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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중년 마크 Apr 14. 2022

꽃이 나를 보는 것보다 내가 꽃을 보는 게 좋습니다

꽃을 찍게 되는 이유


봄이 왔습니다.      

목련에 이어 진달래와 개나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코로나로 인해 그동안 제대로 보러 가지 못했던 벚꽃도 그간의 아쉬움을 만회라도 하는 듯 흐드러지게 피었더군요.

저도 무척 오랜만에 벚꽃을 보기 위해 근처 공원에 나가 보았습니다.

      


이팝나무의 꽃망울도 예쁘게 모여서 봄바람에 맞춰 팔랑거리고 있었습니다. 


벌써 튤립도 가지런히 모여서 활짝 피어날 오월을 기다리는 듯합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저도 핸드폰을 꺼내 열심히 사진을 찍어 봅니다.     

오늘도 사진 여러 장이 핸드폰 안에 담깁니다.

 

 



돌아와서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나의 핸드폰 속 갤러리에는

꽃이나 나무, 하늘이나 호수 바다 같은 자연을 찍은 사진들이 많아집니다. 

정확히는 ‘사람이 없는’ 사진이 많아졌습니다.      


전에는 사진이란 것은 사람을 찍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아주 예전, 카메라가 무척 귀하던 시절에는

사람의 모습을 담지 않은 사진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찍었던 사진이다 보니 

사람이 없는 풍경사진을 찍는 것은 사진작가나 하는 일이었겠죠.    

그런데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어 누구나 사진 찍기가 쉬워진 다음에도

저는 주로 사람이 등장하는 사진을 찍었고

저 또한 사진 속에 등장했습니다. 

 

연애를 할 때엔 연인과 함께 사진을 찍었고

아이가 생긴 이후엔 주로 아이의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사용했습니다. 

누군가를 찍어주면 그 이후엔 자연스럽게

“나도 한 장 찍어줘.” 란 말을 건넸고

가끔은 이 모든 것들을 출력해서 사진첩에 꽂아 두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은 내 모습을 찍은 사진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점점 나를 찍은 사진들이 적어지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는 것이 조금 번거롭기도 하고

아재가 된 사진 속의 내 모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모습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이란 것은

관찰자의 눈을 대신해서 지금 이 순간 보이는 장면을 담는 것인데

그 사진 안에 주로 내가 등장한다는 사실은

내 눈으로 보는 장면이 아닌

다른 사람이 보는 장면이 된다는 것 아닐까요.


아마도 그동안은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는 관점보다는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기를 바랐고

내가 세상을 보는 방향보다는 

세상이 나를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문득 바라본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나

푸르게 잎을 키우기 시작하는 나무들의 모습들이나

혹은 예쁘게 지은 집과 

멋진 풍경을 볼 때

더 이상 셀카를 찍기 위해 팔을 길게 뻗지 않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곧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충분히 보고 싶은 만큼 눈을 들어 바라보고

그 후에

지금 이 순간 내가 바라본 삶의 한 장면을 

소중히 담는 마음으로 셔터를 눌러봅니다.


오래도록 내 마음에 담길 장면들은

남이 바라본 내 모습이 아니라

내가 바라본 세상의 모습일 테니 말입니다. 

 

 

PS.      

그런데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건 아닌가 보네요.

아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나이 좀 드신 분들의 SNS 프로필 사진을 보면

대부분 자신의 얼굴보다는 꽃이나 산, 바다 하늘 등 풍경을 올린 이들이 많더군요.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은 걸 보니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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