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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호 Apr 18. 2021

1화

쇼생크, 오줌을 참은 채로 갇히다


하루 세끼는 꼭 챙겨 먹어. 어제 그녀는 말했고, 오늘 그녀는 죽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은 눈빛을 보며 가만히 기다렸지만 그뿐이었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돌아섰다. 그 편안하고 익숙했던 눈동자가 무겁고 낯설게 느껴진 건 그때부터였다. 여전히 익숙하게 그려지지만 묘하게 낯선 눈동자. 따뜻하고 그리운 무엇이지만 더는 가닿을 수 없는 무엇.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가까워질 수 없는 것.

그녀를 만나지 않은 건 7년 정도 됐다.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었는데, 굳이 만나러 가진 않았다. 7년 전에도 굳이 만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부평 거리를 밤새 배회하고, 담배와 술냄새가 눅눅하고 야릇하게 뒤섞인 몸뚱이로 첫차가 운행하기 전 들어간 국밥집에서 우연히 그녀와 마주쳤다. 마치 노인처럼 굽은 날개뼈와 몰라보게 건조하게 말라버린 팔뚝이었지만 빨간 앞치마에 테이블을 훔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본 순간, 익숙하고 포근한 살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불완전한 텅텅 비어버린 공간에 머물기 전엔 단 한 번도 의식한 적 없었던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안아주는 완전함. 그녀가 돌아봐 그 기묘한 눈동자를 다시 마주하기 전에 나는 도망쳤다.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가까웠던 것이 멀어져, 그런 채로 한참이 지나고 다시 마주하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항상 생각했다. 어제 봤으니까, 하고 오늘은 굳이 만나지 않았고. 내일은 볼 수 있으리란 변명으로 나는 도망쳤다. 소중하고 거룩한 건 그렇게 미뤄지곤 한다. 이를테면 ‘쇼생크 탈출’ 같은 거 말이다. 꼭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어느새 10년이 지났다. 그쯤 되면 꼭 다시 봐야겠단 말이나 그만큼 소중하다는 건 속 빈 거짓부렁이거나, 실없는 감탄사 따위에 불과한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마는 사실 소중하면 소중한 것일수록 더욱 멀리, 되도록 다신 눈앞에 얼씬 못하게 미루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처사다. 두 손으로 쥘 수 없을 만큼 큰마음은 우리로선 감당할 수 없으니까. 날개가 커지면 커질수록 쉽게 날 수 없는 것처럼. 나약한 우리가 자신에게 무엇이 그리 소중한 것인지 알아내는  그렇기에 중요하다. 그것들을 손에 쥐고,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되도록 멀리 도망치기 위해서 말이다. 제이가 이렇게 말했던  같은데. 맞나?


“어디가 고장 났으면 좋겠어.”

제이는 튀긴 쥐포를 조각내며 말했다. 튀긴 쥐포를 조각내고, 입에 넣고, 고장 나길 바란다 말한다. 그는 조용하게, 하지만 계속해서 구시렁댔다. 제이가 그걸 일곱 번쯤 말했을 때, 나는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

“그 말만 하는 거 보니까 고장이 나긴 했네.”

“맞아. 분명 고장이 났어. 근데 이게 보이지가 않아. 그러니까 다들 모른 척하는 거야.” 그는 내게 몸을 돌렸지만 나는 그의 시선을 못 본 체했다.

“보이지도 않는데 아는 척을 하는 것도 웃겨.”

“아니, 음.”
역 앞의 맥주집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다. 조그마한 홀 중앙에 떡하니 앉아 시야를 가득 채우는 후덕한 아저씨는 어색하게 교탁 옆에 쭈뼛대던 대혁이었다. 솜털이 보이는 말랑하고 허여멀건 피부에 넉넉한 품으로 흘러내리는 교복 바지와 배가 봉긋 나온 교복 셔츠를 입은 그를 보고 나는 반사적으로 돼지새끼네, 하고 중얼거렸다. 그땐 토실하니 귀여운 구석이 있었는데. 푸석해진 피부 때문인지, 단단하고 거친 몸뚱이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그 뭐랄까. 아, 꼭 돼지 껍데기 같았다.

그 옆 테이블엔 정민이가 있었다. 쭉 찢어진 눈매와 넓은 골반의 시원한 다리는 어린 시절 위협적인 존재였다. 웬만한 사내 녀석들은 내려 보던 소녀였지만 건너편에 앉은 정민이는 이제는 작고 가녀렸다. 165 안팎의 그녀는 루즈한 흰 티 안에 비치는 검은색 브래지어를 입고 있었고, 수수한 이목구비와 퍽 어울렸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현재의 패러다임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를 발견했는데 그걸 지칭하는 개념이 없으니까 우리가 외면한다는 거야. 사실 분명히 존재하는 건데,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으로는 설명이 안 되니까 인식하질 못하는 거지. 뭔 말인지 알아? 그러니까 설명이 안 되니까 또렷하게 보지는 못하고, 무언가 낯설고 불편한 감각만 느끼는 거야. 뭔가 잘못됐다. 일종의 위기의식만 느끼는 거지. 크라이시스(crisis)!” 제이는 차근차근 이야기하더니 이내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물론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정민이의 가늘고 높은 콧대와 찢어진 눈매를 가만히 바라봤다.

