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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파이어

다이어트에 성공할 것인가? 편

by 이지속

지속은 태생이 먹둥이였다. 백 킬로에 육박하는 아빠와 77 사이즈를 입는 엄마, 기골이 장대한 종부까지 밀가루 러버, 탄수화물 중독 가족이었다. 여름이면 엄마는 밀가루 소면을 한 뭉치 삶아 고추장 양념에 참기름을 넣고 손으로 쓱쓱 비벼 대야 크기의 그릇에 면을 한 줌씩 크게 말아 턱턱 올려줬다. 그러면 네 식구의 면발 치는 후루룩 소리가 사중주 합창이 되어 온 집안을 채웠다.

뭐든 먹다 남기는 법이 없었다. 음식의 포장을 뜯으면 그대로 모조리 입안으로 직행이었다. 노래방 새우깡도 앉은자리에서 뚝딱이었다. 젊은 남녀 먹둥이가 만나 남매 먹둥이를 낳았으니 부모고 자식이고 없이 서로가 음식 라이벌이었다.

어린 시절 새우찜을 먹는데 지속이 꼼지락거리며 새우껍질을 겨우 하나 까서 먹을 때 아빠는 서너 개를 홀랑홀랑 벗겨 넙죽 먹었다. 조바심이 나서 보다 못한 지속은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다.

속도 맞춰! 내가 하나 먹을 때 왜 아빠는 네 개나 먹어?!

아빠고 뭐고 없었다. 지속의 유전자엔 거대 식탐 인자가 심어진 것이다.

그래서 병히와 연애할 때 좋았다. 먹성 좋은 병히는 음식을 쪼잔하게 시키지 않았다. 일반 식당에서 둘이 사, 오인분을 시켜 다양하게 먹으니 행복했다. 고깃집도 둘이 가서 8인분씩 먹고 후식 된장찌개에 밥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먹을 때도 대화가 없었다. 푸드파이터처럼 와구와구 먹곤 삼십 분도 안되어 식당을 나왔다. 빨리 많이 먹고 나가는 일등 손님이었다. 그런 병히와 지속을 보곤 식당 사장님들은 많이 시장하셨나 보네요. 급히 드시고 하며 걱정스레 말을 걸기도 했다. 그래도 지속은 163센티에 53킬로를 유지하며 비만인 가족 중에 유일하게 정상체중이었다. 잘 먹는 지속을 우쭈쭈 하던 병히는 지속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린 후 태도가 달라졌다.

"넌 살이 찌는 체질 같아. 지금부터 신경 좀 쓰자"

지속과는 다른 퉁퉁한 가족들을 보자 병히는 걱정을 했다. 그리고 우려는 결혼 후 현실이 되었다. 임신을 한 지속의 입이 제대로 터진 것이다. 빵빠레를 하루에 두 개씩 영양제처럼 챙겨 먹었다. 과일, 고기, 찌개 할 것 없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식이 맛났다. 그러다 보니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가면 의사에게 매번 혼났다. 만삭까지 10~12킬로 체중 증가를 정상으로 본다는데 지속은 34킬로가 쪘다. 그렇다고 임신성 당뇨나 고혈압 같은 질병도 없었다. 정말이지 건강하게 살이 많이 찐 산모였다. 출산 후 살이 좀 빠지긴 했지만 15킬로의 지방은 여전히 지속에게 찰싹 붙어 있었다.

이혼을 유예하고 지속은 집 근처 요가학원에 등록했다. 사십 대 중반의 원장님은 늘씬하고 키까지 컸다. 살이 불어 거북목 증상이 도드라졌는데 원장님은 지속의 뒷목을 보며 여기 큰 버섯이 있다며 버섯 증후군이라는 생전 처음 들어본 소릴 했다. 내가 버섯? 듣기엔 귀여웠는데 좋은 소린 아니었다. 경추에 살이 쪘다 나. 지속의 온몸 구석구석 살이 안 찐 곳이 없었다. 요가복을 입으니 살이 오른 체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속은 속으로 뇌었다. 살이 빠질 때쯤 마음의 평안을 찾을 거라고. 그렇게 요가는 지속의 삶으로 들어왔다.

하루 종일 고된 육아에 지친 지속은 병히가 퇴근을 하면 원이를 맡기고 바로 요가학원에 갔다. 작은 규모의 학원은 클래스당 5~6명의 인원이 수업을 들었다. 요가 학원엔 텃세가 없었다. 신규 지속을 챙겨주는 마음씨 좋은 중년의 언니들만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하고 마지막 명상 때 눈을 감고 듣는 원장님의 멘트가 가슴에 와닿았다.

" 오늘도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다 행복한 사람이다."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말이었다. 지속은 눈을 감고 지금쯤 원이와 잠들어있는 병히를 떠올렸다. 실수 후 새로 태어난 듯 가정에 헌신적인 병히의 얼굴을 또렷하게 그려봤다. 여전히 미웠지만 완전히 미워할 수는 없었다. 이제 요가로 살만 빠지면 지속에게 마음의 평화가 곧 찾아올 거라고. 한데 명상이 끝나자마자, 한 회원 언니가 외쳤다.

"오늘은 치맥이 당기는데 다 같이 치킨이나 먹으러 가요!"

덜컹! 가슴이 내려앉았다. 한 시간 넘게 땀을 뺀 지속은 그렇게 언니들의 손에 붙들려 치킨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살.. 살 빼러 온 건데 이러면 안 되는데. 머리가 말릴 새도 없이 입은 와지끈 갓 튀긴 닭다리를 뜯어 씹고 있었다.


맛있으면 0칼로리니까, 괜찮지 않을까?!(긁적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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