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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기 Dec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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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해,는 내용보다 태도가 의미를 만드는 말 같아.

    무슨 말이야?

    미안하지 않잖아, 너.

    미안하다고 했잖아.

    아니잖아. 너의 표정, 행동, 말투가 아니라고 하고 있잖아. 니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언어적, 반언어적 표현들이, 너는 단지 '불편하다'고 말하고 있어. 미안하다고 말함으로써 이 불편한 상황을 끝내고 싶은 거라고. '미안해'는 스위치가 아냐. 미안해를 누른다고 불편함이 편안함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끝내려는 게 아니라 시작하려는 거야.

    뭘?

    대화를.

    지금까지 한 건 대화가 아냐?

    그는 감탄했다. 틀린 말이 없었고 막힘이 없었다. 그녀의 말은 적당한 빠르기로 흐르는 강물 같았고 그 위에 햇살이 부서지는 듯 눈부시기까지 했다. 그는 그만, 반하고 말았다. 코끝이 간지럽다고 느끼는 순간, 그의 의도나 의지와 무관하게 눈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마치 재채기처럼. 참을 수 없었고 막을 수 없었으며, 상황에 매우 적절하지 않은 말이었다.    

 

    사랑해.


    그는 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 빨개졌으리라. 고개를 떨구었지만 귀를 넣어둘 곳은 찾지 못했다. 그의 표정, 행동, 말투, 그리고 체온조차 그것이 진심임을 말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당황했다. 시나리오에 없던 상황이었다. 볼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입술이 실룩거렸다. 두 사람은 그렇게 십몇 초를 비언어적, 반언어적 표현으로만 채웠다.


    뭐래, 미친놈아.


    그녀의 대답 역시 적절하지는 않았지만 스위치를 켜는 데는 충분했다. 그는 그녀의 팔꿈치를 잡았고 그녀는 그의 이마를 때렸다. 몇 번 깜빡이다 완전히 켜졌다. 점등. 아니면 소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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