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A의 케이스에 대해서 설명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세간에서 설명하는 비범 하다고 칭해지는 그런 류의 상식은 아니었다.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일반 시민들에 비해 비교적 접근이 용이했었다고나 할까.
나는 이 일을 한 지 3여 년이 되어간다.
글을 적어내며 멋쩍기 그지없지만 수습이라는 딱지도 한 번 붙여본 적 없다.
그런 어중 띤 상태는 대체로 부정적 인식을 생산할 뿐이다.
인식에 맞서 나는 취업 전선에 대해 나열하다가는 서비스(Service)를 들먹이곤 한다.
긴밀하게 서로를 '보호'하는 일 말이다.
그러니까 글을 쓰는 일 말이다.
그것은 관심을 갖고 있는 관련 종사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 분명했다.
햄버거 가게에 들러 케첩 이 외의 소스를 장황하게 열거한다고 해서 마늘 맛이 나는 디핑 소스를 공으로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평한 일에도 불만은 있기 마련이다.
햄버거를 고르는 기준도 마찬가지다.
나는 맥 도날드를 가면 항시 더블 치즈 버거나 맥 치킨을 주 메뉴로 고른다.
그것은 치즈를 취향으로 가진 내가 쿼터 파운드 치즈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맥 치킨을 먹으러 갔다 바닐라 선데 아이스크림을 먹고 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주문은 단품보다는 세트를 선호하는데 가격 면에서 훨씬 포만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햄버거를 고르는 기준이다.
소스에 대한 상식만으로 같은 맛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마늘 맛이 나는 디핑 소스를 공으로 얻을 수 있냐는 무례한 요구는 하지 않는다.
이것은 공평한 처사에 가깝지만 대게의 사람들은 이러한 일에 부사어구가 많은 수식어를 덧붙히곤 한다.
시답잖은 일에도 바람은 분다.
나는 그것이 나의 일인지 타인의 일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왜냐면 바람은 항시 부는 것이기 때문이다.
- 거 힘들지 않으세요?
- 서비스 정도로 해두죠.
어찌 되었든 서비스는 끝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