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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드 Nov 17. 2019

뜻밖의 격려

꾸역꾸역 살아도 괜찮다

아침 운동을 다녀오다가 상가의 엘리베이터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2달 전에 참여했던, 협성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독후감 대회 <협성 독서왕>결과 발표 날이었다. 혹시 입선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수상자 명단을 아래부터 훑고 있었는데 맨 위 대상에 내 이름이 있었다. 이름 옆에는 경기도 성남시라고만 표시되어 있었다. 동명이인이 아닌지 재단 측에 전화를 걸어 주민등록 번호를 확인하고서야 심장 박동이 조금 빨라지기 시작했다.     


 사실, 7월 말 독후감을 제출하고 며칠 동안 자괴감에 빠져있었다. 나는 여러 개의 선정도서 중 소설책인 <경애의 마음>을 선택했다. 책을 두 번 읽자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이십 여 년 만에 독후감을 쓰려니 글이 잘 전개되지 않았다. 하루를 날리고 마감 날에서야 하얀 화면을 겨우 채워가기 시작했다. 마감 한 시간 전인 11시 무렵에는 마음에서 유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해는 어려울 것 같으니 내년을 기약할까. 대회는 내년에도 있잖아. 내년에는 진짜 미리미리 쓰면 되지.’ 악마의 목소리를 억누르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전에 썼던 글에서 주제와 관련된 부분을 발췌해서 넣었다. 세 단락을 과감히 삭제하고 서둘러 글을 마무리했다. 11시 55분이었다. 글을 보내려고 하는데 제목 칸이 비어있었다. 늦을까봐 심장이 벌렁벌렁한 채 제목을 정하고 전송버튼을 눌렀다. 시계를 보니 11시 57분. 안도감은 잠시, 퇴고도 제대로 못한 독후감을 다시 읽어보니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이 보였다. 쓰려고 했던 등장인물의 다층적인 마음에 대해 너무 많이 들어내 버렸다. 2-3 시간만 더 있어도 훨씬 좋은 글을 완성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좋은 글은 퇴고에서 나온다던데. 타고난 재능도 없으면서 성실하지도 못하다니. 더군다나 이번 대회는 상금이 꽤 큰 대회였는데 평소처럼 느긋하게 글을 쓰다니. 매번 이렇게 시간에 쫓겨서 꾸역꾸역 글을 쓰는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하루 종일 병원 갔다 운동하고 오면 집에서 거의 시체처럼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체력을 탓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글을 쓰려고 시간을 비워둬도 소용없을 때가 많았다. 통증 때문에 정신이 멍해지면 글을 쓰기는커녕 책을 읽을 수도 없다. 누워서 책이라도 읽으려고 들고 있지만 눈으로 읽는 글이 머리까지 가지 못하고 튕겨나간다. 같은 줄을 반복해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책을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삶이 시시해서 글을 쓰는데 글은 더 시시한 것 같았다. 이런 글로 삶의 어느 부분을 채울 수 있을까.     


 자책을 하다가 올해를 시작할 때 첫 마음을 떠올렸다. 십여 년 동안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맞을 때 마다 마음이 바닥을 뚫고 가라앉곤 했다. 나이의 숫자만 차곡차곡 쌓여갈 뿐 내 이력은 텅 비어 있었다. 오랜 시간 성취에 목말라 있었다. 백수이자 환자로 사는 삶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가늠하다가 시무룩해졌다. 그러다 올 해는 다른 마음이 들었다. 내가 갈망하는 성취라는 것이 사회의 기준에 맞추어 있었다. 무엇을 얻고 이룬 다는 것을 다른 사람처럼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거나, 가정을 이루어 가는 것으로 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성취의 목표나 내용도 바뀌는 게 맞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아프면서 견뎌온 시간들도 충분한 성취였다. 이십년 가까이 육체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마음을 지켜내는 과정도 성취였다. 누워만 있다가 운동도 하고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도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옭아매던 무력감과 패배감에서 스스로를 놓아 주었다. 올 해 부터는 새로운 목표나 기대를 구지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좋은 마음으로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성취에 대한 미련을 버리자 무엇을 도전하는 것이 쉬워졌다. 잘 되지 않아도 실망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결과에 연연하지 않아도 과정 중에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상황에서 최선은 늘 부족하고 모자랐다. 꾸역꾸역 간신히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내 삶의 현실이고 실력이었다. 그걸 인정하니까 부족한 가운데 완성하고 제출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 것 보다 조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늘 뒤따르는 욕심이었다.      


 이번의 뜻밖의 수상은 내게 글에 대한 인정이라기 보다는 삶에 대한 격려였다. 부족한 가운데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내 육체와 시간이 가진 한계 안에서 불만족스러워도 계속 해나가라는 조용한 박수 같았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재능이에요” 라고 말했던 <경애의 마음>의 김금희 작가 인터뷰가 떠올랐다. 재능은 타고난 특별함이 아니라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인지도. 그리고 잘 써지지 않아도 끙끙거리며 머릿속으로 단어들을 고르고 걸러내는 시간 자체가 무엇을 이루어 가는 그 차체인지도.      


 이번 수상의 또 다른 의미는 상금이다. 처음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자신이자 한계인 고통을 잔뜩 끌어안고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커다란 보따리를 들여다보고 솎아내고 다듬다보니 힘들게 들고 있던 짐들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과정 중에 쓴 글이 정신적인 자산을 물질적인 자산으로 변화시키는 촉매가 되었다. 글을 통해 아픔이 정신적 자산 뿐 아니라 물질적 자산이 될 수 있다는 달콤한 교훈도 함께 얻었다.      


 두 달 전 부끄러워 넣어두었던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내 삶은 내게 신선하지 않고 글도 역시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거기에 내가, 내 삶이 담겨있었다. 일 년 이상 벽에 부딪히며 글을 쓴 시간이 녹아있었다. 그 시간 동안 함께 글을 나누던 사람들과의 시간도 어려있었다. 글은 삶을 갈아 넣는 것이기에 덜컥 겁이 날 때가 많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내가 발견되리라는 기대가 주저하는 마음을 펌프질한다. 내 삶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아직은 거칠게 뒤섞여 있지만, 곱게 잘 갈려서 기대이상의 맛을 내는 날도 다가오겠지. 서투르고 부족해도 계속, 계속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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