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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집, 아빠가 바랬던 집

비둘기집, 해바라기

by 설애

어릴 때, 전축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중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은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라는 가사의 노래다. 가사를 검색해 보니 해바라기의 비둘기집이라는 노래다. 이 노래는 아빠가 틀었다. 아마, 그때까지 별일 없었던 우리 집에 대한 아빠의 염원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노래를 자라서도 잊지 않은 것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꿈결 같은 가사 때문이었을까?


대학생이 된 후, 나를 기특해했던 아빠와 가끔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아빠는,
된장국이 바글바글 끓고 있는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다는 것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정작 집에 오지 않는 건 아빠였는데... 국민학교 3학년쯤 나는 학교에서 좀 떨어진 친구집에 갔다가 아빠차를 발견하고 반가워서 그 옆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아빠가 나오시더니 왜 기다렸냐며 화를 내시고는 나를 차에 태우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아빠가 나를 버리고 갔으니 집으로 걸어오는데 눈물이 났다. 그 이유를 짐작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엄마의 눈물 바람, 아빠의 폭력, 부부 싸움

그 후에 일어난 일은 왜 나를 태우지 않았는지 짐작이 가능했다.

나중에 아빠에게 모르는 척, 그때 왜 나를 태우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기억나지 않는다는 청문회식 대답을 하셨다.


아빠는 그때, 딴 여자랑 자고 나온 거다.

그러니 딸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엄마에게 들킬까 봐 나를 데리고 가지도 않은 거다.


비둘기집, 웃기고 있네

이율배반이다. 지금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 시절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때는 나쁜 놈이었으니까.

나는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착하거나, 모든 사람에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럴 필요도 없다. 그리고 언제나 착하거나, 언제나 나쁘지도 않다.

가끔 나에게 착했던 아빠는 엄마에게도 가끔 착했고, 자주 나빴다.


이 글을 적고, 노래를 다시 들으니, 이가 갈린다.


[노래 들어보기]

https://youtu.be/m7 LEeRtUEQ0? si=3 y0 d1 BUZ_MhgYjHa


[가사 전문]

비둘기집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 샘터에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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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