. 이상하게도 시카리는 사전에 제자들의 논문을 지도해 줄 것을 이미 부탁해 놓은 상태다. 도이치는 방송 녹화를 진행하는데 마무리 부분에서 당황스런 질문(왜 <파우스트>가 희극인지?)을 받고, 갑자기 괴테가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라는 말을 했다고 언급한다. 이를 걱정하는 도이츠를 본 딸은 자기 방으로 안내한다. 방은 온통 명언집과 관련된 책 뿐이고 명언 사이트도 보여준다. 그 사이트를 설계한 사람인 딸의 남자친구는 다름 아닌 가미야 쓰즈키였다.
쓰즈키가 확인한 출처는 아내 아키코가 알고있는 독일인 베버였으며, 히로바 가족과 쓰즈키는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베버를 만나러 간다. 베버는 그 미확인된 괴테의 명언과 유사한 쾨테의 친필 편지를 보여준다. 이어 히로바 가족과 쓰즈키는 도이치의 독일 친구인 요한을 만나기 위해 바이마르로 간다.
시카리의 논문 날조와 도용 문제는 시카리 자신이 만들어낸 자작극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 미확인된 괴테의 명언은 사실로 확인된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13, 도이치의 건배사
(메피스토펠레스)
포도송이는 포도나무에.
염소에겐 두 개의 뿔.
포도는 액체, 덩굴은 나무.
나무 탁자에서 포도주 나지 말란 법 있나.
자연을 투시하는 심오한 눈초리!
여기 기적이 일어나니 믿을지어다!
(<파우스트> 2284-2289, 정서웅 역, 민음사)
17, "아버지의 당나귀를 찾으러 갔다가 왕국을 발견했다"
소설 속에서 <빌헬름 마이스터> 속 구절이라 언급되어 있는데,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를 아직 읽지 않은 나로서는 이 문장이 소설 전체의 메세지를 제시하는 표현 중 하나란 것을 믿을 수 밖에 없다. 개인적이며 사소한 목적을 찾다가 전혀 다른 높은 삶의 차원을 찾는 과정을 언급하는 것이라면 이 소설의 전반적 맥락과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19, “사랑의 손길을 받으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At the touch of love, everyone becomes a poet.)(플라톤, <향연>)
내가 가지고 있는 책,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2013, 황문수 역, 문예출판사>을 보면 <향연, Symposium>(193p ~ 292p)이 포함되어 있다. 비극 시인인 아가톤(Agathon)이 그의 집에서 잔치를 열고 있는 중, 그동안 사랑의 신(에로스)에 대한 시인들의 찬가가 없다면서 사랑을 찬미하는 연설을 하게 된다. 파이드로스(에로스에 대한 무조건적 찬사-덕, 용기), 파우사니아스(사랑은 천상적 사랑(Ourania)과 지상적 사랑(Pandemos)이 있는데 올바르게 사랑하게 하는 천상적 사랑만이 선하고 찬양받을 만함), 에리크시마코스(사랑은 우주·자연·조화의 힘), 아리스토파네스(사랑은 원래처럼 한몸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 아가톤, 소크라테스의 연설이 이어진다.
여기서 아가톤은 "전에는 뮤즈를 몰랐더라도 에로스가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240p)고 말한다. 즉,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그 명언이다.
참고로, 소크라테스는 디오티마라는 여인의
입을 빌려 "에로스는 풍요의 신 포로스와 궁핍의 신 페니아 사이에 태어났으므로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의 중간에 있는 정령, 즉 '반신반인'이라고 주장하고, '사랑이란 선한 것을 영원히 소유하려는 욕구'이며 '사랑의 대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생식'이고, '사랑의 최고 목적은 진정한 아름다움에 접근하며 영혼을 영원하게 만드는 지혜의 탄생'이라고 말한다. 여담이지만 마지막쯤 소크라테스의 남자 애인인 알키비아데스가 등장하여 소크라테스와의 애정 행위를 설명하며 아가톤과 소크라테스를 갈라놓으려 한다.
굳이 정확히 말하면 인용문 “사랑의 손길을 받으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플라톤이 아닌 아가톤의 견해이다.
20, 피터스 피시(Pester's fish)
베드로가 낚은 물고기 입에 든 돈으로 세금을 내게 했다는 일화라 되어 있는데, 마태복음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피터(Peter)는 예수 그리스도의 12사도 중 첫 번째 사도이자 가톨릭의 초대 교황인 베드로(Petrus)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7:27)
25, 괴테, "신은 스페인어로, 여자는 이탈리아어로, 남자는 프랑스어로, 말은 독일어로 말한다"
이 말도 괴테가 한 말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점점 괴테가 말했음직한 명언들이 제시된다. 실제로 당시 유렵의 언어관은 이렇다고 한다;
- 스페인어: 장엄함, 신학·종교의 언어
- 이탈리아어: 음악성, 감정, 사랑
- 프랑스어: 사교, 이성, 남성적 담론
- 독일어: 철학, 논증, 사유
이후 괴테의 책을 더 읽어보고 유사한 부문이나 맥락을 찾아보도록 한다.
