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선생님 Livi
2017년 Austin에 도착하여 의사에게 태민이를 보였을 때, 그는 자폐 소견을 내고 PPCD를 알아보라는 충고를 건넸다. PPCD란 Preschool Program for Children with Disabilities의 약어로, 장애를 가진 아이들 (Child with special needs)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현재는 Early Childhood Special Education (ECSE)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텍사스에서는 만 3세에서 5세의 아동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며 보통 공립 학교의 교실에서 특수교사에 의해 수업이 이루어진다. 수업시간에는 프리스쿨 수준의 학습이 이루어지며, 아이의 필요에 따라 언어치료 (Speech Therapy), 작업치료 (Occupational Therapy) 등이 제공될 수 있다.
처음에 와이프는 PPCD에 굉장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때만 해도 태민이가 자폐라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했거니와, 발달 상태가 더딘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비슷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심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언어치료를 해주시는 Univ. of Texas의 교수님 및 다른 치료사들도 PPCD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기에 결국 2018년 가을 학기를 목표로 학교 입학을 위한 절차를 밟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집에서 홈스쿨링을 할것도 아니고 Preschool에 계속 보낼 것도 아니라면 (월 천불 가까이 들었기에 비용 부담이 적지 않았다) 학교를 보내야 했고, 이 경우 태민이에게 PPCD는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아이가 입학할 Davis Elementary의 PPCD 담당자는 Ms. Livi였다. 입학 예정인 태민이가 궁금했던 그녀는 입학 몇달 전에 아이가 다니는 Preschool에 와서 아이를 관찰하겠다고 했다.
와이프: Davis Elementary School에서 선생님들 왔다면서요? 어땠어요?
Ana (Preschool 선생님): 놀라지 마세요. 오늘 왔는데 4시간이나 있으면서 아이를 관찰하고 갔는데요. 아이에 대해서 A부터 Z까지 다 기록하고 갔어요. 정말 열정이 가득한 사람인거 같아요.
와이프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이런 사람이라면 우리 애를 맡겨도 좋겠다. PPCD 보내야겠다'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의 학교 입학을 위해서 IEP (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 장애 아동 연간 교육 목표 문서) meeting을 했을 때 우리는 Ms. Livi를 처음 만났다. 자신의 관찰과 분석을 기반으로 한 연간 IEP 목표를 보여주는데, 태민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태민이에게 정말 필요한 목표들만을 제시해서 정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우리 부부 뿐 아니라 지금 버지니아에서 태민이가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들도 이 문서를 보고 극찬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짐작이 가실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태민이의 학용품을 전달하려 학교에 들렀을때 우리 가족에게 학교 시설 및 교실을 구경시켜 주었는데, 태민이가 착석을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는 "다양한 종류의 의자를 구매했다"며 공, 방석, 자루모양 등 무려 5개나 되는 다양한 의자를 보여주었다. 세상에... 어떤 선생님이 아이의 착석을 고민하며 의자 5개를 살 수 있을까? 부모도 그렇게는 못 할 것이다.
학교에서 태민이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그녀는 수퍼우먼처럼 제일 먼저 달려가서 위로해주었고, 아낌없는 사랑을 부어주었다. 그 덕분에 태민이는 금방 학교에 적응했고, 몸과 마음이 모두 많이 성장하며 행복한 학교생활을 보냈다. 매일 아침 학교 갈 때마다 “Ms. Livi”를 외치면서 뛰어나갔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육아로 지쳐있을 때나 이것저것 의사결정을 내려야 했을때, 그녀는 항상 옆에서 힘을 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정말 좋은 친구였다.
2019년 필자의 MBA 졸업 후 직장이 버지니아로 정해지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이사를 준비해야 했다. Livi도 이를 전해 듣고는 IEP transfer를 위해서 서류를 하나하나 준비해주었다. 마지막 IEP 미팅 때 와이프나 Livi나 작별이 아쉬워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녀는 "새로운 학교 선생님이 태민이를 더 빨리 이해할 수 있을 거야"라며 태민이의 수업 영상을 와이프에게 보내 주기도 했다. 그 뿐 아니라 이사가기 전까지 방학임에도 1주일에 한번씩 아이를 무료로 가르쳐 주었고, 아이 생일까지 기억해서 우편으로 선물을 보내주기도 했다.
지금도 와이프와 Livi는 계속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2020년 봄에 Pandemic이 시작되며 Virtual Learning으로 전환되자, Zoom을 통해 우리 가족과 통화도 하고 Davis 학교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하기도 했다. 이사온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그녀가 태민이를 늘 기억해주고 응원을 보내주는 덕분에 태민이도 여기서 잘 적응하고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어도 잘 못하고 미국 학교 시스템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우리 가족의 가장 큰 행운은 천사같은 그녀를 만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