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몇 번을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아이들에게 노트북, 휴대폰 충전기를 꼽지 못하도록 하고 창문을 타고 오는 섬광과 우렁찬 소리들을 이겨내 보고 있었다.
우르르쾅 번쩍.
이제껏 본 적 없는 번개가 내리치고 전기가 나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속으로는 나도 더럭 겁이 났는데도 아이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엄마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는 다른 집들은 괜찮은 지 마을 밴드에 물었다. 그러다가 전기가 나가면 차단기를 올리라는 남편 말이 생각났다. 집안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남편이 있었으면 걱정도 무섭지도 않았을 텐데...
TV 모니터가 나갔다. 며칠 전부터 화면이 검어지는가 싶었는데 이제 소리만 들린다. 새로 사야 하나, TV 없이 살아볼까, AS를 불러야 하나 이게 뭐라고 고민이 되었다. 남편이 있었다면 뭐라도 했을 텐데...
거실에 무중력 의자가 놓여있다. 남편과 나, 우리 둘 모두 가구 없는 걸 좋아해서 그동안 소파도 사지 않고 있었는데 앉기도 눕기도 환자들에게 편하다고 해서 무중력 의자 하나를 샀었다. 거실에 앉아 있으면 무중력 의자에 누워 TV를 보고, 잠이 들고, 창밖을 보던 남편이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의자로 눈이 간다. 남편이 투병 시작할 때 샀던 TV인데 무중력 의자에 앉아 투병 벗을 삼던 TV. 4년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빨리도 고장이 났다. TV 화면도 내 머릿속도 까맣다.
해발 높은 곳 우리 집은 당연히 도시가스 같은 건 들어오지 않는다. 그동안 한겨울 난방은 연탄으로, 온수는 석유보일러를 사용해왔다.
그날은 우리가 병원으로 가는 날이었다. 연탄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이렇게 저렇게 봐달라고 지인들께 부탁을 하고 병원을 갔었다. 그때 고장 났던 연탄보일러는 그 뒤로 영 신통치가 앉았고 올 가을에 아예 떼어버렸다. 연탄보일러가 고장이 나면 나 혼자 해결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아 떼어냈는데 겨울이 시작되니 벌써부터 보일러 석유 없어지는 것만 눈에 들어온다. 바닥에 깔 카펫을 사고 작은 전기 히터를 주문하고 아이들 수면 양말과 수면 잠옷을 꺼내어 세탁했다. 그동안의 겨울 우리 집은 연탸보일러를 떼면 늘 너무 집안이 따뜻해서 반팔을 입고 지내기도 했고 석유 걱정도 없었는데 올해는 그렇지가 않을 것 같다. 집도 옛날보다 춥고 내 마음도 춥다.
남편과 사별하고 깨닫게 된 것 중에 하나는 일상을 유지시키는 그 많은 일들 중에 내가 잘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일들이 익숙해지게 될 거라는 걸 나는 잘 안다. 이런 걸 해결해내면서 내가 억세어 지리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있어 일상이 그토록 평화롭고 안온했다는 생각. 내가 너무 빨리 혼자되었다는 생각. 내리는 비를 타고 슬퍼진다. 겨울비가 시리게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