27,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
2000년, 아사히신문에서 '지난 1천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을 조사했을 때 당당히 1위로 선정된 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 ~ 1916).
1905년에 소세키가 처음 발표한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고양이의 눈을 통해 당시 지식인들의 모습을 풍자와 유머가 넘치는 문체로 그려낸다. 소세키의 작가로서의 명성을 단숨에 드높인 대표작이다. 호프만의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1819)으로 부터의 표절 시비도 있는 책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몬>에 이어 읽을 계획인 일본 소설.
36, 파우스트적 충동(Faustian impulse)
모든 것을 알고 체험하여 자아를 무한으로 확대하려는 인간의 근본적 욕구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유래했으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지식과 경험에 대한 갈망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개념은 19세기 문학 및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바이런은 <맨프레드 (Manfred)>(1817)를 통한 “Byronic hero(바이런적 영웅)”, 즉 세계를 거부하고 절대적 강렬한 삶을 갈망하는 영웅을 창조했고, 발자크 (Honoré de Balzac, 1799–1850)는 <고리오 영감> 등을 통해 괴테의 형이상학적 파우스트를 현실 세계의 돈·권력·욕망으로 치환하여 근대 도시·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세속적 파우스트”를 제시한 바 있다. 자세한 정리는 나중에 별도로 할 숙제를 가지고 가자.
42, 마그리트의 그림 <헤겔의 휴일>
이에 대한 도움이 될만한 글은 Brunch의 작가 '날고싶은 자작나무 려원'의 글을 참조해 보자(헤겔의 휴일)
46, 굴렌 굴드(Glenn Gould), <골드베르크 변주곡, Goldberg Variations>
20여년전 내가 클래식 감상에 막 입문했을 때 절친한 유선배는 바하(Johann Sebastian Bach, 1685 ~ 1750)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최고 연주가라며 굴렌 굴드(Glenn Gould, 1932 ~ 1982)를 소개해 준 기억이 난다. 아마 그 음반을 내게 선물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그러나 음악의 어머니인 헨델은 결혼조차 못했고 아버지인 바흐는 자식을 20명이나 낳았지'. 갑자기 클래식을 소리가 아닌 글로 배우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이 책 속의 아키코 처럼 내가 보유한 글렌 굴드의 음반도 1981년 재녹음 음반이다.(Bach- Goldberg Variations, BWV 988 (1981 Recording)-Glenn Gould)([HD] Bach's Goldberg Variations [Glenn Gould, 1981 record] (BWV 988))
바흐가 붙인 원래 명칭은 ‘2단 건반 클라비어를 위한 여러 변주곡을 가진 아리아’이며, 골드베르크라는 이름은 카이저링크 백작의 클라비어 연주자였던 요한 고틀리프 골드베르크에서 유래한 것이다. 혹자는 ‘수면제 음악’ 이라는 평이 있는데 포르켈의 전기에만 등장하며 정설로 인정받는지는 모르겠다.
풍월당 주인이었던(2007년 당시는 직접 방문한 기억도 나는데, 지금도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정신과 전문의 박종호님의 저서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에는 '2. 여름, 싱그러운 꿈과 낭만을 위하여' 장에 '밤의 숨결을 깨우는 피아노의 정수'로 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대한 이야기(93 ~ 101p)를 전한다. 20년만에 추억의 선배와 노래와 책을 다시 선물해 준 스즈키 유이에게 감사한다.
49,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 ~ 1941)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을 이끈 작가로 순수와 타락을 넘어 초월의 길로 가는 예술가의 성장을 그린 자전적 교양소설인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6)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모범에 따라 배열된 18가지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율리시스, Ulysses>(1922)가 유명하다. 이후 독서 목록에 추가한다.
56, 괴테, <서동시집>
괴테의 시 중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는 아마도 'Gingko biloba(은행나무 잎)'일 것이다. 괴테가 60대 중반이던 1814년경, 프랑크푸르트 근처에서 당시 30세였던 아름다운 여인 마리안네 폰 빌레메르를 만난다. 마리안네는 지적이고 예술적 감성이 풍부한 여성으로, 괴테와 깊은 정신적 교감과 우정을 나누게 되는데,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한 사랑과 존경을 느꼈지만, 괴테는 이미 나이가 많고, 마리안네는 기혼 여성이었기 때문에 현실적인 연인 관계로 발전할 수는 없었던 괴테는 이 시를 그녀에게 헌사한다.
“이 잎은 나무의 것인가, 아니면 둘인가?
하나이면서도 나뉜 듯, 나뉘었으나 하나인 듯.
이런 것이 내 마음이여,
너를 향한 내 사랑도 그러하네.”
61, "카프카가 보다 현실적으로 말했듯이 괴테는 우리 인간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말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오류를 낸 것일까? 괴테의 특징들, 즉 균형, 완결성, 고전적 통일, 삶과 작품의 조화 등은 카프카와 절대로 어울릴 수 없는 특징이어서 카프카가 그렇게 말했을 리 없다. 이게 중요한 문제라면 더 찾아볼 일이겠지만...
