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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공간벌레 May 13. 2024

실재

2024년 5월 10일 금요일 오후 8:27

언제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희망 속에 잠겨 있다가 언제는 하루 종일 절망 속에 처박혀 숨만 겨우 쉬며 살아간다. 나를 더욱 미치게 하는 건 둘 중 무엇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재하지 않는 것에 눈이 먼 듯 더듬거리며 쫓아 갔다 끌려 갔다 현실의 나는 눈을 뜨고 있어도 앞을 보지 못한다.



눈 먼 예언자가 모든 것을 보듯, 눈 뜬 자가 한 치 앞을 알지 못하듯, 과연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정녕 보고 있는 것이 맞는 건가? 제대로 본다는 것은 무엇이며, 정확히 알아차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능한 일이기나 한 걸까?



이 세계는 너무나 어렵다. 이 아름답고 추악한 세상에서 도무지 정답을 찾을 수가 없다. 하물며 중간도 찾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이 희망 또는 절망, 삶 또는 죽음, 자유 또는 억압, 존경 또는 경멸, 포용 또는 배척, 플러스극 또는 마이너스극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만큼 이들은 서로 맞닿아 있어서, 그 스펙트럼이 아무리 넓다 한들 그 곳에서 중간이란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저 그 안을 빙글빙글 돌다가 머리가 어지러워 잠깐 멈출 뿐, 계속 돌고, 또 돈다. 한 번도 거스른 적이 없다. 참 성실한 자연, 성실한 인류다.



그러니 이 다채로운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본다 한들 그것을 본다고 믿는 자가 몇이나 되며, 그것을 봤다고 인정해주는 자 몇이나 된단 말인가? 난 내가 본 희망과 절망이 실재하지 않는 것임을 안다. 하지만 눈을 뜬 채로는 모르겠다. 그것은 분명 내 앞에 실재하기 때문이다.



눈 먼 자보다 눈 뜬 자가 더 많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못 본 것을 누군가 보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너무 나무라지 말자. 봐도 못 본 척 하라고 종용하지 말자. 명탐정 코난이 말했듯, 진실은 언제나 하나이기에, 그것 외엔 그 무엇도 상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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