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나를 사랑하는 거죠?

아빠마중

by HeySu

아이가 유아기였을 때 동화책을 많이 읽어주었다.

출산 이전부터 그려왔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무릎 사이에 아이를 앉히고 그림 동화책을 펼치고 나는 마치 구연동화가가 된 것 마냥 이 목소리 저 목소리로 동화 속 인물들에 빙의하곤 했었다. 잠자리에 들 시간, 함께 누운 침대 위에는 아이가 골라온 그림책이 수북했고 한 가지 책에 꽂히며 아이는 "또! 또!"를 연발하며 처음 듣는 것 마냥 집중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잠자리 독서는 한 시간을 넘기는 날이 허다했고, 목소리가 쉬어 아무 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읽어준 날도 여러 밤이었다. 최소한 초등시기가 끝날 때까지는 잠자리 책을 읽어주리라는 다짐을 그래도 잘 지켰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학원 수업과 과제로 늦게 잘 수밖에 없는 아이의 사정은, 아쉽게도 아이와 나의 소중한 시간을 더 이상 유지 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도 아주 가끔은 아이에게 고전명작 소설을 읽어준다. 어디까지 듣고 잠든 것인지 알 수 없어 어느 장에서 접어둬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 잠든 아이의 얼굴에서 유아기 적 얼굴을 발견하곤 이마 한 번 쓰다듬는다. 고맙다 기특하다 , 옆에 누운 아이에게 마음으로 전하는 밤이다.



아이에게 읽어주었던 동화 중에 이태준 선생님의 '엄마마중'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1930년대에 아동들을 위한 동화를 많이 써 주셨던 분이다. 아동문학의 고전이라고 할 만큼 마음을 쾅 울리는 글들이 많다.


'엄마 마중'이라는 동화는 말도 서투른 어린아이가 전차 정류장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내용이다. 전차가 역에 들어설 때마다 아이는 천진하게 묻는다. "우리 엄마, 안 오?"

날은 저물어가고 , 코가 새빨개진 아이가 여러 대의 전차를 떠나보낸다. 한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엄마를 기다린다.

읽으면서 조마조마했었다. 끝끝내 엄마가 나타나지 않을까 봐 진작부터 내 눈에 눈물이 고였더랬다. 책 속이 아이는 울지도 않고 덤덤하게 전차가 들어올 방향을 향해 서 있다. 아이의 마음속이 어떨지 엄마가 반드시 오리라는 믿음이었을지,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었을지... 난 너무 걱정이 됐었다.


나의 유년 시절에도 '마중'의 기억이 있다.


몇 주 전 친구를 만나러 친구 집 부근 전철역에 내렸다. 고교 시절의 친구인지라, 그 친구는 여전히 그 동네에서 살고 있는지라 나는 오랜만에 내가 살았던 옛 동네를 찾은 셈이었다.

역에 내려 긴 역사 내를 걸어 통과하는데, 문득 초등시절 아빠를 수차례 마중 나오곤 했던 그 길이란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그 역사는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1980년대 중후반의 그때는, 내가 마중 나갈 거라 지금처럼 갑자기 전할 방법도 없었다. 아빠가 정확히 언제 도착할는지도 알 수 없음에도, 나는 항상 직장인들이 우르르 퇴근하는 '그때 즈음' 전철역으로 내달았다. 동화 속 아이처럼 전철 들어오는 소리를 수 차례 지나 보내고 역사 내 통로를 빙글빙글 돌며 혼자 그렇게 기다렸다. 행여나 길이 엇갈려서는 안 되므로 전철 들어오는 진동이 느껴질 때마다 개찰구로 달려가 눈을 부릅뜨고 아빠 모습을 찾았다.


뜻밖의 마중을 받은 아빠는 반가워했던 것 같다. 손을 잡고 걸어간 것 같진 않지만 "나와 있었냐'라고 말하며 웃는 아빠 얼굴을 보았던 것 같다. 집에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나오는 주택가 깊숙한 집까지, 나는 그 길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아군이라 생각했던 아빠를 빨리 집에 데려오고픈 마음이었나, 아빠가 그냥 좋아서 그랬나... 왜 하루가 멀다 하고 해 질 무렵마다 전철역으로 향했던 건지 종종 생각해 본다.

그때만큼은 내 순수한 어린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제 아빠를 사랑하는 아이의 마음. 반가워하던 그 추억의 날들 속 아빠 얼굴은 분명, 나를 사랑하는 얼굴이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빠마중' 나간 아이는, 고개를 쑥 빼 내밀고 끈기있게 아빠를 기다렸던 나는, 더 이상 추억속에 행복하지 않다.


엄마는 아니어도 아빠만큼은 날 사랑한다 굳건히 믿어온 사실이, 실상은 내가 서투르게 포장에 불과했단 걸,내가 쓰고있던 따뜻한 색의 렌즈때문이었단 걸 알게된 날, 나의 작디작던 어린 날의 행복조각들은 으깨져버렸다.


나는 지금 엄마아빠와 치열하게 전투중이다.


마음을 또 다쳐가면서도 나를 위해서 이 전투에 치열하게 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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