61, "상반되는 두 가지 말을 함께 하는 것은 무슬림의 철학적 관습"
이게 일반적인 관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베로에스(Averroes, 아랍어명 이븐 루슈드 Ibn Rushd, 1126 ~ 1198)의 ‘이중 진리설’(Double Truth)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진리는 철학적 진리외 종교적 진리가 있는데 , 철학적 진리는 이성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고 종교적 진리는 계시에 의해 제시되는 것으로 서로 다른 해석 규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62, 오컬티즘(Occultism)
오컬티즘은 미신(superstition), 종교(religion), 신비주의(mysticism)와 달리 '감춰진 것, 숨겨진 것(occult = hidden)'이라는 어원에서 출발하여, 일반적인 과학적·합리적 인식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고 여겨진 세계, 즉 초자연적·비가시적 힘, 영적 에너지, 비밀 지식을 탐구하는 사상·실천·문화적 움직임을 통칭하는 말이다. 오컬티즘은 단순한 '괴이한 믿음'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철학적 구조를 갖는다.
- 세계는 숨겨진 질서로 구성되어 있다
- 그 질서는 상징과 비밀 지식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 인간은 영적 변형을 통해 더 높은 단계로 변화할 수 있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 너머에 또 다른 비가시적 질서가 존재한다고 믿고, 이를 의식(ritual), 상징(symbol), 비의적 지식(esoteric knowledge)을 통해 접속하려 하는 세계관을 가진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작가나 사상가로는 예이츠(William B. Yeats), 슈타이너(Rudolf Steiner), 융(Carl Gustav Jung) 등을 들 수 있는데, 예이츠는 오컬티즘을 예술 창조의 원천으로 삼은 시인으로, 슈타이너는 오컬티즘을 학문적·사회적 시스템으로 제도화한 인물로, 융은 오컬티즘을 무의식 연구와 심리학적 모델로 전환한 학자로 평가된다. 언뜻 보면 랄프 왈도 애머슨의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확인해 보니 모두 “보이는 세계를 넘어서는 차원”에 관심을 둔 사조이지만, 오컬티즘은 ‘숨겨진 지식에의 접근’을 추구하고, 초월주의는 ‘자기 내부에서 보편적 진리를 발견’하는것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74,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55 ~ 240),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
대표적인 요약형 명언으로 두 표현이 요약되어 전해지는 것이라 한다.
- “prorsus credibile est, quia ineptum est” (전혀 믿을 만하다, 왜냐하면 이성의 기준에서는 부적절해 보이기 때문이다)
- “certum est, quia impossibile est” (확실하다, 왜냐하면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교리는 이성의 기준으로 보면 안된다는, 즉 인간 이성의 자기합리화로 신앙을 축소하는 태도를 거부한 것라 한다. 아베로에스(Averroes, 아랍어명 이븐 루슈드 Ibn Rushd, 1126 ~ 1198)의 ‘이중 진리설’(Double Truth)과 결국 유사한 주장이 아닐까?
75,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
"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너 한 길이 굽어 꺾어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이 시는 “남들과 다른 길을 가라, 그것이 성공을 만든다”는 자기계발적 메시지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지만, 실재는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과거 선택을 돌아볼 때 ‘내가 특별한 길을 걸었다’고 기억을 재구성하며 합리화하고 미화하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즉, 인생은 선택과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 선택에 의미를 나중에 부여하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 속의 시카리 교수도 '전문을 읽지 않으면 진짜 의미를 알수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75, 뉴턴의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1676년 로버트 후크(Robert Hooke)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내가 남들보다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자신의 성취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전 시대의 학자·사상가·과학자들이 쌓아온 지식과 업적 위에서 가능했다는 겸손한 인식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마치 2024.12.3 한국의 계엄을 이제라도 해결 국면으로 갈 수 있는 이유도 과거 한국의 계엄을 경험하고 극복한 선배들의 덕분이 있지 않겠는가? 다만, 로버트 후크가 실제로 키가 작고 등이 굽은 신체적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둔 풍자적 멘트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니, 뉴턴의 이중성은 참으로 놀랍다.
76,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루마니아 태생의 작가·강연자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엘리 위젤(Elie Wiesel, 1928 ~ 2016)은 "The opposite of love is not hate, it’s indifference"라는 말로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서 가족을 잃고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침묵과 무관심이 얼마나 큰 악을 불러오는지 평생 경고해 온것으로 알려져 있다.
