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나무
식물의 잎이나 열매, 꽃과 같이 한 부분만으로도 이름을 딱딱 맞추시는 분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고 존경심이 생겨난다. 그 많은 식물들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어떤 과정으로 필터링하여 정답을 내놓으는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형태적으로 비슷한 식물들에 대하여 잎자루, 잎, 줄기 등의 길이와 털, 모양을 기준으로 세밀하게 관찰하여 분류한 분들의 글을 읽으면 처음엔 한 단어 한 단어 집중을 하다 나중엔 머릿속이 뒤죽박죽 되어 결국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많다. 사람이니 모두 같은 관찰력을 가졌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 경험적 결론이다.
열심히 관찰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서면 혼란스러운 내 눈엔 너무 비슷해 보이는 빨갛고 못생긴 열매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산딸나무 열매와 꾸지뽕나무 열매이다. 두 열매를 양손에 두고 동시에 직접 비교해 볼 기회가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두 열매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산딸나무는 열매가 딸기를 닮아 산의 딸기라는 뜻으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층층나무속 나무인 산수유 열매가 광택이 도는 예쁜 새빨간 색인 것과 달리 산딸나무 열매는 매끄럽지 않고, 물 빠진 빨간색 껍질을 가졌다. 딸기라는 이름이 붙은 것과는 달리 본능적으로 참 맛이 없어 보이게 생겼다. 꾸지뽕나무는 뽕나무와 닮아 '굳이뽕나무'라 불렸다는 설과 나무가 곧아 '굳은뽕나무'로 불려 꾸지뽕이 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꾸지뽕나무 열매 역시 색이 바랜 빨간색 껍질로 싸여있고 울퉁불퉁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산딸나무는 자라는 속도가 늦어 관상용 조경수로 공원과 아파트 등지에 많이 심겨 있어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그 덕에 한 때 TV방송에서 꾸지뽕열매가 몸에 좋다고 소개된 뒤 애꿎은 공원 산딸나무 열매가 다 사라졌다는 에피소드가 회자되는 것을 보면 두 열매를 나만 헷갈려하는 것은 아닌 듯싶다. 두 나무를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꽃이다. 봄에 피는 산딸나무 꽃은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크기 때문에 꽃이 피면 단번에 알아보기 쉽다. 머리에 납작한 하얀색 꽃핀을 꽂은 듯 단정한 오월의 산딸나무를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반면 꾸지뽕나무를 도심에서 보기 어려워 나도 그 꽃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열매는 산딸나무와 흡사하지만 꽃의 모양은 완전히 달랐다. 꾸지뽕나무는 암수딴그루이기 때문에 암꽃이 피는 나무에서만 열매가 맺히고 꽃도 열매모양과 같이 동그랗게 모여 핀다. 한데 암꽃의 경우에는 작은 꽃마다 암술들이 혀를 내밀듯 뒤엉켜 튀어나와 있다. 앞꽃이 동그랗게 모여 핀 모습은 암술 때문에 흡사 가느다란 벌레들이 뒤엉켜있는 것 같이 보인다.
열매 모양은 비슷한데 꽃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의 해답은 산딸나무 꽃잎에 있었다. 산딸나무의 정확하게 자른 듯 정렬된 모양의 꽃잎은 실은 꽃이 아니라 포엽이라고 한다. 꽃 가운데 암술과 수술이 모여있는 둥근 모양의 중심부만 꽃이고 하얀 꽃잎으로 보이는 잎은 꽃이나 꽃차례를 지지하거나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포엽이다. 포엽은 곤충과 새를 모으기 위해 식물이 영리하게 진화시킨 부분이라고도 하는데 수국, 라벤더, 포인세티아와 같이 인간의 눈으로도 아름다운 포엽을 가진 식물들이 많다. 산딸나무도 아름다운 포엽을 가진 식물 중 하나였던 것이다. 가운데 모여 핀 동그란 꽃만 살펴보면 꾸지뽕나무 꽃과 형태적으로 닮았고 그 두 나무의 열매가 비슷한 모양인 것이 금세 수긍이 간다.
두 열매가 시각적인 측면에서 흡사해 구분을 못하는 관찰력 부족에 대한 아쉬움에서 출발했지만, 두 나무에 대해 알아볼 시간을 가짐으로써 꾸지뽕나무의 꽃, 두 나무의 닮은 꼴 꽃 모양, 식물의 포엽 등에 대해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내 직감에 대한 자신감을 덤으로 얻어 식물 형태와 분류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공부할 열정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성급하게 내가 잘못 판단했다는 결론을 짓고 나의 모자람을 탓하기 전에 사안에 대해 찬찬히 더 알아보고 자세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런 살펴봄의 시간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살펴봄의 시간이 결과보다는 일의 과정, 내가 일을 대하는 자세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살펴봄의 시간은 '맞다'와 '틀리다'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 사고를 더욱 유연하게 해 준다. '내가 맞았다!'와 '내가 틀렸다!"라는 결론은 얼마나 무서운 생각인가! 우리는 각박하게 자신과 타인을 몰아세우기보다는 처음 생각과는 달랐지만 이번에 이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음에는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어!라고 말할 수 있는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