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수 폭포, 아르헨티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 이과수 폭포가 있는 마을까지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갈아 탈 버스를 찾아 헤매고 있는데 앨리슨과 리사를 알게 됐다. 그 둘도 나처럼 이과수 폭포가 있는 마을을 가기 위해 헤매고 있었다. (아! 그리고 이때 상파울루에서 만났던 캐넌도 다시 만났다. 캐넌은 캐넌 답게 새로 사귄 여자 친구와 함께 있었다.)
버스를 타고 마을에 도착한 우리.
이미 저녁 시간이 다 되어 폭포를 보러 가는 일은 불가능했다. 앨리슨은 숙소를 아직 안 정했으면 본인들이 미리 예약해둔 숙소로 같이 가자 말했다.
"걸어서 20분 정도 가야 하는 것 같아. 그래도 혼자 지내는 것보다 우리랑 함께 있는 게 덜 외롭고 더 안전하지 않을까?"
나는 이런 상황에서 웬만하면 같이 따라나선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리우에서부터 이과수까지 24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온 날이었기에 단 5분도 걷고 싶지 않았다. 여행 피로감도 서서히 올라올 때였고, 무조건 터미널에서 가까운 숙소를 잡아 쉬고 싶었다. 우리는 해가 밝으면 이과수 폭포를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2011년은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던 때도 아니었고, 남미에는 핸드폰을 아예 들고 오지 않는 여행객들도 많았다. 앨리슨과 리사도 핸드폰 없이 여행하는 여행객들이었다.
"그럼 내일 아침 9시, 여기 이 자리에서 만나!"
우리는 그렇게 구두로만 약속을 정하고 헤어졌는데, 역시나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먼저 이과수 폭포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색색의 나비 떼가 사람들 곁을 맴돌았다.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문양의 나비들. 사람이 무섭지도 않은지 어깨에 앉았다가 머리에 앉았다가 무릎에 앉았다.
조금 더 걸으니 원숭이가 나무에서 내려와 사람들의 음식을 뺏어 먹었다. 넋 놓고 원숭이와 나비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돌아보니 앨리슨이었다.
"미안, 늦잠을 자고 말았어."
우리는 지도를 펼쳐 어떻게 이과수 폭포를 구경할 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실제로 본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하이라이트 폭포는 정말 거대하고 웅장했다. 이곳에다 슬픔을 던져버리면 정말이지 그 슬픔이 영영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나의 슬픔을 비롯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픔도 그곳에 함께 묻어주었다. 그들이 어떤 슬픔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진 않았지만 '결국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이란 다 비슷비슷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느 정도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나고 보니 타인의 슬픔을 이해한다고 생각한 것은 참 오만한 태도였다. 서울로 돌아온 뒤, 처음으로 내 슬픔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가진 슬픔들에 더 집중해 보았다.
그들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슬픔들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때때로 심연 깊이 가라앉았으며, 떠오르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슬픔은 공감하거나 비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왜 슬픔은 매일매일 다른 색깔로, 다른 감정으로 피어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왜 쉬지 않고 슬픈 것인지….
독일에서 온 리사와는 이야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친절했지만 나보다 더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친구처럼 느껴졌다. 리사는 늘 사진을 찍었다. 나와 앨리슨이 대화를 나눌 때도 리사는 사진을 찍는 데 심취해 있었다.
한 번은 리사가 찍은 사진을 볼 기회가 있었다. 리사가 찍은 사진은 나뭇잎 사진, 새의 발자국 사진, 손잡이 사진, 고여있는 물 웅덩이 사진 등등. 사람 사진은 하나도 없었다. 리사의 사진들을 보니 리사를 조금 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면 앨리슨은 리사와 정 반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전형적인 캐나다 사람. 따뜻하고 온화하고 예의 바르고 상냥하고 조금은 수다스러운 오타와(Ottawa) 사람.
앨리슨은 법학전문대학원 재학 중에 남미를 여행 온 친구였다. 이과수 폭포를 여행한 다음 브라질로 향하는 친구였는데 스페인어는 꽤나 잘하는 반면 포르투갈어는 하나도 못 한다고 했다. 이미 브라질을 여행하고 아르헨티나로 넘어온 내게 앨리슨은 궁금한 게 많았다.
"돈은 어떤 식으로 들고 다녀야 해? 몇 시 이후부터는 돌아다니면 안 돼? 물은 다 사 먹어야겠지?"
이미 다른 남미 국가들을 여행한 앨리슨도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 브라질은 두려웠나 보다.
배낭여행객들 사이 브라질은 둘 중 하나로 귀결되는 곳이었다. '금기의 땅'이거나 '세상 가장 사랑하는 땅'. 대부분은 브라질을 금기의 땅으로 이야기했다. 대다수는 브라질에 대한 무성한 소문만 들었을 뿐, 직접 가보지는 않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앨리슨에게 브라질이 얼마나 아름답고 또 매력적인 나라인지 이야기해 주었다. 앨리슨의 얼굴엔 두려움과 호기심이 공존했다.
앨리슨은 캐나다로 돌아가 대학원 공부를 마저 마친 뒤 한국으로 여행을 올 계획이라 했다. 이건 남미를 오기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고, 이렇게 한국 친구까지 생겼으니 더더욱 갈 이유가 생겼다며. 그러니 꼭 만나자는 말과 함께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정말 그다음 해 앨리슨을 한국에서 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이 재밌는 건 예상을 늘 비껴가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홀로 브라질에 간 앨리슨은 거기서 어떤 브라질 남자를 만났고 사랑에 빠졌다. 캐나다로 돌아온 앨리슨은 한 동안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 그 브라질 남자를 캐나다로 초청해 동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첫째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도 낳았다. 둘째를 낳고 나서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겠다 싶었는지 둘은 결혼을 하고 셋째를 낳았다.
앨리슨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남편과 함께 오타와에 살고 있다.
앨리슨은 결국 한국에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