“갑자기 낯설어 보인다.”

“그래, 낯설게 보이는 그 무언가. 보인다고 할 수 없이 보이는 것. 설명하기 힘든 노멀하지 않은 것들을 감각적으로 느낀 거야. 세계를 이해하는 프레임을 벗어났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규칙 안에서 설명되지 않는 건 보이지 않아. 그리고는 없는 거 취급을 해버리지. 하지만 한 번 보이기 시작한 건 쉽게 모른 척 할 순 없어.” 제이는 쥐포를 쪼개고, 입에 넣으며 말했다. 분명 내게 하는 말이었으나 나는 무시하고 있었으니 어느새 혼잣말이 되어버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 나는 위기야. 설명되지 않은 불쾌감들로 가득해.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일단 문제라 여기고 쉬려면 가시적인 게 있어야 해. 지금의 패러다임으로 말해낼 수 있는 리즈너블 한 거 말이야. 회사라는 놈들은 그걸 원하니까. 원하는 걸 주고,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얻으면 되는 거야.”

보인다고 할 수 없이 보이는 것. 없는 거 취급. 리즈너블. 내가 원하는 걸 얻으면 되지.

멍청하게 제이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그의 말 중에 몇 가지가 머리 속에서 남아 부유했다. 문득 변기에 튀는 오줌보가 떠올랐다. 그리고 캔맥주 주둥이에 쌓여있을 먼지 역시 떠올랐다.

“변기에 튀긴 오줌은 2미터까지 날아간대.” 나는 말했다.

“전에 캔맥주 진열 파트를 맡은 적이 있는데 두어 짝 정리하고 나니까 금세 목장갑이 더러워지대. 근데 나는 귀찮게 앉아서 오줌을 싸진 않아. 그냥 없는 거 취급해버리는 거지. 맥주캔의 먼지처럼. 그게 리즈너블 하게 내가 원하는 걸 얻는 방법이야.”

“뭔 개소리야.” 제이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정민이는 친구와 치즈스틱을 자르며 소리 내 웃었다.

나는 제이에게 치즈스틱을 먹자고 했고, 그는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대강 끄덕였다. 손을 들어 사장 형을 불렀고, 그는 말은 마저 해야겠다 마음먹은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나는 이 회사가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냐. 싸우고 싶지도 않고. 그냥 지금 나는 위기니까, 그들이 인정해줄 만한 가시적인 고장이 나서 그들도 내가 힘들다는 걸 알아주고, 나도 내 나름의 휴식을 얻고 싶은 거야.”

“휴가를 가.”

“그럼 모르잖아, 사람들이.”

“그럼 화장실 갔다 오는 건 싫고, 의자에 싸버리겠다고?” 나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걸터앉은 정민이의 허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씨발, 왜 자꾸 똥오줌 얘기야.” 제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폰을 꺼내 SNS에 정민이의 이름을 검색했다.

유정민.

곧장 낯선 배경을 두고 찍은 그녀의 사진이 있는 프로필을 찾았다. 외국처럼 보이는 부둣가 앞에서 정민이는 활짝 웃으며 서 있었다. 물 빠진 청바지와 넉넉한 사이즈의 체크무늬 셔츠는 세련된 단발머리 덕분인지 촌스럽지 않았다. 그녀 뒤로는 하얀 요트가 선박 되어 있었고, 위로는 거대한 구름이 느긋하게 흐르고 있다. 레너드 스키너드의 “Free Bird” 도입부 같은 사진이었다.

“야. 얘가 너랑 인사하고 싶단다. 이따 나가기 전에 꼭 번호 주고 가라.”

제이는 맥주잔을 든 채로 정민이에게 소리쳤다.
 “씨발새끼야.”

정민이는 큰 입고리로 시원하게 미소 지었다. 앞에 보이는 대혁이는 제이를 돌아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제이는 그를 신경쓰지 않았다.

“나이 서른 처먹고 뭐하냐, 등신아.”

제이는 얼마 안 남은 맥주를 들이켰고 사장 형은 와서 치즈스틱을 두고 갔다.     


“뭐 좀 쓰고 있냐.” 나는 뒤로 조금 물러나 담뱃불을 붙였다.

“쓰긴 쓰는데, 뭘 쓰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 그냥 좀, 뭐랄까. 더 절절하게 욕을 하는 거지.” 그는 말했다.

