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teOE Jan 24. 2020

나는 너무도 사랑받고 싶어서 눈을 감는다

영화 <파수꾼>

눈꺼풀이 감겨왔다.


스트레스가 극심해질 때의 머릿속은 이제 막 2막이 종료된 극장처럼 암전 상태가 된다. 이어 환하게 켜지는 전체 조명과 함께 두서없이 풀썩거리는 소음, 말소리, 공기의 흐름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안절부절못하는 관객의 마음이란 가히. 나는 누군가 이 끈적하고 두꺼운 늪에 뒤덮여있는 답답한 고요를 완전히 팍-하고 깨주기를 소원하고 있다.


보이는 것 이면의 말과 생각, 의도, 계획, 더 나아가 전략에 가까운 진심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꽂힌다. 내 심장에 잘도 비수를 꽂고는 그걸 알면서도 뻔한 연극을 멈출 생각이 없는 이 사람의 행동은, 기만이다.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기꺼이 제 돈 주고 티켓까지 사서 들어가 제일 좋은 자리에서 경청을 하고 앉아있는 나 자신은 더 이해할 수가 없다. 막이 오르면, 아주 찰나의 순간에, 아주 잠깐 보이는 조명의 반짝임이나, 몇 가지 배경음이 가져다주는 팅글에 매료된 척을 하려 안간힘을 쓰는 내가 있다. 





나는 종종 다른 이의 자유를 위해 나 자신을 죽인다.


그렇게 하면 순간 내가 살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나는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을 제일 행복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사실 보통의 사람은 굳이 다른 이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납작하게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자주 그랬다.


써놓고 보니 잘못인 것 같다.

잘못이 아닌데.


그래, 아니다.

그러나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


그래, 그것도 아니다.


눈꺼풀이 감겨온다.


나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 발버둥 치는 세월을 보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줄지, 아니, 좋아해 줄지, 그것도 아니, 관심을 가져줄지 알고 싶어서 오직 그것만 생각했다. 그 과정에 왜? 는 없었다. 그런 건 없었다.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내가 직면한 세상을 전부 다 들여다봐야만 했고 그렇게 복잡해지고 싶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마취제와 같다. 아픔 따윈 몰라도 되고 몽롱해진 상태 속에서 굳이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제공해 준다. 그래도 말이 된다. 그래도 게을러 보이지 않는다. 그냥 그런 건데? 할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있다.


마취제가 필요했나 보다. 술도 아니고 음식도 아니고 담배도 아닌 그냥 마취제. 내 모든 정신이 또렷하게 살아있는 상태에서 아픔만 쏙 빼놓고 싶었나 보다. 나는 그렇게 사랑을 원했다. 형태가 어떻든.


안타깝게도 나는 번번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모멸의 쓴 맛을 봐야만 했다. 이 표현은 좀 점잖고, 사실은 좀 많이 절망적이었다. 사랑을 갈구하고 관심을 바라며 기만을 모른 척 삼키면 그건 종국에 나를 향한 칼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모든 사람이 나를 배신해 왔는가?


아니다.


그러나 때때로 어떤 이는 나를


유용한 무기로
자신의 도덕성을 증명하기 위해
귀찮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정을 버려내기 위해
트로피로


옆에 두고 싶어 했다.


그것은 내가 원했던 것인가?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기만이 아닌가.

그래, 그것은 기만이다.


사실은 원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냥

그냥, 정말 그냥


나를 그냥 옆에 두고 싶어 해 주길 원했다.


나는 그 눈빛의 너머에 비친 목적이나 가식을 모르고 싶었다.

내가 바라본 그 너머엔 진실이 있었다.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나의 가치가 다하면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여지없이 멀어져 갔다.

그래 그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야 했다.

내가 살아있는 순간을 느끼기 위해 할 줄 아는 일들을 늘려야 했다.


당최 나의 사격 솜씨가 좋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으니

총알이라도 많아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당긴 방아쇠는 꼭 시간을 돌고 돌아 내 심장에 박혔다.

억울했다.


사실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마취상태가 되기 위해 스스로 수술이 필요한 상처를 낸 셈이다.


이 생각이 올바른가.






눈꺼풀이 감겨온다.

정신은 아득해지고 눈 앞의 사물은 점차 흐려간다.

점점 내가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젠 스스로 마취 상태에 들어갈 수 있나 보다.


제법 편하다.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게나 간절할 땐 저 멀리 있는 것 같더니.

놓아버리니 이렇게 마음이 고요할 수가 없다.


편안하다.

고요하다.


눈이 감긴다.


나는 너무도 사랑받고 싶어서 눈을 감는다.


사랑과 죽음은 닮아있다.




이전 01화 서른이 되기 전까지의 삶은 군고구마 같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