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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Nov 24. 2024

고생했어요 우리 다 알아요


진희와 준석은 글램핑을 예약했다.


4인이 묵을 수 있어 미희와 정태에게도 시간 되면 오라고 했다. 미희와 정태의 첫 번째 결혼기념일 주말이다. 고민하지 않고 바로 가겠다고 했다.  아침부터 서둘렀지만 차도 막히고 마트에 들러 부족한 물품을 하느라 준비도 늦어져 미희와 정태는 2시가 넘어서 캠핑장에 도착했다. 충청도에 위치한 캠핑장은 산과 호수로 둘러싸여 있었다. 10월이었고 가을의 정취가 한껏 느껴지는 산새와 풍경에 꽉 막힌 도로사정에 벌써부터 지쳤던 두 사람은 캠핑장을 보자마자 피곤이 사라지 듯 환하게 웃었다. 진희와 준석이 마중을 나왔고 간단한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왔다.


  독채 글램핑으로 마당에 나무와 꽃이 심겨 있었고 한편에 개별 화장실과 욕실이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호수와 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태와 미희가 동시에 ‘우와’하며 소리를 내게 할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근사했다. 글램핑은 실내와 실외로 나뉘어 있었는데 실내는 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침대와 옷장, TV가 구비되어 있었고 실외는 주방을 옮겨놓은 듯 싱크대와 냉장고가 있었다. 가운데 4개 의자와 4인용 식탁으로 바비큐를 하기에 적합했다. 간단히 짐 정리 후 진희와 준석, 정태와 미희는 의자를 가지고 나와 호수 쪽 방향으로 나란히 앉았다. 가만히 앉아 들숨과 날숨을 크게 몇 번 쉬고 풍경을 구경하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정태가 먼저 말을 했다.


 “누나와 형님 덕분에 이런데도 와 보고 진짜 좋네요. 초대해 줘서 너무 고마워요. 누나가 오라고 하면 무조건 와야겠어! 그렇지 미희야?”

 “응! 정태는 잠은 집에서 자야 한다며 이런 데 가자고 하면 절대 안 오는데 웬일로 선뜻 나섰네.”

 “진희랑 둘만 여행을 다니는데 편하긴 한데 가끔 심심해. 정태가 오면 환기도 되고 즐겁고 안 심심해. 서로 좋은 거지! 아 미희도 좋아.”

 “정태만 좋은 거 같은데요, 형부?”

 “뭐.....”

 “부부는 일심동체니까 나나 너나 뭐 똑같지. 그렇죠 형님?!”

 “응 그렇지.”

 “그리고 진짜 좋은 거 맞죠 형님? 괜히 폐 끼치고 그런 거 아니죠? 저 폐 끼치고 그런 거 싫거든요. 불편하고 폐가 된다 그러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그럼 그럼 너무 좋지 너네!”


 준석의 학창 시절은 대부분 외국에서 보냈다. 대학생 때 한국으로 왔고 그때 같은 과 진희를 만났다. 한국엔 오래된 친구가 없었고 7년 동안 연애한 진희만이 유일한 친구였다. 결혼 후 대학 동기나 군대에서 만난 선임, 전 회사 동료 등 가끔 만나는 사람만 있을 뿐 ‘친구’는 진희가 유일하다.


 진희는 회사에서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로  잘 나가는 중이었고 잔병치레가 잦은 준석은 통풍, 간수치 이상 증세가 발견되어 운동과 식단 등 건강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유명한 게임 회사를 다녔던 준석은 3년 전 일을 그만두고 집안일을 하며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정태가 준석에게 식단 관리와 운동하는 법을 알려주었고 운동이나 식단 관리뿐 아니라 준석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주었다. 준석에게 진희 외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사람이 정태였고 그런 정태가 가족이 되어 더 좋다고 준석이 말하기도 했다.


  정태는 글램핑이 고급야영이라는 뜻 아니냐며 준석에게 물었다. 준석은 주재원 아버지를 따라 다양한 나라에서 살았던 터라 영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한국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하다. 인터넷을 잠시 검색하더니

 “어.. 맞네! ‘화려하다, 매혹적이다’라는 뜻의 ‘glamorous’와 야영의 ‘camping’의 합성 어래.”

