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왕자의 웃음

웃음, 사랑으로 자라나는 순간

by 화몽
이 소년의 얼굴에 가끔 피어나는 웃음꽃은 주변을 밝히는 따스한 봄날의 햇살이다.

우리 집에는 얼음왕자가 있다. 자신만의 원칙이 확고하며 이를 기준으로 완벽함을 추구하는 왕자님은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왕자님도 동화책 속 그들처럼 평범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마다 얼음 가면은 겹겹이 쌓여갔다. 간혹 투명한 가면 뒤로 왕자님의 여린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왕자님은 놀라며 황급히 뒤로 물러난다. 눈 맞춤을 두려워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혼자의 시간을 즐기며 자신의 왕국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그와의 대화를 나누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열린 질문으로 소통을 시도해도 네 또는 아니요라는 답으로 흐지부지 대화는 끝이 난다. 대부분의 얼음왕자들이 그렇듯 그의 가슴속에는 여리지만 불씨가 남아있다. 이 소년의 얼굴에 가끔 피어나는 웃음꽃은 주변을 밝히는 따스한 봄날의 햇살이다. 수줍은 햇살 쭈니, 그는 우리 집 큰 아들이다.


집콕을 사랑하는 엄마와 두 아들에게 여름휴가는 큰 숙제이다. 낯선 곳이 주는 경험과 이가 주는 문화적 충족감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어머님의 아드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삼 인이다. 모두의 교집합에 맞춰 여행지를 선택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고등학생인 둘째 때문에 일정을 짧게 잡아 가까운 곳을 물색하고 부산의 호텔을 예약했다. 그래도 한쪽에 무게를 실어 정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쭈니의 의견을 한번 물었다. 뜨거운 여름에도 극지방의 온도를 유지하고 계신 그분과의 접점을 좀 찾아보려는 어미의 마음이랄까?


“ 부산으로 호캉스 가자. 편하게… 어때?”

“ 바닷가도 아니고 호텔 수영장 이런데 재미없어.”

“ 그래? 그럼 가고 싶은 곳 한번 생각해 볼래?”

…….

” 엄마 나 경주 가고 싶어. “

” 갑자기 웬 경주? “

” 경주월드 가고 싶어. “


어떤 스타일의 질문에도 네 '아니요.'로 답하는 절대적 재주를 가지고 있는 쭈니가 꼭 집어 가고 싶다고 말한 곳이다. 다 떨어진 운동화도 새로 사자 하면 더 신을 수 있다고 하는 쭈니다. 편의점에 먹고 싶은 간식을 사러 들어가도 1+1

아니면 돌아 나오는 무소유 그 잡채 쭈니가 가고 싶다고? 경주월드라. 네이버에 바로 물어보니 스릴이 넘치다 못해 살벌한 익스트림 놀이기구가 가득한 곳이네. 그네도 무서워 못 타는 나. 자동차만 타면 멀미 난다고 잠들어 버리는 유니. 고소공포증 있는 아빠. 우리에게는 살벌 그 자체인 경주월드를 가자고 하네. 웃프지만 왕자님의 취향을 존중해 여행지로 결정했다.


휴가 첫날은 경주의 유적들을 따라 신라의 향기에 흠뻑 빠져야 하는데 더워도 너무 덥다. 우기의 끝을 잡고 간 경주의 햇살에 숨만 쉬어도 땀이 주르륵 흐를 지경이지만 가이드께서 흥을 못 참고 다니신다. 첨성대, 대릉원, 천마총, 무령왕릉, 감은사지 석탑, 석굴암까지 돌고 나니 해가 진다. 불국사는 올라가는 날 가기로 합의 보고 호텔로 달려가 침대에 첨벙 다이빙. 내일 날씨가 좋아야 하는데. 이 더위에 경주월드 가려면 쉬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가볍게 운동을 마치고 이불 쏙 배꼽 손하고 아침으로 향했다.

90도 직각으로 떨어지는 롤러코스터 드라켄이 운행을 안 해 아쉽지만 가볍게 대관람차 타임라이더로 경주월드를 열었다. 나는 딱 이거 하나 타고 짐 순이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아 범버카도 셋이서 탔네. 둘째도 형과 함께 쉬운 편인 롤러코스터 하나 타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쭈니는 바이킹과 파에톤은 2번씩 타며 줄도 짧아 좋다며 재미있다고 했지만, 얼음 왕자님 얼굴은 차분했다. 3시쯤 되니 덥기도 하고 쭈니한테도 미안하기도 해서 크라크를 마지막으로 타고 돌아가려고 했다. 크라크는 360도 회전하는 스릴 라이드이다. 보기만 해도 아찔해 악 소리가 절로 나오는 놀이기구다. 쭈니는 줄을 섰다. 유니랑 나는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포토 존에서 기다렸다.

”엄마는 몇억을 줘도 못 타. 진짜 무섭겠다. “

” 엄마 죽지 않아. 잠시만 참아. 억이야! 억. “

” 엄마도 알지만, 그런 끔찍한 경험 자체를 돈 때문에 한다면 너무 비참하잖아. “

” 엄마 할 수 있어. 엄마가 좋아하는 빵집도 살 수 있어. “

이런 말도 안 되는 대화가 오가는 중에 쭈니가 자리에 앉았다.

” 그런데 유니야. 너 방학 때도 못 쉬고 매일 공부하러 가야 할 텐데. 미안해. 안 좋아하는 곳에 데리고 와서…“

형이 좋아하는 거 하게 해 주자고 괜찮다고 했지만 맘 한구석이 불편했다. 미안하다는 내 말에 유니가 답했다.

” 엄마, 형이 웃는다. “

” 응? 뭐라고? “

” 엄마… 형이 저렇게 웃는다고… 형이 웃어. 난 괜찮아. 형 저렇게 웃는 거 정말 오랜만에 보내.”


형이 웃잖아. 겹겹의 얼음 가면을 깨고 웃음꽃이 환히 피어났다.


형이 웃잖아. 겹겹의 얼음 가면을 깨고 웃음꽃이 환히 피어났다.

첩첩산중 촘촘히 자라난 거대한 나무들 사이에 스며든 작은 한 줄기 햇빛,

그 빛을 따라 피어난 오늘의 네 웃음은 숲을 밝히는 불씨가 되고,

그 불씨가 모여 삶의 등불이 되고, 등불은 너의 길을 비추는 빛이 된다.

빛을 타고 솟구치는 놀이기구처럼 네 꿈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거야.

마침내 구름 사이로 열린 우주 위에서 네 꿈을 펼칠 때,

그 순간 우리 함께 가장 환한 함박웃음을 짓는 거야.

사랑해. 쭈니유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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