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4일 일요일 아침, 아산병원에 근무하던 30대 간호사가 직장이자 병원으로 출근했다. 출근 직후, 머리에 심각한 통증을 느낀 간호사는 응급실로 내원했다. 응급실에서 CT상 뇌지주막하 출혈로 진단되어, 혈류는 막는 코일 색전술을 했으나 실패했다. 코일 색전술이 실패했으니, 뇌를 절개한 뒤 뇌동맥류를 묶는 클립결찰술을 해야 했으나, 당시 아산병원에서 클립결찰술을 하는 신경외과 의사는 총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은 해외 학회 참석 중이었고, 다른 한 명은 휴가중으로 급히 응급 수술을 할 의사가 없었다. 아산병원은 병원을 수소문해 서울대병원으로 연락하여 전원하였으나 결국 서울대 병원에서 숨졌다.
다 같은 뇌출혈이 아니다.
<다양한 뇌출혈 경우, 실제 이것보다 더 많다>
뇌출혈의 종류는 매우 많다. 상당수가 외상에 의한 뇌출혈(경막외 출혈, 경막하 출혈 등)로, 이런 경우 머리에 구멍을 내서 피를 뽑아주거나, 머리를 열어서 피를 제거하는데 이는 신경 외과 의사 입장에서는 비교적 간단하고 쉬운 수술에 속한다. 굳이 뇌혈관 전문 신경외과의사가 필요하지 않고, 신경외과 전문의나 신경외과 레지던트 고년차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술이다.
하지만 지주막하 출혈은 다르다. 주로 뇌혈관에 혹처럼 부풀어 오른 동맥류(꽈리)가 터져서 발생하는 이 질환은 일단 치명적이다. 세 명 중, 한 명은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미국의 대통령 루스벨트도 지주막하 출혈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 명은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다. (흔히 하는 말로는 식물인간이나, 죽을 때까지 일어서지 못하거나 의식이 없는 상태 등). 세 명 중 겨우 한 명만이 비교적 가벼운 후유증을 가진 채 목숨을 건진다.
진료를 담당한 의료진의 말로는 아산 병원 간호사는 이미 처음부터 심각한 뇌지주막하 출혈이었다고 한다. 출혈과 부종이 너무 심한 상태로 목숨을 살릴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고, 운 좋게 목숨을 건진다고 해도 심각한 후유증을 피할 수 없는 정도였다.
지주막하 출혈의 치료
제일 먼저 대퇴 동맥을 통해 카테터를 넣어 뇌동맥류에 가느다란 백금 코일을 넣어 채워서 출혈을 막는다. 일명, 코일 색전술을 한다. 대게는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며, 지주막하 출혈일 경우뿐 아니라, 출혈이 없어도 뇌동맥류(뇌동맥 꽈리)가 터질 위험이 있으면 예방적으로도 하기도 한다. 당연히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뇌동맥류가 터져서 지주막하 출혈이 발생한 경우, 성공할 경우는 출혈이 없는 경우보다 확실히 떨어진다. 그리고 자주 실패한다. (이 시술은 신경외과에서도 하기도 하고, 영상의학과에서 하기도 한다.)
코일 색전술이 성공하지 못하면, 이제 머리를 열어 뇌동맥류를 묶는 클립 결찰술을 해야 한다. 이 수술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주 느리게 천천히 진행된다. 뇌혈관은 뇌 깊숙이 있는데, 두부 같은 뇌는 조그만 압력에도 부서지기에 아주 천천히 뇌를 헤쳐나가면서 출혈 부위를 찾아야 한다. 거기다 터진 뇌혈관이 이미 피를 잔뜩 뿜어낸 상황이라 출혈 부위를 찾기가 쉽지 않다. 뇌혈관이 클 것 같지만 2~3mm 수준에 불과하다. 피가 범벅인 상황에서 출혈 부위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어떻게 뒤져서 찾은 후에는 손으로는 잡기도 어려운 2~3mm 크기의 작은 클립으로 출혈 부위를 집어야 한다. 물론 현미경을 쓴 채로. 이미 터진 혈관은 약할대로 약해져 있어 극도로 조심해야 하는데 클립으로 잡은 부위가 찢어져 새로 출혈이 발생하기도 한다. 아주 위험하고, 예민하며, 어려운 수술이다.
<좌: 관상동맥 조영술, 우:관상동맥 우회술>
굳이 비교하자면, '코일 색전술'이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혔을 때 하는 '관상동맥조영술'로 스텐트를 넣는 시술이라면, '클립 결찰술'은 '관상동맥조영술'로 막힌 관상동맥을 뚫는데 실패하거나, 관상동맥이 터졌을 때 가슴을 열고 흉부외과에서 하는 '관상동맥 우회로 이식수술'과 유사하다.
