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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꽃, 피는 의지

시 백십일

by 설애

무꽃


김선우


집 속에

집만한 것이 들어있네


여러 날 비운 집에 들어와 문을 여는데

이상하다, 누군가 놀다간 흔적

옷장을 열어보고 싱크대를 살펴봐도

흐트러진 건 없는데 마음이 떨려

주저앉아 숨 고르다 보았네


무꽃,

버리기 아까워 사발에 담아놓은

무 토막에 사슴뿔처럼 돋아난 꽃대궁


사랑을 나누었구나

스쳐지나지 못한 한소끔의 공기가

너와 머물렀구나

빈집 구석자리에 담겨

상처와 싸우는

무꽃


무꽃 피다


마경덕


비닐봉지를 열어보니, 후다닥 무언가 뛰쳐나간다. 가슴을 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꽃이다. 까만 봉지 속이 환하다. 비닐봉지에 담긴 묵은 무 한 개 꽃자루를 달고 있다. 베란다 구석에 뒹굴던 새득새득한 무. 구부정 처진 꽃대에 연보랏빛 꽃잎 달렸다. 참말 독하다.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꽃을 피웠다. 손에 얹힌 무, 몸집보다 가볍다 척, 제 무게를 놔버리지 못하고 주저주저 망설인다. 봄이 말라붙은 무 꼬랑지 쥐고 흔들어댄 모양이다. 창을 넘어와 봉다리를 풀고 무를 부추긴 모양이다.


눈을 뜨다 만 무꽃. 여기가 어디라고 덜컥, 꽃이 되었던가. 어미 살을 파먹고 꽃이 된 무꽃. 쪼그라진 젖을 물고 있는 무꽃.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꽃이 몇 개 있습니다.

파꽃, 무꽃, 고구마꽃 같이 꽃이 피기 전에 먹는 식물들의 꽃이 그러합니다. 무는 채종(씨받기)을 위해서 일부러 꽃을 키웁니다. 그런데 시인들의 무꽃은 치열하게 구석에서 혼자 피어납니다.


오늘은 저 무꽃같이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도 구석에서 조용히 피는 사람들을 응원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무꽃같은 사람들을요.


보라색 무꽃

사진 출처 : http://bit.ly/11yvoQ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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