77, 발레리, "단순한 것은 항상 허위다. 단순하지 않은 것은 쓸모가 없다"
이 말은 프랑스의 시인·철학적 산문가 폴 발레리(Paul Valéry, 1871 ~ 1945)가 한 말로, 어떤 주제가 너무 단순하게 표현되면 그 단순성 때문에 사실을 잃을 위험이 있게 되고, 또 현실을 온전히 설명하려고 복잡하게 만들면 그 결과는 너무 복잡해서 실제로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단순함은 목표가 아니라, 복잡함을 통과한 뒤에 얻어지는 정제된 결과물”이기에 “사유는 단순함과 복잡함 사이에서 끝없이 왕복하며, 실용적 의미가 될 수 있도록 작동 가능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지금 내가 근무하는 회사는 AI를 회사 업무에 접목하여 어떻게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이 경우 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직원에게 물어보면 이렇게 답변하는 친구가 꼭 있다. "남들도 다 AI를 하니까 우리도 AI를 사업에 접목해야 한다." 반드시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장난하는 분위기 같기도 하고 약간 불쾌해진다.
이를 발레리적 사고가 반영된 답변이라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적절한 AI 도구를 도입해서 6개월 안에 비용을 5% 줄일 수 있는 개선 방안을 찾고, 그 효과성이 입증되면 다음 단계로 확대한다.”
91, 나쓰메 소세키의 '자기본위'
나쓰메 소세키의 자기본위(自己本位)는 흔히 오해되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사회적 기준·유행하는 가치에 끌려가지 않고, 자기 내부의 기준으로 사유하고 판단하며 살아가려는 태도를 뜻한다. 그의 소설 <마음>, <산시로>, <그 후> 등은 기본위에 실패하거나, 그것을 모색하다가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여준다.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 ~ 1882)의 <자기 신뢰(Self-Reliance)>(1841)와 거의 유사한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92, 싱크리티즘 syncretism
철학이나 종교에서, 각기 다른 내용이나 전통을 지닌 여러 학파나 종파가 혼합됨.
93, 제바스티안 브란트, <바보들의 배>
중세 말기의 최대 걸작이자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그의 『바보들의 배』(1494)는 ‘우인문학’이라는 사조를 낳으며, 중세 사회를 새로운 사회로 이끈 종교개혁 및 르네상스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108,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파우스트)
이 말은 <파우스트>에서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계약 내용으로 흔히 “아름다운 순간을 사랑하라는 말” 또는 “현재에 충실하라는 교훈”이라는 뜻으로 오해받는다고 한다. 오히려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만족을 최종 목적처럼 숭배하지 말라"는 의미라 하니, <파우스트>를 정독하지 않고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116, 117,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고 (...) 실생활에서 따오든 책에서 따오든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어. 제대로 사용했는지 아닌지, 그것만이 중요하지!
125, “실감이 동반되지 않으면”
<파우스트> 제1부 〈밤〉에서 언급된 것으로 '지식만으로는 이해될 수 없고 경험되지 않는 지식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참고로, 민음사의 정서웅 역의 번역서는 "진심으로 느끼지 못한다면(534)'로 되어 있다.
126, "실수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고, 용서하는 것은 신의 일이다.”(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
'우리글진흥원'에 의하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1688~1744)가 남긴 문장이다. 포프는 이를 〈비평론 Essay on Criticism〉에 썼다. 이 경구는 흔히 앞 절 위주로 인용된다. 인간은 본래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라는 의미로 활용된다. 뒷 절에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용서는 신이 하는 일이라는 말은 남의 잘못을 용서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고, 용서하는 마음과 행위는 그토록 훌륭하다는 뜻이다. 이 문장이 담긴 〈비평론〉의 핵심 메시지는 비평가는 작품 전체를 살펴봐야지 사소한 실수를 끄집어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131, 조지 스타이너, <바벨 이후>
한국어 번역본으로는 <바벨 이후>가 아직 출간되지 않은듯 하다. 조지 스타이너는 비평의 개념을 바꿨다고 평가받는 20세기 최고의 비평가 중 한 명이자 철학자, 소설가, 시인이다. 그의 대표작 중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를 발견했다. 조지 스타이너가 1960년 프린스턴대 고등연구원으로 있던 시절 발표한 첫 비평서이자 그를 일약 대서양 양쪽의 문학계에서 주목받게 한 대표작이다. 문형배님도 <호의에 대하여>에서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로 고민했다고 하는데, 나는 이 책을 읽고 결정하기로 했다.
139, 헬렌 켈러, '워터(water)'
헬렌 켈러의 자서전 <The Story of My Life>에 나온는 단어다. 헬렌 켈러는 시각과 청각을 잃었지만 교서 설리번은 한 손에 차가운 물을 흘려보내며, 다른 손바닥에 w-a-t-e-r를 쓰고 나니, 헬렌은 다음을 ‘번쩍’ 이해한다. 교육의 본질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과 상황을 통한 기호–감각의 접속이란 것이다. 괴테의 ‘형성(Bildung)’ 입장에서 보면 세계와의 반복적 접촉 속에서 자신이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147, 스탕달, <적과 흑>
이 책 이후 내가 읽기로 한 책 중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소설 중 하나.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중 고민 중인 책.
154, 괴테, "네 노력은 사랑 속에 있어야 하고, 네 생활은 실천 속에 있어야 한다."
아쉽게도 이말도 괴테의 직접적 표현으로 확인되지는 않는다.
