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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Jan 13. 2021

나도 이제 (무주택) 세대주야!

독립하겠습니다_10

했다, 입주를. 되었다, 세대주.


28이라는 숫자를 더 이상 들고 있을 수 없는 날이 이틀밖에 안 남아서야 나는 법적으로 부모님에게서 독립했다. 어렸을 때 내가 바라보던 28이라는, 혹은 29라는 나이는 온연한 어른의 모습이었는데 닥쳐서 본 나의 20대 끝자락은 아직도 너무나 미성숙하고 서투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서투른 모습으로 있어도 괜찮은 환경에 있었으니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도 밥도 걱정도 생각도 나보다 어른인 사람이 항상 주변에 있는 환경이라 응석 부렸던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말이다.


입주라는 걸 하는 과정 자체는 간단했다.. 해야 하는 것은 총 세 가지. 남은 계약 잔금 송금하기, 열쇠를 넘겨받고 입주 청소하기, 그리고 전입신고.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단연 전입신고다. 법적으로 내가 이 집에 산다는 것을 인정받는 절차니까. 법적으로 내가 원래 집에서 나왔다는 공증이니까. 전입신고라는 것도 그냥 동사무소에 가서,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호로록 전입신고 서류를 작성했다가, 주민등록증과 함께 제출하면 쯩 뒤에 스티커가 붙어 나오는 것, 그것으로 사실은 끝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절차라는 게 나의 법적 위치를 아주 바꿔놓는다는 게 꽤나 근사하다.


입주와 전입신고를 마무리하고도 그 주말은 본가에서 시간을 보냈다. 미리 시켜둔 매트리스가 아직 새 집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맨바닥에서 잘 자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기만 보다는 부모님이 내가 떠나가는데 적응할 시간을 드려야 하기도 했고, 집에서 쌔벼올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고, 부모님과 집과 나 사이의 클로져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침 그 주말은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는 주말이기도 했다. 끼니마다 평소보다 조금의 거창함을 보태 맛있는 걸 그득그득 먹었다. 그런 식사 자리 중 엄마는 슥, 말을 꺼냈다. 


등본 뗐는데 너 이제 거기 이름 없더라?


왜 그런 타이밍에 엄마는 그새 등본을 뗄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쑥스러운 뿌듯함이 밀려왔다. 나는 젠체하며 "그럼! 나도 이제 세대주라고! 무주택이지만!" 이라면서 어른인척을 해댔다. 청약 당첨 순위가 높아지려면 얼른 세대주 분리를 해야 한다더라 가짜로 다른 집에 주소라도 옮겨놓을까 얘기를 곧잘 하던 엄마 아빠는 이번 나의 발언에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다 큰 딸내미지만 그래도 집을 떠나보낸 다는 것이 서운해서였을까, 아니면 나의 어른인척함이 기가 차서였을까. 아무튼 조용히 다른 화제로 넘어갔던 저녁.


다시 생각해보면 세대주라는 말은 참 거창하다. 세대의 주인, 한 세대의 책임자, 같은 느낌이니까 말이다. 아무리 1인 가구라고 해도 법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나는 이제 가장이다. 나 한 몸을 위해 내가 살 집, 먹을 것, 입을 것 등등을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 그 와중에 본가의 가족도 아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종종 찾아가고, 함께 맛있는 걸 먹고, 생일과 명절도 챙겨야 한다. 어쩌면 세대주라는 것, 가장이라는 것, 책임이라는 것, 그리고 어른이라는 것은 이런 것의 총합체일지도 모르겠다. 새로 마구 늘어나는 내 안위를 챙기는 와중에 예전에 챙기던 것들도 꾸준히 챙길 수 있는 여유를 만드는 것. 돌보고, 돌보고, 돌보는 힘을 기르는 것.


아무튼 세대주가 된 나, 그 전보다는 조금 더 멋진 것 같다!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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