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으로 피었던 달맞이꽃이 자취를 감추었다. 가을이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엔 밤에 피는 노란색 달맞이꽃보다 새로운 품종의 낮달맞이꽃이 다양한 색깔로 피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꽃은 재래종인 노란색 달맞이꽃이다. 밤부터 새벽까지 피어 있다가 낮엔 꽃잎을 닫는. 소박하고 수줍게 달빛 받으며 피어나는 걸 보면, 꼭 순박한 처녀처럼 공연히 가슴이 두근댄다. 자주 다니는 천변 산책로에 드문드문 피어 여름 내 행복감을 느끼게 했던 달맞이꽃.
오래전 일이다. 잡지사로부터 오지 탐방하고 글을 한 편 써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오지라면 친정 마을도 해당되지만 성의 없는 것 같아 고심한 끝에 문경의 어느 산골을 선택했다. 새벽에 잡지사에서 나온 사진 기자가 운전하는 차에 올랐다. 처음 만나는 그와 무슨 배짱으로 그 산골로 갔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다. 아마 애송이 작가인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인정해 부탁했다는 게 함함해서 흔쾌히 응했던 모양이다.
남편은 우스갯소리를 했다. 혹시 마늘 까는 곳으로 데려가는 것 아니냐고. 나는 눈을 흘기며 내가 무기인데 어딜 데려가겠느냐고 웃었다. 잡지사에 나온 낯선 기자는 말이 없는 남자였다. 문경까지 가면서 별 말을 한 기억이 없다. 나는 시집을 뒤적였고 기자는 묵묵히 운전만 했다. 사실 문경으로 정한 것은 나였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곳으로 정한 이유 또한 나도 모른다.
어둑한 새벽에 출발했는데, 문경에 도착했을 적엔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해가 뜨고 있었다. 그곳 어느 산자락에 살고 있는 화전민을 만나는 게 우리의 최종 목표였다. 솔직히 아무리 90년대라곤 해도 화전민이 어디 있을 거라고 그런 엉뚱한 생각을 했는지. 아마도 오지라고 하니 그런 곳을 취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산골짜기로, 산골짜기로, 차를 몰고 올라갔다.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자고, 그런 다음 산속으로 들어가서 화전민을 찾자고, 사진기자와 나는 아주 암팡진 계획을 급하게 세웠다.
계획대로 산골짜기에 있는 어느 마을 앞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마을 뒷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산속으로 난 길이 있었다. 마침 마을에서 만난 주민에게 저 산 위로 올라가면 마을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재를 넘으면 사람이 산다고 해서 그 산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스러지지 않은 이슬에 바짓가랑이가 젖어도 화전민을 만나리라는 기대를 안고 산속으로, 산속으로 들어갔다.
여름날이어서 해가 떠오르자 산 속이라도 땀이 났다. 얼마나 걸었을까. 산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재를 다 넘자 편편한 분지가 펼쳐졌고, 거기에 노란 달맞이꽃이 가득 피어 있는 게 아닌가.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일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아침 이슬을 머금고 핀 달맞이꽃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나의 탄성에 기자는 빙그레 웃으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나는 넋 잃고 달맞이꽃을 감상했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비둘기 울음소리,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잉잉거리는 벌들, 눈앞에 펼쳐진 노란 달맞이꽃 무리, 세상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꽃밭이 있을까. 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이제 가봐야죠?” 기자가 말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금세 친해져서 오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달맞이꽃이 우리를 격의 없게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산꼭대기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 봤지만 화전민은 만나지 못했다. 다시 되짚어서 달맞이꽃밭으로 와 한참 동안 더 있다가 차를 세운 마을 쪽으로 갔다. 결국, 화전민커녕 주민도 한 사람만 만난 채 문경을 벗어났다. 인적이 드문 곳이니 오지는 오지 아닌가 싶다. 기자와 나는 그 달맞이꽃에 대하여 쓰고 사진을 첨부해 탐방 기사를 쓰기로 했다. 문경새재 넘어서 늦은 점심을 먹었으며 해가 있을 때 집에 도착했다.
그 후 기자와 다시는 만난 적 없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사람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달맞이꽃 흐드러진 그 분지에서 내가 지른 환호성에 빙그레 웃던 모습은 기억난다. 인생여정에서 그렇게 한 번 만나고 다시는 못 만나는 사람도 허다하다. 하지만 달맞이꽃을 보면 어색하기만 했던 여정에서 금세 친구처럼 가까워졌던 순간이 가끔 생각난다. 그 기자도 달맞이꽃을 볼 때, 애송이 작가로 흔쾌히 오지 탐방에 같이 갔던 나를 떠올릴까.
이제 내년 여름이 되어야만 달맞이꽃을 볼 수 있다. 달맞이꽃이 달을 기다리듯 나도 꽃을 기다리리라. 기다림처럼 아름다운 것도 드물 테니까. 그리고 언젠가 문경 그곳에 꼭 가보고 싶다. 가더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지만. 못 찾아도 괜찮을 것 같다. 기억 속엔 분명히 있는 곳이므로. 벌써 여름이 기다려진다. 무덥고 힘든 여름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순전히 달맞이꽃을 보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