괴테는 “Knowing is not enough; we must apply. Willing is not enough; we must do.”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적용해야 한다.
의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는 말은 한 것으로 확인된다.
의역으로는 비슷한 의미겠지만, 저자는 계속 이런 식으로 명언의 출처를 밝히는데 수고를 들이게 하고 나에게는 절망을 준다.
<빌헬른 마이스터의 편력시대>를 읽고 다시 확인하기로 한다.
156, 모리 오가이, <무희>
Brunch의 훌륭한 작가의 글을 참조해 보자.(03화 모리 오가이, 국가와 문학 사이에 선 지식인)
158, 오에 겐자부로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1935~2023)는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소설가이자 사회활동가이다. 〈사육〉(1958)으로 그 역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1973)로 노마문예상을 수상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마라조프가의 형제들>에서의 조시마 장로의 유언이 나온다.
168, (시카리) "결국 작가나 사상가는 어딘가에서 날아온 나뭇잎 한장으로 자신의 숲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잖아"
작가나 사상가라고 해서 모든 말을 할 필요는 없고 이전의 위인들의 한마디 말을 가지고 큰 울림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183, 괴테는 <파우스트>를 '매우 진지한 농담'이라 말했다.
확인해 보면, 괴테가 직접적으로 <파우스트>를 '매우 진지한 농담'이라고 말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파우스트>가 인간 인식의 한계, 악, 구원, 자유, 신과 인간의 관계 등 매우 진지한 형이상학적 문제를 다루고 있고, 괴테와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다소 '유희적 형식'을 언급한다.
<파우스트>에는
장난, 아이러니, 희극적 요소가 의도적으로 들어 있다.
독자는 그것을 지나치게 체계적 철학서처럼 읽어서는 안 된다.
(Gespräche mit Eckermann, 1820년대)
따라서, 내용에 있어서는 진지하고, 형식에 있어서 농담이라 볼 수 있어서 후대에 정리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187, 부감하다 (俯瞰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다. 부관하다 (俯觀하다)
202, 괴테는 "금언이나 명구는 언제나 대용품이다"라고 말했다.
괴테가 직접적으로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내용적으로는 비슷한 표현에 가까운 것 같다. 예를들어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에는 "삶은 규칙으로 가르쳐질 수 없고, 오직 살아 봄으로써만 배울 수 있다."라는 의미의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규칙·격언·금언’은 경험의 결과이지, 경험의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쾨테의 소설이 교양(Bildung) 소설로 평가받는 이유라 하겠다. 내가 얼마전 읽은 <타이탄의 도구들>에는 얼마나 많은 타이탄들의 명언이 기록되었던가.([독서] 자기계발 : 타이탄의 도구들) 이 관점에서 보면 이런 류의 자기계발서는 응축물이 되어야하는 삶을 대용품의 축적으로 몰고간 것이 아닌지 염려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혹시 괴테의 "삶은 규칙으로 가르쳐질 수 없고, 오직 살아 봄으로써만 배울 수 있다." 는 이 말은 진짜 명언이므로 또 대용품으로 되어 버리는 것 아닌지...
210, 다빈치, "논쟁에서 권위를 방패로 쓰는 사람은 지성이 아니라 기억력을 쓰는 것에 불과하다."
다빈치의 <노트(수기)>에 따르면 “He who disputes by citing authority uses not his intellect, but rather his memory.”라고 되어 있는 것이 확인된다. 다만 그는 논쟁 윤리나 수사학 비판이 아니라, 자연철학과 과학적 인식 방법론의 맥락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고대 권위(아리스토텔레스 등)를 인용하는 스콜라 학자들이 관찰이나 실험 없이 텍스트 권위로 논증을 종결하는 태도를 비판했다.
220,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로베르트 슈만이 후배 피아니스트들에게 "대가의 푸가를 매일 연습하라. 바흐의 '평균율'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다."라는 충고를 남긴 바 있고, 또 한스 폰 빌로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곡이 건반 악기의 신약성경이라면, 바흐의 이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은 건반 악기의 구약성경이라고 한 비유로 유명하다.
222. (노리카) "모든 것이 말해졌어도 자기가 말하지 않으면 재미없지."
이것은 괴테가 말한 "금언이나 명구는 언제나 대용품이다"라는 말과 유사한 의미겠지만 더욱 명확한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오직 자신이 실행해서 얻는 것의 기쁨이란.
233, 헤롤드 블룸, '영향의 불안'
미국의 문학평론가이자 예일대 교수였던 해럴드 블룸(Harold Bloom, 1930–2019)은 그의 저서 <영향의 불안(The Anxiety of Influence)>에서 "위대한 선배를 읽고 배워야만 쓰기가 가능하지만, 바로 그 영향 때문에 ‘나만의 작품’을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블룸은 후대 작가가 선배를 그대로 계승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비틀어 읽는 전략, 즉 ‘수정 비율(Revisionary Ratios)’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확보한다고 한다.