 “형님 발음이 너무 좋은데요 글뤠머뤄스.”

 “아 뭐.. 근데 요즘 영어도 스페인어도 포르투갈어도 많이 까먹었어. 요즘은 진희가 스페인어 나보다 더 잘해! 몇 달 안 배웠는데도 신기하게 잘해. 진짜 천재 같아.”

 진희는 회사 내 남미 지역전문가로 회사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 지난 3-4년간 남미 전역을 돌며 역사 문화 언어 등을 익혔다. 내년에 주재원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영어랑 비슷한 게 많아서 금방 배우게 되더라.”

 진희는 괜히 멋쩍은지 준석의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준석이 대학생 때 진짜 한국말을 못 했어. 나는 그게 그렇게 귀엽더라. 사실 지금도 한국말 많이 늘고 잘하는데 4개 국어 중에 제일 못하는 게 한국말 이래. 맞지?”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한국말이 한.. 두 번째나 세 번째로 잘할걸?”

 “어이구.. 그러셔요?” 진희가 준석을 귀여워하며 웃었고 다시 미희와 정태를 보며 말을 이었다.



 “..... 너네는 신혼인데 어때? 잘 안 싸워? 우리는 신혼 초에 많이 싸웠는데.. 보통 한국말로 서로 대화하고 싸우거든. 한 번은 준석이 한국말이 서투니까 뭔가 대화하다가 답답한지 집을 나가서 몇 시간 동안 안 들어오더라. 그래서 내가 어디 갔다 왔냐고 물어보니 준석은 아직도 화가 났는지 ‘답답해서 차 끌고 바람피우러 좀 나갔다 왔다 왜?!!’ 이러는 거야. 바람 쐬러 나갔다 왔다는 말을 바람피우러 나갔다 왔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너무 웃긴 거야. 그래서 그냥 웃었더니 준석은 왜 웃냐며 어리둥절하는데 아 내가 뭐 또 한국말을 잘 못했구나 감지하면서도 아직도 화가 안 풀렸는데 웃음이 나오냐며 따져 묻는데 그것도 귀여운 거야. 그래서 그날은 그냥 서로 웃고 말았어.”

 미희와 정태는 ‘바람피우러 갔다 왔대’ 하며 그 문장을 반복해서 말하며 서로를 보고 웃으며 때리며 흔들며 얼굴이 빨개지도록 웃었다. 미희와 정태가 다 웃었고 조용해지자 그 틈을 타서 진희가 몇 마디 덧붙였다.


 “아무튼 결혼기념일 축하해! 며칠 전 같은데 벌써 1년이 넘었다니?! 시간 진짜 빠르다. 우리도 벌써 결혼한 지 10년 됐지?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잖아. 내가 맞니, 네가 맞니, 내가 틀렸니, 네가 틀렸니 그러다 보면 정말 한도 끝도 없다. 그냥 한쪽이 웃으면 끝이야. 별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서로 감정소모 한지 몰라.”

 “우리도 서로 감정 소모해 봤으니 그게 아닌지 알았지. 말해줘도 몰라. 얘네도 살아봐야 돼.”
  “아무튼, 그래도 순간 감정이 상할 때는 그냥 지나가. 지나가고 서로 안정이 되었을 때 서로 대화로 풀어가는 거 추천한다!”