많은 의사들이 '코일 색전술'과 '관상동맥조영술'을 좋아한다. 시술 시간이 짧은데다, 환자에게 부담이 적고, 실패해도 '관상동맥 우회로 이식 수술'과 '클립 결찰술'이라는 최후의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술은 비교적 최근에 널리 시행하여 최신이라는 느낌도 있다. 과거에는 모두가 '관상동맥 우회로 이식 수술'과 '클립 결찰술'을 해야했지만, 최근 이 '코일 색전술'과 '관상동맥조영술'의 급속한 발달로 '관상동맥 우회로 이식 수술'과 '클립 결찰술'의 비중이 상당히 많이 줄었다. 의사들 사이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는 소외된 분야이다.
다시 사건으로.
우리나라 Big 5에서 일하는 30대 간호사가 지주막하 출혈로 쓰러졌지만,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서 수술 받지 못하고 죽었다. (물론 아산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어도 살았을 가능성은 CT 소견상 그리 높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다행히 목숨을 건졌어도 큰 후유증이 남는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이에 언론이 신이 나서 자극적인 기사 제목으로 떠들어 댔다.(참고로 거의 매년 젊은 의사가 사망하지만, 이렇게 이슈화된 적은 없다.)
항상 그랬듯 의사 수가 부족하단다. 그리고 언제나 그 대책은 공공의대, 의대 정원 확대이다. 정치인이나 시민단체, 고위관료일 경우 이렇게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자기 지역에 의대 지으면 일단 표도 더 받고, 누구처럼 자식을 의대에 입학시킬 수 있는 찬스까지 주어지니, 문제 해결과 상관 없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한국 신경외과는 2019년 전문의 기준으로 3,137명(1)이며, 레지던트 지원에서도 미달이 발생하지 않는과이다. OECD에서도 인구 10만명당, 한국의 신경외과 의사수는 4.7명으로 2위이며 OECD 평균보다 1.3명에 비해 무려 3.5배 많다.(2)
다만 대학병원에서 일반적이 뇌출혈이 아니라, 클립결찰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아산 병원에 없었을 뿐이다. 그럼 왜 아산 병원에 클립결찰술을 할 수 있는 신경외과 의사가 없었을까?
병원 입장
당시 아산 병원은 뇌지주막하 출혈시 뇌혈관결찰술을 담당하는 의사가 총 2명이었다. (외상으로 발생한 뇌출혈을 담당하는 의사 말고)
그리고 뇌지주막하 출혈시 뇌혈관 결찰술은 정해진 시간에 환자의 상태를 완벽하게 알고 진행하는 정규 수술이 아니라, 처음 보는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쓰러져서 온 환자를 수술하게 되는 응급 수술이 많다. 아예 없을 때도 있고, 하루에 몇 명이 쏟아져 올 때도 있다.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뇌혈관 결찰술은 하면 할수록 손해다. 뇌동맥류 경부 클리핑(1개) 수가도 일본은 1,140만원인 반면 한국은 242만원으로 일본 수가의 21% 수준이다. 뇌혈관내 수술 수가는 일본이 662만원, 한국이 141만원이다.(3) 원가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병원 입장에서는 최소한으로 유지할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수술을 하면 할수록 손해다.(그래서 아주대학교 병원과 이국종 교수는 맨날 싸운다. 이국종은 왜 비는 병실을 자신에게 주지 않느냐고 하고, 병원은 돈이 안 되니 더 이상 병실을 더 주지 않는다).
그래서 아산 병원은 뇌혈관 결찰술 담당 신경 외과 의사를 2명으로, 24시간 365일 2교대로 돌린 것이다. 여기서 2교대란, 남들처럼 정규 근무를 하고 나서, 야간과 휴일을 두 명이서 번갈아 가면서 근무 또는 수술 대기를 하는 상태였다. 당시 한 명은 해외학회를, 한 명은 휴가 중이었다.
병원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그래도 명색이 대학 병원이니 최소한의 인원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산부인과, 소아과, 응급실, 외상팀, 중환자실 다 그렇다. 그러다 참다참다 정 안 되면 아예 문을 닫기도 한다.
신경외과는 Neuro-Surgeon, 줄여서 N-S라고 하는데 밤에 응급 수술이 많아서 Night-Surgeon이라고도 부른다. 의사 입장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환자의 상태를 완벽하게 알고 진행하는 정규 수술이 아니라, 처음 보는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쓰러져서 온 환자를 수술하게 되는 어려운 응급 수술이 많다. 거기다 정규 근무를 하고 나서, 2명이서 24시간, 365일을 매꿔야 한다. 의사이기 앞서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학자로서도 앞에서 말했듯이 가장 먼저 코일색전술부터 하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각광받는 분야도 아니고, 중요성도 많이 줄었다.
