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대강 살고 싶다
굳이 일하고 밥을 먹고살아야 한다면,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단순한 업무만 하고 싶었다. 말없이 버튼을 눌러서, 넘어가는 게임을 하듯이 살아가고 싶었다. 버튼 하나에 돈 1원이 적립된다면, 손가락 디스크가 걸리더라도 열심히 눌렀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난 말로 돈을 번다. 물론 그렇다고 클릭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말하며 클릭도 하고 있다. 그래야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사람임에는 변함이 없다. 정말 단순하게 살고 싶단 생각을 하는 것이 문제였을까?
점점 불안해지는 마음에 타인이 했던 말이 있었다.
"야. 그냥 대강대강 살아. 뭐 그리 열심히 살려고 하니. 그렇다고 좋은 것도 없잖아. "
나도 참 대충 살고 싶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아프지도 않았을 것인데, 뭐가 급하다고 대충 살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말이 씨가 되어서 정말 대강면(帶江面)에 갔다. 전혀 뜻이 다른 곳인데, 어감은 인생이 나를 그렇게 살라고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첫 출근에서 느낀 감정은 참 먼 곳이었다. 그렇게 먼 곳을 가는 것은 산내면이라는 지리산에 들어간 기분과는 사뭇 달랐다. 이미 모든 것을 접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으나, 거의 끝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미련 없이 떠나온 모든 과거에서 틈틈이 새어 나오는 기억들이 맑은 것만은 아니었다. 떠나는 자리도 씁쓸하고, 미안해서 부끄러웠다. 애써 태연하게 살아가 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도망 나온 자리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모든 행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배웅이라는 것은 그래도 미안하지 않은 마음에 들 때야 헤어지는 멋이 생긴다. 그러한 점에서는 나의 모든 행동은 구질구질해서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 못난 사람이었다. 그렇게 먼 길을 돌아온 과거의 인연들에 떳떳하지 못한 상태로 이곳에 와버렸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던 남자는 인사를 하고, 설명하고, 웃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과연 그 모습이 어떨지는 상상하지도 않은 것은 당연했다. 과연 사람은 어디에서 대충 사는 샘이 솟아오르는 것인가? 아무리 책을 읽어도 그런 삶의 방법은 찾지를 못하겠다.
그래서 무턱대고 그만두려는 사람에게 주변은 나를 쉬라고 했다. 그렇게 덕분에 휴직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만두려는 사람의 손을 잡고, 이끌 듯이 휘휘 돌다 보니 어느덧 6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던져지듯이 대강면에 왔다.
출입구 가까이 앉아서 나는 오늘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했고, 가는 모든 사람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게 나의 일이었다. 아무 말도 하기 싫었던 사람은 오히려 더 많은 말을 하면서 사람을 맞이했다. 그리고 웃었다. 또는 당황스러운 질문에 땀도 줄줄 흘렀다. 또 모르는 사이에 후임이 생겼고, 내 인생과 다른 어느 누군가와 파트너가 되어서 대강대강 살려는 남자에게 시련을 주는 사람도 생겼다.
떠나는 사람에게 배웅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애써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끝내 씁쓸한 미소가 보일까 봐. 마스크로 감춘다. 숨기고 싶은 부끄러움이 마스크 때문에 가려져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