 진희와 준석의 조언에 미희 정태는 가만히 듣다가 ‘네!’ 하며 동시에 대답했다. 정태는 곧이어 진희에게 준석의 한국말 에피소드 너무 웃긴다, 다른 것은 또 없냐며 물었다. 진희는 많은데 갑자기 물어보니 생각이 잘 안 난다며 또 뭐가 있었지? 하면서 골똘했다. 두세 개 정도 준석의 한국말 에피소드 이야기가 이어졌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5시에 저녁 먹을 준비를 하자고 했는데 노을이 너무 예쁘다며 호수와 산을 바라보며 네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이 깜깜해져서야 저녁 먹을 준비에 돌입했다. 미희와 진희는 각종 채소를 씻었고 준석과 정태가 캠핑장에서 준비해 준 장작세트에 불을 붙이고 소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까지 꺼내 구웠다. 준석은 인터넷에서 산 장작이라며 커다란 통나무 하나를 꺼냈다. 통나무 장작? 통나무 버너?라는 건데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안에 불을 붙이면 통나무 안에 불이 붙는 거였다. 준석과 정태는 장작하나로 이야기가 길어졌고 진희와 미희는 준석과 정태가 구워주는 각종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라면을 꼭 끓여 먹자고 했는데 준비한 고기도 다 먹지 못했다. 네 사람은 부른 배를 부여잡고 각자 의자에 기대어 널브러졌다.


 준석은 벨트를 살짝 풀어야겠다며 세 사람에게 양해를 구했다. 진희는 그런 건 말하지 말고 조용히 알아서 하는 거라며 손사래를 쳤고 미희는 고개를 심하게 끄덕이며 편한 대로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정태는 형님이 그러시니 저도 그럼 살짝 풀겠다며 자칫 실례가 될 수 있는 준석의 행동을 오히려 따라 하며 준석이 편하게 행동하길 배려했다. 벨트를 풀고 나니 한결 편해진 준석은 캔 맥주를 따고 한 모금 마시며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친아빠한테 벨트로 많이 맞았는데. 사랑의 매 그딴 거 없이 아무거나 막 집히는 걸로 맞았지. 벨트는 그나마 맞을 만했다.”

 “아 진짜요 형님?! 저는 벨트로는 안 맞아 봤는데 하여튼 저도 온갖 걸로 다 맞아봤어요. 고무호스, 빗자루, 심지어 전깃줄 있잖아요. 요즘 같은 220 볼트 말고 110 볼트 얇은 전깃줄이요. 여러 번 감아서 맞는데 그게 제일 아팠던 거 같아요. 완전 채찍느낌으로, 그때가 여름이어서 등이 다 타고 물집이 잡혔는데 전깃줄로 내리치니까 물집 터지고 피나고.. 너무 아팠어요. 지금도 그 고통이 다 생생하게 남아있어요. 찰싹 때리는 게 아니라 진기줄이 등에 착 감겨서 등 전체를 휘갈기고 가는 느낌. 으으으~”


 같이 듣고 있던 준석도 그 고통이 느껴지듯이 정태와 함께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희도 찡그린 얼굴로 양팔을 꼭 안으며 정태의 말을 들었다. 미희는 정태에게 자주 들었던 터라 이야기가 적응할 법도 한데 들을 때마다 적응이 안 되어 얼굴이 찌푸려졌다. 찌부러진 얼굴로 옆에 앉은 정태를 바라보며 등과 팔을 덤덤히 쓰다듬었다.  


 “벨트도 채찍 비슷한 느낌이긴 한데 전깃줄은 진짜 심했다. 나는 아빠 한데 주먹으로 얼굴을 하도 맞아서 어느 날은 내가 얼굴 말고 다른 데 때리면 안 되냐고 부탁했더니 그날은 오히려 얼굴만 계속 맞았어. 다음날 얼굴이 하도 붓고 멍들어서 학교를 못 갈 정도로.”


 “저는 정신을 잃기 전까지 맞은 거 같아요. 방 코너에 사람을 몰아서 때리는데 사람이 아주 넝마? 걸레가 될 때까지. 엄마가 때리다가 힘이 부쳐서 못 때릴 때까지 맞았어요. 맞아서 아픈 거보다 수치심이라는 걸 알 때여서 맞고 난 이후에 제 모습이 처량하고 너무 수치스러운 거예요. 죽고 싶다는 생각 많이 했어요. 그때가 여름이었고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학교를 가야 하는데 팔다리가 멍이 들어서 파랗고 까맣잖아요. 집에 있는 살색 크레파스를 꺼내서 막 칠했던 기억이 있어요.”