1) 클리나멘(Clinamen): 선배의 길에서 살짝 벗어나기. 비틀기
2) 테세라(Tessera): 선배의 결핍을 보완한다고 주장하기. 보완
3) 케노시스(Kenosis): 선배의 장엄함을 의도적으로 낮추기. 비움
4) 다이모니자치온(Daimonization): 더 강력한 영감의 원천을 제시하기. 악마화
5) 아스케시스(Askesis): 자신과 선배를 함께 제한해 독립성 확보. 절제
6) 아포프라데스(Apophrades): 마침내 후배가 선배를 거꾸로 ‘영향’하는 단계. 귀환
239, 설령 좋은 말은 모두 연기라 해도 그 안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 연습하며 입에 붙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움을 획득하면 그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면, 말은 전부 미래로 던져진 기도다.
나의 방식대로 이렇게 이해해도 되는 것일까?
"좋은 말이 '지금' 내 삶과 행동에 일치하지 않아도 좋다.
연습하며 계속 성장하면 되니까.
그래서 지금이 아닌 미래를 향해 말한다.
지금은 부족하더라도,
내가 되고 싶은 '무엇'을 위한 '기도'로."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후기의 내용 중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의 한 대목을 차용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별도로 확인해 보도록 한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에 대하여-그것도 2000년대생 작가의 소설을 두번이나 읽다니-나에겐 좀 다양한 의미가 있다. 내가 문학 소설을 읽기로 선정하는 데는 몇가지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
우선, 그동안 문학책 일기를 그리 선호하지 않았고, 최근에 와서 고전문학 중에서 평이 좋은 책 위주로 읽는다.
둘째, 고전문학(특히 민음사)으로 소개되지 않은 일본 책은 후순위다.
마지막으로, 최근 소설 중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책을 제외하고는 후순위다.
이 책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내가 세가지 문학소설을 선정하는 상기 기준에 모두 위배된 책이다.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의 극찬으로 인해 관심이 생겼고, 저자가 젊지만 년간 1,000권의 책을 읽는 독서광으로서 큰 호기심이 생긴 것은 물론, 고전문학가 중 존경하는 '괴테'를 주제로 한 소설이라는 흥미는 나의 문학책 읽기 원칙을 깨는데 주저함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일본의 신예작가로 인해 나는 '나쓰메 소세키, 오에 겐자부로, 히라노 게이치로, 미시마 유키오' 등의 일본 소설가의 책 읽기를 시도하기로 한다.
그가 수상한 아쿠타가와상.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1892~1927)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친구이자 언론인인 기쿠치 간이 나오키상과 함께 1935년 제정한 문학상이다. 일본문학진흥회에 의해 1938년부터 수여되기 시작했다. 나오키상과 마찬가지로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수여되고 있다. 신인 작가가 쓴 순수문학 단편, 중편 작품을 대상으로 진흥회 심사위원들의 합의로 수상작이 결정된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5년부터 잠시 중단되었다가 1949년에 재개되었으며, 수상할 만한 작품이 없을 시 선정하지 않기도 한다. 내가 존경하는 일본작가인 다자이 오사무는 이 상에 욕심을 냈지만 두 번 후보로 올랐을 뿐 수상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심사위원이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다. 2025년 상반기에는 수상작이 없었다.
교보문고의 구매 리뷰를 잠시 보니 200여건 이상의 리뷰와 평점 9.4의 고평가임에도, "리뷰에 속았다", "왜 베스트 소설인지 모르겠다", "많은 인용구로 지루하고 짜증난다" 등의 악평도 보인다.
이 책은 저자가 년간 1,000권의 책을 읽을 만큼 다독자여서인지 많은 사상가의 이름과 명언, 성경구절, 심지어 몇편의 영화도 등장한다. 그런데 내가 전반적 내용을 관통하여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몇개의 인용부분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61p의 카프카 인용, 111p의 영화 <멋진 인생>, 170p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 등) 아마도 상기 한 리뷰처럼 '지루하고 짜증'나는 부분은 그런 점을 포함한 이해하기 어려운 인용들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그 이유를 더 아는 분들에게 듣고 이해받고 싶지만, 전반적인 인용은 나의 독서 스타일에 맞는 편이라 할 수 있어서 나도 구매 리뷰를 올리기로 했다.
"간간히 짜증나는 인용이 있어도 전체적 작품의 품위를 잃어버리지 않고 커다란 지적 호기심을 주는 책,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기에는 내겐 아직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에도 이 독서 때문에 훌륭한 일본 영화 한편을 감상한다. '아쿠타가와상'을 검색하다 발견한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해도>(2022)
일본 이치조 마사키 작가의 원작 소설로 한 일본 영화로서 기억, 사랑, 우정 등에 대해 한국적 감성을 가진듯한 느낌을 받은 영화인데 알고보니 지금 한국 영화(김혜영 감독)로도 리메이크되어 상영중인가 보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토루, 미치에다 슌스케 역)의 누나(마츠모토 호노카 역)는 이 책의 저자 스즈키 유이처럼 '아쿠타가와상'을 받는다. 선행성 기억상실증 환자 역할을 한 여주인공(마오리, 후쿠모토 리코 역)의 한국적 미모도 참 보기에 좋다.
