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by 허소희

어릴 때부터 일기로 감정을 풀어나가는 버릇이 있었고 다이어리를 종종 썼다.

남들처럼 다꾸는 아니고 그저 내 기분을 좋게 만드는 수첩 하나에 나를 꾹꾹 눌러썼다.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나는 일기를 매일이 아니라 늘 띄엄띄엄 썼고 기분이 좋은 날은 일기를 쓰지 않았다.


쓸 필요가 없었다.

그게 내 일기장이다.



홍차를 좋아하던 나는 몇 년 전 네이버블로그를 개설하며 유명한 홍차블로거가 되기를 꿈꿨다.

홍차 관련 서적이나 찻잔을 모으는 게 취미였다.

(사실 만든 취미다.)


실제로 네이버 블로그 첫 글로 내려가보면 다 홍차 얘기다.

홍차가 왜 홍차냐부터 홍차 수업까지 받으러 다닌 얘기


현실은 지금 우리 집에 홍차 0.1g도 없다.


흔한 티백 하나 없고 그저 아이스아메리카노맛이 나는 카페인에 의존하면서 살고 있다.


홍차와 디저트에 관련된 카페투어를 혼자 소소하게 다니던 게.. 몇 년도부터였더라..


그땐 인터넷상에서 정신과 입원병동에 대한 정보가 딱 하나뿐이었다.

이해하기 어려워서 네이버에서 유일했던 폐쇄병동 입원기 게시글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을 뛰어내리고 긋고 찌르고 온통 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날들만 보내고 있었다.


가끔 내 글들을 정주행 한다.

처음엔 정보가 적어서 고생했던 정신과 질환에 관한 걸 공유하고자 했다.


내 병적인 우울감, 상실감, 그리고 삶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넘어서 자살 계획을 세우고 있는 모습에

이게 이렇게 정보가 흘러넘치는 정보 과잉의 바다인 네이버에서도 나오지 않는 무슨 희귀병 같은 거라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으니까.


요즘은 여러 목적과 여러 이유 그리고 사연이 담긴 우울고백이 많이 보인다.

다들 폐쇄병동 한 번씩은 가봤잖아? 거의 이 느낌이다.

아님 누가 더 우울한가 누가 자해를 더 아프게 했는가 누가 더 자살기도를 더 격하게 더 많이 했는가 그런 느낌의 글도 꽤 보이고.


그런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익명의 공개적인 공간에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되 자극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나만의 원칙이 있었다.

그 원칙 속에서도 어떤 이는 위로나 공감을 가져가고, 어떤 이는 분노나 질책을 쏟아내며, 어떤 이는 좋은 기회나 나쁜 기회를 갖거나 해석은 독자마다 다양하므로.



무리한 운동, 피어싱, 타투 등으로 해소하는 사람들의 행위도 자해의 일종일 수 있다고 하니까

내가 자해를 아예 안 하게 된 건 아니다.

그런 건 없다.

참는 것이다.

참을 수 있게 됐고 또 참을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조금 나아지고 있나 보다 어림짐작 하는 거다.


그러면서 각자들만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순간을 기록한 글이 보이면 그때 나는 남의 불행과 비교하며 내가 나아졌나 보다 또 가여운 어림짐작 하는 거다.

이 사람들도 예전의 나처럼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빠졌다고 믿고 허우적 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건 공감을 초월한 안타까움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는 내 모습에서 어림짐작에 확신을 싣는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생각보다 더 많구나

나보다 힘든 사람도 많구나

아냐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구나'

그런 걸 읽을 수 있는 글은 이제 많다.


내 글에선

'이 지옥을 벗어나는 게 꼭 불가능한 건 아니구나

죽음에서 딱 한발 정도는 멀어질 수도 있구나'

가 읽혔으면 좋겠다.


추락하면서 날아오르는 법을 배우는 새처럼.



댓글로 내 감정과 고민을 함께 나누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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