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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실 May 25. 2021

동네꽃#32 수수꽃다리.. 라일락이라구요?

수수꽃다리와 라일락

지난 4월, 동네를 향기로운 꽃향기로 가득 채웠던 수수꽃다리.. 4월의 동네꽃으로 결정하고 일찌감치 스케치를 해놓고는 같은 달에 있었던 전시회를 핑계로 작업을 미뤘다. 그리고는 5월이 되어서야 채색을 시작했다.


동네에 피어 있는 대부분의 수수꽃다리 나무들은 내 키만 한 작은 나무인데 이 나무는 유일하게 아파트 2층 높이의 큰 키를 자랑하고 있었고 우연히 내 폰 카메라에 담긴 이 나무의 꽃은 향기만큼이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1년 만에 내 그림 속으로 들어왔다.

이번 그림의 소재가 된 수수꽃다리. 2020.4.9. 동네에서 촬영


그림을 보고 '라일락이네~!' 하셨을 분들에게 이 꽃은 '수수꽃다리'라고 알리고 싶었던 것도 이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이다. 나도 '수수꽃다리'와 '라일락(Lilac)"이 같은 식물의 한글과 영어 명칭인 줄로만 알고 있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지금처럼 식물 그림(보태니컬 아트)을 그리고 있지 않았다면 계속 그렇게 알고 있었을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PC의 식물 사진 폴더에는 수수꽃다리와 라일락의 사진이 마구 혼재되어 있고 폴더명도 '라일락'이었으니까 말이다.


수수꽃다리와 라일락은 둘 다 물푸레나무과 수수꽃다리속(Syringa) 식물로, Syringa로 시작하는 학명을 가진 서로 다른 학명을 가진 다른 종의 식물이다. 제비꽃속(Viola)의 여러 종의 식물을 제비꽃(Violet)이라고 부르듯이 수수꽃다리(Korean early lilac)도 라일락(Lilac)이라 불러도 크게 무리는 없겠지만 유럽이 원산지인 라일락과는 다른 종인 우리나라 자생 식물 수수꽃다리를 알아볼 수만 있다면 제 이름인 '수수꽃다리'로 불러주면 좋지 않을까..


그럼, 몇 년 전부터 찍어온 라일락과 수수꽃다리 사진들을 보면서 비교해 봅시다! 먼저 라일락부터~

라일락. 2019.4.23. 예전 동네에서
라일락. 2018.4.21. 예전 동네에서
라일락. 2012.5.2. 예전 동네에서


이번에는 수수꽃다리..

수수꽃다리. 2021.4.2. 동네에서 (아직은 봉오리가 많고 잎도 새잎이다.)
수수꽃다리. 2021.4.10. 동네에서
수수꽃다리. 2019.5.1. 예전 동네에서(대모산 공원)

여러 장의 사진들을 보면서 그냥 감이 오리라 믿지만, 혹시 감이 잘 안 온다면 수수꽃다리 잎은 하트 모양처럼 생겼고 라일락의 잎은 삽 모양과 비슷한 길쭉한 삼각형 모양인 것으로 구별하면 좋을 것 같다.


이제 식물에 대해 알았으니 그림을 그리면서 수수꽃다리의 매력에 빠져보자!

아웃라인을 그려놓고 뒤쪽으로 보이는 꽃부터 채색을 해나간다. 2021.5.2
한 송이씩 진도를 열심히 나가는 중이다. 2021.5.11.

아래는 위의 꽃잎 채색 과정에서 사용한 색연필들이다. 흰색 색연필 꽃잎의 자연스러운 연자주색을 만들기 위해 색을 섞어서 퍼트리는 블랜딩 도구로 사용다.(파스텔톤의 색를 만들고 싶을 때나 이미 칠한 색을 연하게 만들기 위해 덧칠 용도로 사용한다.)

이때까지는 잘 몰랐다. 꽃잎들의 명암을 표현할 때 보라색을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후, 오른쪽 부분의 분홍빛이 도는 꽃들을 그리면서 깨달았다. 보라색이 아닌 회색으로 음영 표현을 했어야 했다. 빛을 받아 꽃잎이 흰색에 가깝게 보이는데 회색이 아닌 보라색으로 음영을 넣으니 꽃잎이 너무 보라보라 해진 것이고 분홍색 꽃들을 그리다 보니 비교되어 색감이 확 느껴진 것이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면서 어느덧 분홍 꽃들을 그리는 중. 2021.5.18.

그리고 이후 또 한 번의 깨달음이 왔다. 꽃의 개수가 많으니 명암은 진도를 다 나간 후에(꽃 부분을 다 그린 후에) 전체적으로 잡아야겠구나. 지금 이렇게 고치다가는 네버엔딩이 되겠다. 다행히도 오른쪽 연분홍 꽃들을 그릴 때에는 수정을 거의 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진도를 나갈 수 있었고 꽃 부분을 모두 완성한 후에는 보라색은 덜어내고 단계별(I~IV) 회색을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명암을 넣으며 수정 작업을 했다. 뒤쪽, 왼쪽, 오른쪽 이렇게 세 부분의 꽃 뭉치가 각각의 덩어리로 보일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이번 그림은 지금까지 내가 그린 그림 중에 가장 지우개를 많이 사용하고 덧칠을 많이 한 그림으로 손꼽을 수 있을 것 같다. (※ 참고로 색연필화의 경우, 지우개는 종이를 상하게 하니 가능하면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네버엔딩 꽃 부분을 과감히 끝내고 잎 채색 중. 2021.5.23


4월에서 미뤄진 수수꽃다리는 꼭 5월의 동네꽃이어야 했기에 5월 10일부터 작업을 마칠 때까지의 15일간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업을 했고 마침내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기쁘다. 예전에 작업했던 파인애플을 매일 한 알씩 그리던 때를 생각나게 한 수수꽃다리의 수많은 꽃송이들은 나의 끈기와 인내도 한 단계 레벨업 시킨 것 같다. Thank you. 수수꽃다리!

수수꽃다리. 2021.5.24. by 까실 (종이에 색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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