마오리는 토루에게 연예의 원칙 3개를 제시한다. 그 중 세번째 원칙은 "날 정말로 좋아하지 말 것"
그러나, 마오리는 결국 토루에게 말한다. "3번째 룰을 깨도 될까?"
그에 대한 토루의 대사.
"나는 이미 한참 전에 어겼어"
이 책은 당연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괴테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 내용인데 특히 <파우스트>를 읽지 않으면 정확한 감흥을 받기 어려운 책이다. 나도 <파우스트>를 몇번이나 읽기를 시도했지만 아직도 완독하지 못한 나를 질책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괴테와 <파우스트>에 대해 빨리 알고 싶다는 조급함에 현장 수업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요즈음 Youtube 등을 통해 훌륭한 온라인 강의가 많지만 현장에서 청중들의 반응을 같이 호흡하면서 괴테를 몸으로 느끼고 싶어서일지 모르겠다.
급한 김에 일단 KOCW(Korea Open CourseWare)(대학공개강의 - KOCW)의 공개 강좌 중 '여섯 번의 특강으로 살펴보는 독일 문학, 그리고 우리(한국연구재단, 안삼환, 2013)'강의를 먼저 시청해 본다.
괴테의 권위자로 만난 안삼환 서울대 교수의 강의에 이끌려 그의 책 <괴테 그리고 그의 영원한 여성들>이란 책도 주문 신청한다.(아쉽게도 현재는 품절이다.)
가벼운 소일거리용으로 읽으려던 이 소설에서 참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배우게 한 소설이었던 것 같다.
1) 교양 또는 형성(Bildung) 소설적 특징 : '미확인된 괴테의 명언'으로 인한 생활의 변화들
- 도이치와 아내 아키코와의 관계 : '아내가 평소처럼 자신을 좋아하는 유투버가 나오는 영상을 TV로 틀자 얼른 자기 방으로 물러나 쓰즈키의 논문을 읽기 시작했다(65p)' -> 도이치는 아키코가 <친화력>에 나오는 정원을 만들었는지 묻고 다음에 보여달라고 한다.(228p)
- 문제의 명언으로 인해 딸 노리카의 방으로 5년만에 들어가 보는 아버지 도이치.(197p) "지금 서 있는 곳은 그때 그 방과 같은 곳일까?
- 도이치의 네번째 방송일, 가족 모두는 서로 다른 언어로 된 <파우스트> 읽는다.
2) '연결'이라는 과정
- 시카리 - 쓰즈키 - 노리카의 '연결'
- 헬렌 켈러의 '워터(water)'
- 도이치 - 아키코 - 베버 - 괴테
평소와 다르게 소설을 두번씩이나 이어서 읽었지만, 도이치의 친구 교수인 시카리의 표절(날조) 사건이 이 책의 전반적인 메세지와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것인지도 한참 고민을 했다.
괴테의 명언 여부는 시카리의 날조 사건으로,
괴테의 명성과 교수의 권위라는 방어막,
괴테 연구가인 도이치와 도이치와 친한 동료 교수인 시카리,
'명언을 포함한 말은 어떻게 권위가 되는가’라는 소설의 또하나의 질문을 문학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찾도록 한 것 아닐까?
한편, 몇가지 의문점이 드는 부분이 있다.
도이치 교수의 방송 녹화 중 패널의 "어째서 이 세계를 희극으로 보고 싶은 건가요?"라는 질문에 괴테가 실재로 이런 말도 했다며 그 문제의 명언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또, 도이치가 그 명언의 출처를 찾기 위해 계속 고심하고 있는 것을 알았을 딸(노리카)은 왜 자신이 운영하는 명언 사이트를 나중에야 도이치에게 알려준 것인지?
딸(노리카)가 좋아하고 집착한다며 'Let it be'를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티벡 제조회사에 먼저 출처를 물어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그 명언의 출처를 확인하겠다고 네사람이 프랑크푸르트까지 이동한다는 설정은 너무 비약이 아닌지?
중요한 장치로 사용되는 사건일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개별적인 것과 섞어있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한다.
문제가 된 명언 속 단어 'Mix'는 혼동과 혼연일체, 음식 '잼'과 '샐러드' 대비, 식당 이름 '잡탕', 음료 '칵테일', 싱크리티즘 등 섞인다는 의미가 여럿 제시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섞임의 의도적 반복을 주는 장치로 활용된 것 같다.
결국 이 소설이 의미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스스로의 이해가 부족하여 타 작가의 Brunch의 북 리뷰를 둘러보니 "그 말이 괴테의 것인게 중요한가?"라는 질문과 "좋은 말은 출처에서 오지 않는다"는 답으로 요약되어 있는 것을 본다. 좋은 리뷰에 감사드린다([북 리뷰]『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스즈키 유이). "좋은 말은 출처에서 오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말할 때 또는 지금 나에게 도움이 될 때 온다"로 연장하면 어떨까?
