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타에서의 마지막 날, 사하군에서 머문 숙소는 산타크루즈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였다.
예약은 하지 않고 짐을 미리 부쳐놨었는데 도착하니 신부님께서 이 짐이 너의 짐이니? 하시더니 짐이 잘 도착하고 예약도 안했는데 숙소에 자리가 있는 것도 다 기적같은 일이란다 라고 말씀해 주셨다. 음 그정도 미라클까지는 아닌것 같습니다만... 뭐 암튼 감사합니다요
지난번 머문 까리온의 알베르게가 수녀님들이 운영하신다면 이곳은 수도원 건물의 일부가 알베르게인가 보다. 건물도 크고 고풍스럽다. 기도를 하고 있으니 조용히 이용하라는 안내문이 종종 보였다. 통금 시간도 있다고 한다.
신부님은 여기도 순례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고 안내를 해 주셨다. 먼저 저녁시간 전에 순례자들이 함께 대화를 하면서 카미노에서 느낀점을 나누는 그룹 토킹 시간이 있고 그 다음에는 다같이 음식을 준비해서 나누어 먹는 공동체 저녁 시간이 있다고 한다. 어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니?원하지 않으면 둘 다 참여하지 않아도 돼.
어우 프리토킹 한시간은 걷고 와서 피곤도 한데 그건 안되겠다. 그럼 저녁을 함께 먹을게요 라고 했다. 신부님은 다른 안내종이를 보여주시며 매우 자세하고도 조근조근 공동체 저녁 참여 방법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이분 엠비티아이는 S와 J임이 분명하다.
먼저 각자 적당한 음식을 준비해 와야해. 명심해 모든 음식은 조리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야 돼. 마을에 슈퍼마켓이나 가게가 있을거야. 거기에서 절대 식재료를 사지 말고, 이미 조리되었거나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되는 음식을 사오면 돼. 빵이나 과일은 오케이고 날고기는 안돼. 냉동 피자는 오케이고 양파는 안돼. 알겠지? 공동체 식사는 나누는 의미이니 2~3인분 정도 넉넉히 준비해 와도 좋아. 시간 맞추어 꼭 오고.
오케이 완벽히 이해했습니다 신부님. 저는 이제 메세타 탈출을 결심한 자본주의 아재라구요. 나는 가까운 슈퍼마켓 디아DIA에 가서 스페인식 만두 엠파나다 몇 개와 와인 두 병, 요거트, 과일, 피클, 스페인식 즉석밥 그리고 위트를 담당할 곰젤리까지 가득 담았다. 20유로가 넘게 나왔나 보다. 아 사진이 없는게 아쉽구만. 뿌듯한 맘으로 자원봉사자분께 희고 튼실한 마트 봉투를 건네드렸다.
저녁시간이 되니 사람들이 꽤나 모여있다. 오늘 저녁에 모인 것들을 모두 꺼내지는 않는 듯 하다. 와인도 내가 사온 와인이 아닌 다른 와인이 준비되어 있다. 매일 매일 준비되는 음식 양이랑 종류가 다를 테니 인원수에 맞게 적당한 종류로 준비하고 남은 음식은 다른 날짜나 아니면 수도원 운영에 쓰는가 보다. 고심해 고른 와인 두 병은 아마도 내일이나 며칠 후 다른 순례자들이 드시겠군요.
조리하는 음식은 안된다고 했으나 야채 수프가 준비되어 있었다. 가끔 마주치는 네덜란드 친구인 예가가 미리 이야기해서 끓였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이친구 까리온 알베에서도 파스타를 잔뜩 해 놓고 아무나 드세요 라고 붙여놨었지. 이름은 어려워서 발음할 수 없지만 음식을 만들고 나누며 다니는 멋진 친구였네. 야채스프는 상당히 맛있다. 예가는 향신료 펜네인가? (정확지 않음) 그걸 먼저 볶다가 나머지 야채 때려넣고 푹 끓이면 된다고 비법도 알려주었다.
공동체 식사 자리는 길게 연결한 식탁에 사람들이 쭉 둘러 앉아서 준비된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고 소소한 수다도 떨고 각자 간단히 소개도 하면서 잔잔하게 마무리 되었다.
식당 한켠에는 지도가 몇장 있었는데 각자 자기가 온 곳을 핀으로 표시하는 용도의 지도였다. 당연히 본국 스페인과 가까운 서유럽쪽이 핀이 가장 많고 미국도 많다. 아시아에서는 역시나 단연 한국만 빼곡하다.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지도로도 확인하니 또 신기하구만.
한국 사람이 하도 많이 오니 아예 별도의 큰 꼬레아 지도를 붙여놓으셨네. 그렇게 메세타의 마지막 밤은 소박하고 감사한 식사와 함께 지나갔다.
내가 머문 19번 방에서는 4인실에 나까지 3명이 머물렀는데 먼저 잠든 두 분이 모두 코를 고시는 엄청난 확률의 기적마저 일어나고 말았다. 역시 여러모로 신비의 메세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