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인 상황과 주관적인 믿음.
요즘 들어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인 챗GPT를 자주 이용한다. 일상에 대한 사소한 질문부터 계획, 삶, 감정과 관련한 진지한 질문까지 챗GPT에 자주 던져본다. 그러면 원하는 답변을 꽤 들을 수 있다. 나는 물음에서 해결책이나 새로운 방향 제시 등을 원한다. 챗GPT의 답변은 기계적인 감정적 공감이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아 마음에 썩 든다. 물론 아직까진 한계점도 분명히 있겠지만.
단편소설집 <너의 유토피아>는 SF 장르의 소설이다. 8개의 단편소설은 저마다 머지않은 미래 세상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제시힌다. 감정이 있는 로봇의 시선, 뇌사자의 기억을 읽어내는 기술, 바이러스가 뒤덮은 세상의 최후, 일상에 존재하는 외계인의 존재 등. 상상해 보았거나 어디서 들음직한 미래지만, 작가는 세밀하고 감정적이며 때로는 무서운 사실로 독자를 몰입시킨다.
유토피아도, 완전한 디스토피아도 아닌 미래 세상.
긴 여운이 남은 단편소설은 <여행의 끝>이다. 이 이야기는 어딘가 익숙한 전염병과 팬데믹, 바이러스 발병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오싹하고 잔인한 전염병의 등장이디. 바로 인간의 좀비화. 미국 어느 마을의 가족에게서 시작돼 순식간에 미국 전역, 그리고 전세계로 퍼져나간다. 전염되는 순간 아무 감정없이 감염자는 식인을 자행한다.
지구에선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우주선을 준비한다. 전인류가 좀비화되고 지구에서 인간이 사라지기 전에, 아직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은 전문가들과 일부 사람들을 차출해 우주로 보내는 프로젝트다. 주인공도 이 희망 프로젝트, 우주선에 탑승한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침투력은 인간의 계획보다 한 발 더 빠르다. 이미 우주선엔 바이러스 보균자가 탑승하고 있었고, 우주선은 먼 우주 어딘가를 향해 항해 중이다. 결국 마지막 희망인 우주선에도 좀비가 하나둘씩 나타난다. 주인공은 한 명의 동료와 함께 사투를 벌이지만, 좀비들은 식인을 멈추지 않는다. 인류는 이대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일까. 인류의 미래에 희망은 있을까.
사실 팬데믹이라는 소재는 이제 익숙하다. 오히려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팬데믹의 위험성과 공포를 우리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런데 좀비와 식인이라는 단어가 여기에 두려움을 한 층 더한다. 일상 생활을 하다가도 갑자기 감정이나 평소 인식을 잃고 죄책감 없이 식인에 나서는 질병이라니.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만드는 전염병. 이보다 끔찍할 수는 없다.
그리고 소설의 결말도, 여행의 끝, 전염병의 끝도 마치 현실처럼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든다. 희망을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희망이라는 듯이 '끝'을 말한다.
‘희망은 있다고 생각하면 있고, 의미는 만들어서 부여하면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주관적인 믿음이다. 객관적인 상황이 그런 주관적인 믿음을 뒷받침해준다는 보장은 없다. 우주 삼라만상이 나 한 사람의 뜻에 일일이 따라주어야만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녀석을 마저 먹어야겠다.'
도대체 미래의 희망은 무엇일까. 어디서 찾아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