직장인으로서 대학병원이라는 직장에서 받는 대접도 형편 없다. 먼저 아무리 자신이 수술을 잘해도, 응급 수술이라는 특징상 환자가 수술 실력을 보고 찾아오는 경우는 적다. 그러니 Big5인, 수술 분야에서는 우리나라 1, 2위를 다투는 아산 병원이 뇌혈관 결찰술 의사를 2명만 달랑 뽑아 놓고, 24시간 365일 2교대로 돌린 것이다. 거기다 수술비를 국가가 워낙 낮게 정해 놓아서 병원 입장에서는 수술을 하면 매출은 어느 정도 오르겠지만, 오히려 영업이익에서 손해를 본다. 그러니 병원에서는 수술이 많아도 적자난다고 뭐라하고, 수술이 없으면 논다고 뭐라한다.
열심히 수술해서 매출도 올리고, 이익도 나면, "아니 내가 이렇게 돈도 많이 벌어주는데, 24시간 365일 2교대가 말이 되냐. 사람 더 안 뽑아주면, 나 당장 그만둘거야."라고 큰소리를 칠 건데 뻔히 형편을 아는데 그럴 수가 없다.
거기다 수술 자체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1/3은 죽고, 1/3은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하고, 1/3은 비교적 가벼운 후유증이 생긴다. 처음에는 보호자들이 "어떻게든 목숨만 살려주세요."라고 의사의 가운을 붙잡고 오열한다. 어떻게 환자가 살면,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이던 보호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가 일어서기는 커녕 말도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보자 서서히 눈빛이 바뀐다. 기대가 실망으로, 고마움이 원망으로. "이럴거면 왜 살려놨어?", "이거 수술 잘못해서 그런 거 아이냐?" 같은 말을 뇌수술하는 신경외과 의사라면 적어도 몇 번은 듣게 된다. 물론 소송은 피할 수가 없다.
더 슬픈 건, 뇌혈관 결찰술을 하는 신경외과 의사는 대학병원 외에 달리 갈 곳도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뇌혈관 수술을 하려면, 수 억짜리 수술실에, 중환자실에, 마취과, 재활의학과, 신경과, 내과 등이 같이 이어야되기에 대학병원급 밖에 없다. 다른 병원도 모두 돈이 안 되어서, 의사수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있는데, 새로 뽑는 곳이 없다.
척수 수술을 전공했으면, 당장 때려치우고 다른 병원에 취직하거나, 아니면 내 병원이라도 열텐데 괜히 뇌혈관분야를 택해서 어떻게든 대학병원에 붙어 있어야 한다.
그러니 더럽고 힘들지만, 대학에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 (그게 싫으면 대학병원을 나가서 아예 다시 처음부터 척추 수술을 배워야 한다. 그러기엔 이미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다. 뇌혈관 결찰술을 배우는데만도, 레지던트 4년 끝나고, 펠로우 2년에 추가로 몇 년 더 걸려 벌써 40대이다. 근데 언제 또 몇년이나 걸려 새로운 것을 어디서 배운단 말인가) 그러니 노예보다 못한 근무 조건 24시간, 365일 2교대로 계속 일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 수가라도 올려달라고 아무리 말 해도 안 들어주고, 그렇다고 수가 올려달라고 파업이라도 하면, '소중한 생명을 돈으로 보는 더러운 의사'로 낙인 찍혀, 신상까지 털릴 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그 많은 신경외과 레지던트 중에 뇌혈관결찰술을 배우려는 의사는 앞으로 더더욱 없을 것이다. 망했다. 사람 살리는 게 좋아서, 뇌혈관결찰술 하는 뇌혈관 전문 신경외과 의사는 사명감과 젊은 취기로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기로 했던 어린 시절 자신의 결정이 정말 후회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하지말라고 했잖아요."
이번 사건으로 돌아가신 간호사를 제외하면, 제일 불쌍한 사람은 실제로 클립결찰술을 하는 신경외과 의사이다. 어차피 병원에서 돈 못 번다고 눈치주는 것은 매번 있던 일이고, 이제부터는 학회와 휴가, 출장까지 제대로 못 갈테니까. 거기다 내년부터는 아무도 뇌혈관 파트에 지원하지 않겠지. 이제 신입도 없는 파트에서 만년 과장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이러다가, 내가 과로로 인해 뇌출혈로 쓰러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럼 누가 나를 수술해주나. 그렇게 죽어도 나는 신문에도 나오지 않겠지.....
사실 이건 뇌혈관 신경외과 의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너무나 많이 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또 굳이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쓸까말까 망설이다 한참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