“그냥 불만들을 모으면 괴팍한 인물 하나는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는 하는데. 하나로 묶이는 서사랄 것도 없고, 글마다 호흡도 다르고.” 제이는 주머니의 손을 쑤셔 넣은 채 터덜터덜 걸었다.

나는 담배를 깊게 빨았다.
어두운 철길 아래는 제이의 집을 지나는 길이다.

어린 시절 제이와 온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배회하고도, 아쉬워 그의 집 앞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텅 빈 집에 돌아가 봤자 할 것도 없었으니까. 고등학생이 돼서는 돌아오는 길에 남몰래 담배를 피우는 재미를 붙였다.

“짜증이 나한테만 안 튀면 좋겠다.”

“내가 안 보여주면 그만이잖아.” 제이는 감정 없이 대답했다.
“맞지.” 나는 술기운이 올라 웃음이 났다.
새벽 2시의 나와 제이는 맥주 넉 잔에 얼큰하게 배가 불렀다. 아까는, 하고 말을 걸자 정민이는 흔쾌히 번호를 적어줬다.

거리에는 어느새 여름 냄새가 사라졌고, 시원한 바람이 여유롭게 밀려왔다.

“여행은 무슨. 나는 무조건 독립할 거야. 지긋지긋한 삼 형제.”

혼자 살고 싶다. 네가 부럽다. 노래를 부르던 제이는 대학 졸업 후 곧장 장교로 입대했다. 2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그는 그 마음을 차곡차곡 모았고, 전역과 동시에 본가 근처 원룸에 반전세로 들어갔다. 월세며, 생활비며 따지면 당장 일을 구할 수밖에 없었기에 전역 후 여유 부릴 새 없이 일을 시작했다. 성실하고 계획적인 그가 시간을 축내며 유유히 여행이나 다니는 건 어울리지도 않았다. 그는 군 생활을 하는 동안 가전기기도 착실히 모았다. 작지만 냉동실도 따로 있는 냉장고와 얼핏 보면 오븐기처럼 보이는 전자레인지. 1인용 전기밥솥과 커피포트. 토스트기-빵가루가 왕창 들러붙은 오래된 기계였다. 그리고 에어 프라이어기까지.

“가스레인지랑 밥솥만 있으면 되지 않아?” 좁은 부엌에 가득 찬 가전기기를 보며 아무래도 과한 건 아닌지 묻자,

“그럼 네가 와서 요리해주냐?” 하고는 제이는 특유의 톡 쏘는 목소리로 반박했다.

“내일 출근해?” 제이는 공동현관문 앞에서 뒤돌아 물었다.

“아니 내일 물건 없대. 근데 저녁에 약속 있어.”

나도 하나 줘봐. 내가 담배를 새로 물자 그가 손을 뻗었다. 나는 그의 입에 담배를 물리고 라이터를 켜줬다.

“몇 시 약속인데.” 그는 담배를 깊게 빨았다.

“몰라, 만나기로만 했어. 일찍 헤어지면 연락할게.”

“알았다.” 제이는 몇 번 피우지 않은 장초를 바닥에 던지고는 발로 지르밟았다.

며칠 후 나는 정민이와 섹스를 했다. 소주 몇 병을 마시고 근처 ‘판타지 모텔’이라는 모텔에 갔다. 담배 절은 천장과 딱딱한 침대만 있는 값싼 모텔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한 번 더 섹스를 하고서, 그녀는 샤워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한참 뒤에 나와 화장대에 앉았다. 가방에 있던 몇 가지 화장품을 대충 바르며 뜬금없이, 남자친구가 있어, 하고 말했다.

“결혼 생각도 있어. 이젠 그럴 나이니까.”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씻으려던 차에 옷을 벗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정강이까지 내린 팬티를 다시 올려 입었다.
“축하해.”

섹스 한 번에 그녀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졸지에 간통범이 된 기분이었다.

“축하할 것까지야. 걘 결혼 생각이 없어. 나만 있지.” 덤덤하게 화장을 했다. 그러니 너랑도 했겠지, 하고 이어서 말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팬티를 벗고 얼른 화장실로 숨었다.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어쩌라고 말한 거지. 숨길 거면 계속 숨기지. 아니 유부녀도 아니고, 뭐 어때. 알고 그런 것도 아닌데. 시발. 아무것도 아니지. 아무것도 아니야. 물줄기를 맞으며 면상을 손으로 거칠게 비볐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그녀는 이미 통근 청바지와 짧은 흰 티를 마저 입은 채로 나가자고 말했다.

“집까지 데려다줄까?”

“아냐. 여기서 헤어지자.”

“그래.”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즐거웠어. 다음에 또 만나. 들어가면 연락해. 몇 가지 인사 중에 가장 적절한 인사인 ‘그래’를 골라 뱉어내고 얼른 그녀와 헤어졌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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