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철
내가 보낸 편지를 네가 받았는지 모르겠어. 아마 받았더라두 엄청 웃었을지도 모르고…
나 한심하지 않니? '경비5소대'를 못 알아 들어서 '경비호소대'라구 썼으니. 멍청해라. 못 받았다면 모르지만 받았다면 편지 건네주면서 꽤나 말 많았겠다. 그렇잖아도 내심 들으면서 뭘 호소하나 싶었는데, 네 아버지께서 불러 주시는 거 적었는데 다시 여쭙기도 뭐 하고 해서 맞겠지 싶기두 하고. 그러게 네 작은형한테는 연락도 안 오고. 네가 편지를 안 쓴 건지 어쩐 건지 답답하잖아. 집으로 전화해두 아버지께서 받으시니 많은 걸 묻기도 힘들고… 나 어떡하라구. 게다가 오늘은 너 2번째 특박 나오는 날인데 연락두 없구. 뭐가 먼지 모르겠어. 정말 답답해.
이제 와서 편지 쓸 주소 가르쳐 줄려니 이등병땐 편지 쓰기도 힘들다며, 그래서 가르쳐 주나 마나일테고. 근데 정말 어떻게 된 거야? 그럼 특박 안 나오는 거니? 아님 언제쯤 나오니? 오늘 나올 거라고 생각하구 있다가 5시 넘어서까지 연락이 없길래 못 나오나 보다 해서 포기했지만… 내 심정도 이런데 못 나오는 넌 오죽이나 답답하겠니. 네 아버지께서 그러시더라. 네가 전화에 대고 집에 오고 싶다고 그랬다고… 집에서두 걱정 많으실 거야. 막내 군에 보내고 나서 말야. 더군다나 헌병과 방공포는 힘들다던데… 넌 헌병이잖아. 어때, 요즘 많이 힘들지? 적응하기도 힘들 테고. 너 특박 못 나올 거라고 생각하니까 이렇게 섭섭할 수가 없어. 네가 그랬잖아 추석 때나 봐야겠다고… 근데 뭐야 도대체…
이번엔 주소가 맞아서 내 편지 받아볼지 모르겠지만, 받아보게 되면 그래서 이 편지 읽게 되면, 다시 연락을 주던가 해. 작은형한테 편지 써서 정확한 네 자대주소와 특박 나오는 날짜정도… 네 작은형한테도 삐삐 쳤었는 데 사용정지더라고. 그래서 연락을 할 수가 없었어. 이젠 내 답답한 심정 좀 알겠어? 설마 집에 편지 쓸 여유도 없는 건 아니겠지? 아냐 여유가 없더라도… 꼭 해. 아니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게 전화를 하던가.
곧 추석이야. 부대에서 어떤 음식이 나올지 모르지만 집만큼이야 하겠어. 밥 잘 챙겨 먹고. 환절기니까 감기 조심하고. 명절 잘 보내. 군에서 처음 맞는 명절이라 섭섭하구 싫겠지만… 잘 견뎌봐. 너 몸도 튼튼해 보이지 않던데… 헌병 힘들다고들 해서 걱정된다. 편지 앞에 그냥 내가 신경질 부린 거 그러려니 해. 맘에 담아두지 말고. 나도 쓸쓸한 명절을 보낼 거 같네.
하지만 다행이라구 생각하지 뭐. 나두 감기가 심해서 며칠 앓아누웠거든. 좀 낫긴 했지만 추석 내낸 꼼짝 말고 집에 있어야 할거 같은데, 아니 집에만 있을래. 나돌아 다니지 말구. 너 만나서 감기 옮기니 그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 우리 회사에서두 나 땜에 벌써 3명이나 옮았거든. 헤헤…
그럼 담에는 정확한 주소 알아서 편지 쓸게…
1998. 10. 2.
P. S. 형한테 연락하기 힘들면 아무한테라두… 내 삐삐번호 알지?
아직 해지 안 했으니까. 그걸루 가르쳐 주면 돼. 미안해 삼철아.
내 집에 전화를 해 주소를 알아보고 형의 정지된 삐삐에 호출을 하고 그렇게 부쳐진 편지의 '경비호소대', 5소대가 호소대가 되었어도 편지는 문제없이 내게로 왔다. 아들인 나도 말을 붙이기가 주저될 만큼 무뚝뚝한 내 아버지이기에 두 번 묻지 못한 것을 백번이해한다. 생소한 명칭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그녀의 걱정과는 다르게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6주에 2박 3일이라는 공군 특박의 원칙은 사정에 따라 간혹 예외가 발생했다.
나 또한 이 원칙에 의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자대에 배치된 날을 기준으로 2박 3일이었다. 나 조차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연락하기도 쉽지 않았기에 그저 답답하고 답답했을 그녀이다. 이 놈에 군대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몰랐던 쫄따구 이병의 말만 믿고 수일 전부터 아니 헤어진 그 순간부터 그리고 하루 종일 기다린 그녀, 결국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실망이 컸을지 마음이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나를 걱정하며 미안하다는 말로 끝을 맺은 편지... 도대체 무엇이 미안한 것인지... 정작 미안해해야 할 사람은 나였고 지금 읽어도 미안하고 미안할 뿐이다.
반면, 대단히 소심하면서도 이따금 당돌한 그리고 매우 긍정적인 아내의 성격을 엿볼 수 있어 미소도 지어진다. 반대의 경우라면 나도 그녀처럼 할 수 있었을까? 성별이 바뀐다거나 아내가 여군이고 내가 민간인이라면, 나도 이렇게 적극적이고 헌신적이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앞으로 잘하면 되지 뭐... ^^
어제를 마지막으로 절대로 다시는 기회가 주어져서는 안 될 한 사람도 있지만,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