그렇다면, 나는 상기 [기억할 만한 단어, 문장들]을 통해 실 출처를 찾는 행위는 작가의 의도와 완전히 반한 행위를 한 것 같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행위였으니 꼭 잘못된 행위만은 아닌 것으로 스스로 위로해 본다...
아직 이런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소설은 나의 책읽기 습관에 흥미를 더해주는 것 같지는 않다. 아직 내 사고의 상태는 모더니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겠지만, 세상이 그럴 수는 있어도 내가 '이성'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비겁한 것 아닐까?
그래도 책 전반적으로 흐르는 이 소설의 특징을 더 정리해 보자. 그냥 덮기에는 계속 뭔가 찝찝하다.
1. 이 소설은 액자소설(框架小說, frame narrative)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액자 소설의 유래와 이런 형식으로 소설을 구성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중세 이전에도 <천일야화>, 조반니 보카치오 <데카메론>, 제프리 초서 <캔터배리 이야기> 등 액자소설 형식의 소설이 많이 등장한다.
근대 소설에서는 메리 셸리 <프랑캔슈타인>,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등이 있는데 중세 이전과 달리 진실을 보증하기보다 오히려 의심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한다.
액자 형식을 취하는 이유는 ;
① 이야기의 출처를 드러내기 위해
② 진실을 하나로 고정하지 않기 위해
③ 거리와 아이러니를 만들기 위해
④ 기억·기록·전승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⑤ 독자를 마지막 화자로 만들기 위해
이 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명언의 진실 자체(누가 말한 말인가?)를 언급하고 있다기 보다는 그 말이 어떻게 전해졌는가에 대한 소설로 구성한 것(④)으로 보인다.
2. 포스트모더니즘 관점에서 본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의 주요 특징은?
1) 거대 서사(meta-narrative)에 대해 불신한다. '모두에게 통하는 진리, 이성, 역사 발전, 위대한 인물 등' 대신 부분적·맥락적 진실을 강조한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제목의 의미가 이야기 전개를 통해 서서히 부정된다.
2) 진실보다 ‘담론의 과정’에 주목한다.
'괴테가 실제로 무엇을 말했는가' 보다 그 명언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에 관심이 있다.
3)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자기 서술의 한계를 드러내는 메타적 태도를 보인다.
후기에 '설령 좋은 말은 모두 연기라 해도 (...) 말은 전부 ‘미래로 던져진 기도’라는 말에서 이는 작품 전체를 스스로 상대화하는 메타적 자기 해체이다.
4) 의미는 완결되지 않고, 독자에게 해석의 책임이 이전된다.
액자 소설 형식을 통해 전해진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
2. <파우스트>는 그리스 전통으로 볼 때 비극인가, 희극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파우스트>는 그리스 연극 전통의 기준에서 볼 때 비극도, 희극도 아니다. 고전적 비극은 필연적 파국과 카타르시스를 전제로 하며, 희극은 사회적 긴장의 해소와 화해를 목표로 한다(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비극과 희극의 정의 참조). 그러나 <파우스트>의 주인공은 몰락하지 않고, 끝내 “끊임없이 노력한 자”로서 구원된다. 이는 그리스 비극에 존재하지 않는 결말 구조다. 또한 작품에는 메피스토펠레스의 풍자와 희극적 요소가 풍부하지만, 그 목적은 웃음의 해소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불안과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는 데 있으므로 희극도 아니다. 토마스 만은 괴테를 논한 여러 에세이에서 <파우스트>를 “아이러니한 세계극(ein ironisches Welttheater)”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1.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몬>
2. 괴테, <파우스트>,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
3. 밀턴, <실낙원>
4. 플라톤, <향연>
5. 나스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6. 박종호,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7. 요한 페터 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1, 2>
8. 괴테, <서동시집>(전영애 역)
9. 볼테르,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10. 스탕달, <적과 흑>
11. 오에 겐자부로,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12.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3.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14. 에라스무스, <격언집>
15. 몽테뉴, <수상록>
16.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
17. 히라노 게이치로, <한남자>
18.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19. 안삼환, <괴테 그리고 그의 영원한 여성들>
20. 괴테, <헤르만과 도로테아>, <친화력>
21.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6), <율리시스, Ulysses>(1922)
22. 제바스티안 브란트, <바보들의 배>
23. 조지 스타이너,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
1. 미키 타카히로 감독,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해도>(2022)
2. KOCW(Korea Open CourseWare), '여섯 번의 특강으로 살펴보는 독일 문학, 그리고 우리'
3. 장이모우 감독, <집으로 가는 길>(2000)
4. <다가오는 날들>
1. 플라톤 <향연>에서 제시하고 있는 '사랑'에 대한 주장의 의미와 현대적 해석
2. 파우스트적 충동이 세계 문학 및 사상사에 미친 영향과 그 한계
3. 홀로코스트 범죄에 대한 엘리 위젤과 한나 아렌트의 견해 비교
2025.12.31 ~ 2026.1.11, 한국 통탄에서 읽고 중국 上海에서 정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