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단콤보 단일메뉴 도시락.

내 아이의 도시락을 준비하며 느끼는 엄마의 사랑.

by 화몽

언제였던가? 어디서 보았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10살 무렵이었다. 엽서의 한면에서 쉬이 볼 수 있는 유화작품들을 보며 막연히 화가가 된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기름과 물감이 덕지덕지 묻어난 앞치마를 입고 햇살이 들어오는 작은 화실에 앉아 있는 나. 소녀의 꿈이자 희망이었다.


아빠는 묘한 교육관은 가지신 분이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자 미술대학을 가기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준비가 필요했다. 누군가는 들어오려 애쓰는 강남 8학군을 털고 H대학 근처로 이사를 갔다. 8 학군을 위해 흘러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에서는 이해할수 없다는 눈치였다. 거기서도 미술공부를 할수있는데 왜? 지금은 21세기 인데 그 옛사람들의 맹부삼천지교를 몸소 실천하시는 분이셨다. 두 아이의 부모가 된 지금도 아빠의 교육관에는 궁금증이 가득하다. 학원의 홍수속에서 그 흔한 구몬수학 한권 안 풀어본 나. 화가가 꿈이라는 딸에게 미술학원이 아닌 화가의 화실을 다니라고 해주신분. 이런 것이 참교육일지 모른다. 다만 현실적이지 못해 안타까움이 남았을뿐. 그렇다. 나는 그렇게 학원하나 다녀보지 않고 대치동 한가운데를 떠나 H여고로 전학을 갔다.

H여고 3학년에는 예체능반이라는 조금 특이한 반이 있었다. 예고가 아닌데 말이다. 그곳은 나처럼 미술, 음악, 무용등을 하는 친구들이 모아놓은 특수학급이다. 특이한 학생들이 모여 있기에 개성들이 어마무시했다. 어른의 시각에서 보자면 딴따라들의 집합소였다. 그리고 교복밖으로 보이는 가정 형편들이 넉넉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금수저 은수저는 아니어도 그녀들의 도시락통 수저들은 꽤 묵직한 편이었다. 우리집 형편이 많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나 그들이 부럽거나 내가 부족하다 느끼진 않았다. 나는 물건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제법 쿨했나보다.

여고생의 점심시간은 3교시 쉬는시간이다. 토끼눈을 한 친구는 3교시를 못넘기고 2교시 마침벨소리와 동시에 도시락 뚜껑을 깐다. 3,4교시를 내려 수면을 취한후 막상 점심 시간에는 대학 식당을 당당히 이용한다. 학주를 피하고 수많은 H대학생들의 눈치밥을 덤으로 먹어야 하는 수고가 필요했지만 배고픔을 참을순 없는 노릇. 이처럼 점심시간에 교실을 지키는 여고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나와 M, J, S에게는 꽉찬 50여분의 점심시간이 필요했다.


삼단도시락에 과일과 후식은 M, J, S에게는 기본 상차림이다. 그녀들의 도시락을 떠올려보면 J의 엄마는 영양소를 꼼꼼히 따져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과 비타민등이 빠지지 않게 식단을 구성해 주셨다. J는 과일과 후식 담당이었다. M은 덩치가 매우 큰 친구로 먹는 양이 엄청났다. M의 반찬도 매일이 찬란했다. 불고기나 꼬치, 갈비, 소세지등 고기 반찬들이 항상 한두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키가 나보다 10센치가량 큰 S는 항상 반짝거리는 외모를 뽐냈다. 몸매 관리가 중요한 친구였다. 담백한 나물류나 계란, 두부 반찬이 주를 이뤘다. 가끔은 아삭한 샐러드에 새콤달콤한 소스를 준비해왔다. 이렇게들 먹으니 쉬는시간에 도시락을 까먹는다는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점심시간 내내 먹어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나의 도시락은 친구들의 것과는 아주 조금 달랐다. 엄마의 손맛은 매우 좋은편이었다. 조미료의 단순한 맛내기보다는 푹 우려낸 엄마의 음식들은 모두들 엄지를 척 들어올릴 맛을 가졌다.또 건강했다. 다만 한가지, 엄마는 손이 컸다. 친구들이 제일 좋아하는 울 엄마표 반찬은 불고기와 계란말이, 김밥등이었다. 내 도시락 반찬통 3개속에는 일관성있는 규칙이 있었다. 첫통도 둘째동도 마지막 국통에도 불고기가 들어있거나 계란말이, 돼지불백, 소세지 볶음등의 단일 반찬이 들어가 있었다. 친구들과 거한 점심을 차려먹는다는 것을 엄마가 알게 된후 거의 매일. 밥과 하나의 반찬. 그것이 엄마의 도시락 스타일이었다. 종종 특식으로 김밥을 싸주시면 친구들의 만세를 불렀다. 대신 김밥 하나를 최소 두번에 나눠 먹어야 했다. 엄마의 김밥을 한입에먹기란 서커스의 불쑈와 흡사했따. 그 열기만큼 맛있지만 혹시 턱이 빠질지 몰라 조심해야만 했다. 다른 친구들의 알콩달콩 다채로운 도시락의 자태에 가끔 엄마에게 툴툴거리기도 했다.‘미소야, 친구들이랑 나눠 먹으면 되지’라하시며 도시락김 하나를 쑥 찔러넣어주셨다. 그날도반찬은 짭조름달콤 불고기로 3단콤보. 오죽하면 수능날 도시락은 혼자 먹음을 몇번을 강조했다. 불고기만 싸주시면 안된다고.

< 친정엄마께 사진 레시피로 메모드린 아이의 도시락 >

세상 하나뿐인 최고의 맛, 하지만 혼자 먹기 난감한 도시락을 달랑거리며 학교를 가던 소녀는 이제 두 소년들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엄마가 되었다. 요즘은 학교에서 급식이 나온다. 엄마들은 편해졌지만 도시락이 새겨주는 추억을 사라져서 아쉬움이 조금 남기도 한다. 그런데 작년 11월경부터 나는 매일 도시락을 싸게 되었다. 큰 아이가 이른 수험생의 길을 걷겠노라 결심을 했다. 저녁도시락을 준비해야만 했다. 여드름이 자라나는 사춘기 소

큰아이가 좋아하는 블루베리, 오늘 아침 엄마네 옥상텃밭에서.

년에게 너무 힘들지 않을까는 생각에 도시락에 정성을 듬뿍 담았다. 문제는 엄마표 도시락의 유통기한이 한달여 남았다는 것이었다. 1월초 북경행 비행기표를 티겟팅해놨기 때문이다. 고스란히 아이를 돌바주기로 해주신 친정엄마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오랫동안 지워졌던 학창시절의 도시락이 떠올랐다. 급하게 엄마에게 아이의 입맛을 전달해 드렸다. 나의 걱정도 컸지만 엄마의 걱정은 그 두세배였으리라. 매일 도시락을 싸며 간단한 레시피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나의 줄설명을 들으시며 손주의 도시락까지 준비하게 될지 꿈에도 몰랐다며 걱정이지만, 이를 해줄 건강과 시간이 허락됨이 감사하다셨다. 너처럼 해줄수는 없겠지만, 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준비하겠다 걱정말라고 내 등을 토닥여주셨다. 아이는 알까?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 음식은 불로 조리되는 게 아니란 것을. 준비하는 이의 애정이 음식을 조리한다는 것을.


오늘도 그렇게 친정 엄마의 도시락을 달랑거리며 아이는 학원에 간다. 엄마의 반찬과 다르지만 먹을만하다는 말을 툭 던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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