 외국 살고 주재원 가족이니 돈 걱정 없이 살았을 것 같은 준석의 의외의 모습에 정태는 같은 상처가 있는 사람을 만나 반갑기라도 한 듯 이야기를 이었고 어쩌다 정태의 너무 깊은 상처와 내면을 맞닥뜨린 세 사람은 아무 말하지 못했다.


 “사람이 태어나서 부모, 특히 생모를 의지하잖아요. 내가 의지할 사람이고 나를 세상으로부터 지켜주고 보호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학대한다는 게 너무 이상하고 부조리한 거예요. 내가 처음 접하는 세상은 엄마이고 가족인데 나를 사랑한다는 생모가, 가족이 나를 이렇게 가해하고 학대한다는 사실에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때부터 죽음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언제부터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됐어요. 사람에 대한 극명한 이중성을 엄마를 통해 알게 되니까.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나 혹은 착하다는, 선하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 반대의 모습, 추악하고 악한 모습을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나 세상을 저는 믿지 않게 되었어요. 제가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 미희예요. 아마 미희 아니었으면 전 평생 혼자 살았을 거 같아요.”


 주변은 어둑하고 조용했다. 정태가 나지막이 뱉는 단어와 문장들이 크게 울렸다.
  “진희랑 미희는 부모님한테 한 번도 안 맞아봤지? 부모님 너무 좋으셔서. 두 분 아직도 사이좋으시잖아. 이혼 안 하고 사이좋은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도 진짜 복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정말 장가 잘 왔어.”

 “맞아요 형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고기를 굽다 남은 장작들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네 사람은 한동안 가만히 타들어가는 장작만 바라보았다.


준석과 정태의 대화를 내내 듣고만 있던 진희가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빠랑 엄마랑 캐나다 여행 간 적 있다, 미희 너 기억나지?”

 “응”

 “캐나다에서 왔는데 아빠가 가방을 두 개만 사 온 거야. 미희랑 영희 거였고 나랑 선희 건 없었어. 하나에 10만 원이 넘는 거였으니 아빠도 4개를 사기에는 좀 부담됐겠지, 나랑 선희는 결혼했고 결혼 안 한 미희 영희 것만 사 온 거 같은데 선희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게 너무 서운하더라고.”

 편안하게 시작했던 이야기가 ‘서운’이라는 말에서 진희는 뭔가 모를 북받침이 일어 울먹이기 시작했고 이후 몇 마디를 이어갈 때에는 감정이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나도 백화점에서 살 수 있지. 근데 나도 딸이고 아빠가 사준 선물을 받아 보고 싶은데, 아빠가 딸을 위해 사 온 선물이 부러웠어. 꼭 선물이나 가방이 갖고 싶었던 게 아니라 아빠가 주는 선물을 받고 싶었나 봐. 생각해 보니까 아빠나 엄마한테 선물이라고 받은 게 하나도 없더라. 뭐, 어릴 때 이것저것 많이 받은 거 나도 알지, 근데 커서는.. 아 짜증 나게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잘 모르겠네. 아무튼 나는 그게 벌써 몇 년 전인데도 서운하더라고.”


 진희는 자신도 모르게 복받쳐 올라 차오르는 숨을 참으며 말했다가 울먹이며 말했다가 울음을 삼켰다가 뚝뚝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가 했다. 처음 보는 진희의 모습에 준석, 정태, 미희가 일제히 당황했고 정태와 준석은 자신보다 더한 상처를 가진 사람처럼 진희를 달래며 안타까워했다. 정태는 우는 아이 달래듯 “누나!! 내가 그 가방 사줄게요. 우리 진희, 오빠가 가방 하나 사줘야지! 이번 주에 오빠 백화점 간다!” 하며 우는 진희를 웃겨 버렸고 이어서 “누나 맏이로서 고생한 거 미희에게 들었어요. 고생했어요. 우리 다 알아요.” 하며 진희의 마음을 알아주었다.


 곧 있으면 마흔인지만 동그란 얼굴형에 얼굴형을 따라 자른 동그란 짧은 단발머리. 속눈썹이 길고 짙어 더 까맣게 보이는 동그란 눈. 작고 통통한 진희. 캠핑 의자에 앉아 울고 있는 진희는 일곱 살 아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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