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두려워하던 일이 현실이 되는 순간

by 소도

그 해 설날 나는 남편과 발리에 있었다. 날씨가 유난히 좋았고, 해변 바로 앞에 있었던 첫 번째 숙소에서 이틀을 보내고 조금 더 한적한 두 번째 숙소에서는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며,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여유로운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명절에는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서 주로 명절 전후로 대구 부모님 댁을 가는 우리는 명절엔 짧게나마 휴가를 가곤 했다. 그래도 내심 서운해하실 엄마를 알기에 발리에 간다고 차마 이야기를 못하고 안부 전화만 드린 참이었다. 새로 오퍼를 받은 회사로 이직하기로 확정했다는 좋은 소식도 말씀드리면서, 명절에 만날 친척들 앞에서 자랑할 거리를 챙겨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그 휴가 내내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잔잔하게 깔려있었던 기억이 난다. 일도 삶도 오랜만에 참 걱정할 것 없는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이해가 되지 않던 불안감이었다. 행복이 주는 괜한 우려 같은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휴가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어느 날 퇴근길에 언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해외에서 살면서부터 나는 언니랑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주말에 한번 정도는 전화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곤 했다. 둘 다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주 중에는 전화하는 일이 잘 없기 때문에 언니에게 전화가 왔을 때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동네병원에서 간수치 검사를 했는데 그 결과가 정상범위를 많이 벗어나서 의사 선생님께서 큰 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해볼 것을 권했다고 했다.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언니가 보기에도 그 결과가 심상치가 않다고 했다. 간수치 검사 결과 가운데 한 두 개가 아니라 전체 수치가 높아진 경우는 흔치가 않고 최악의 경우 암처럼 큰 병일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우선 언니도 너무 걱정하는 목소리라 안정시키려고 아직 검사를 하기 전에 미리 나쁜 결과를 걱정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 침착하고 엄마 검사를 지켜보자 했다. 엄마는 이제 겨우 환갑을 맞으셨고, 건강한 생활 습관에, 어느 지병도 하나 없이 건강하신데 큰 병에 걸릴 가능성이 객관적으로 낮을 거라고 안심시켰다.


그다음 날 대구에 살고 계시는 엄마 아빠가 바로 서울로 오셔서 대학병원에서 CT를 비롯한 정밀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7일이 소요된다고 해서 다음 월요일 아침에 결과를 받게 될 예정이었다. 우리 모두 괜찮을 거라고 겉으로는 말했지만 초조하고 걱정 가득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을 맞았다. 출근길 회사로 걸어가는 길에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문자가 아닌 전화가 왔다는 뜻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받는 손이 덜덜 떨리고 눈물부터 왈칵 쏟아졌다. 전화를 건 언니도 제대로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담낭암이라고 했다. 암의 크기는 8센티쯤 되고 복부 전이가 있는 4기라고 보이기에 이런 경우에는 기대여명이 6개월 내외라고 했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지난 번 언니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결과가 안 좋을 것을 대비해서 간암과 같은 주요 암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평균 5년 내외의 기대수명을 갖고 있다는 글을 본 터라서 이 진단이 얼마나 예외적으로 나쁜 결과인지를 알 수가 있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을 훨씬 뛰어넘는 충격적인 결과 앞에서 우리 둘 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몰랐다.


그때부터 적어도 한 달 이상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믿을 수가 없었고,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고,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특히나 엄마는 그때까지도 어떤 아픈 증세가 있었던 게 아니라서 더욱 믿기지가 않았다. 눈 앞에 있는 엄마는 늘 그랬던 것처럼 건강해 보이는데 병원의 진단 결과가 말해주는 엄마의 상태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눈을 감으면 엄마의 몸 안에 풍선처럼 부풀어있는 8센티의 이물질이 떠올랐다.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그 덩어리가 조금씩 자라서 서서히 엄마의 복부의 장기를 잠식하고 결국 엄마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것이었다. 이 잔혹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눈물로 보냈다. 회사에 앉아있다가도 수시로 벅차올라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한참을 울다가 나오고, 길을 가다가도 어디선가 들리는 ‘엄마'하는 소리에 주저앉아 울곤 했다.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기 위해 엄마의 병에 대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시중에 나와있는 책을 읽고, 인터넷을 뒤져 정보를 찾고, 의학 저널과 진행 중인 임상실험에 대해서도 읽었다. 동시에 국내 다른 병원의 세컨드 오피니언을 들어보기로 했다. 첫 진단을 받은 병원 외에 다른 두 개의 대학병원에서도 진료를 봤다. 아주 낮은 가능성이라도 첫 진단이 오류였기를, 아니면 다른 의사에게 더 희망적인 진단 결과를 받기를 기도했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바로 내가 제일 두려워하던 일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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