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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 통과하기 2.

현아

by 오늘도 나마스떼

가을을 한창 지나 이제 겨울 초입인가? 싶은 즈음,

다능 님은 홀로 일상의 여유를 찾아보는 서촌 여행을, 지선 님은 가을잔디밭에서 벌레들과 함께 요가를, 나현 님은 음주와 트레킹을 즐기셨군요.


저도 현재 가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를 써보고 싶건만, 아직 끝맺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어서 다시 기억을 과거로 돌려보아야겠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현재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이긴 해서 찬찬히 다시 정리를 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네요.




제가 ‘사법고시’라는 일주문에 들어서서 만났던 사천왕문은 크게 1) 교만함과 2) 나약함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교만함’을 극복했었던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나약함’을 극복하고 사천왕문을 통과했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이 ‘나약함’은 다시 세부적으로 나누자면, ‘체력’과 ‘정신력’으로 나누어서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체력’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를 좀 많이 하면서 컸는데요.

특히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감기를 매해 달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고시공부를 하던 시절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신경성’이라고 뭉뚱그려서 일컬어지는 다양한 증상들을 달고 살았는데요. 예를 들면, 극심한 편두통, 장염, 위염, 과민성대장증후군 등등…..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병원들을 들락날락하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병원에 가면 원인도 없고 이유도 없다고 했고, 그저 ‘신경성’이라고 했었는데, 원인은 딱히 없는데 증상들이 나타나니 답답할 노릇이기도 했고, 아프지 않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고시에서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많이 애가 타기도 했죠.

그리고 친구들 중에는 벼락치기로 며칠 밤을 새워서 바짝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는 것도 가능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저는 완전히 꼬박 밤을 새우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고, 수면량을 줄이면 신체 컨디션에 무리가 왔기 때문에, 평소에 꾸준하게 좋은 컨디션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달고 살면서 공부를 함께 병행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게 습관이 되어서 지금까지도 그 루틴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피트니스 PT, 수영, 에어로빅, 무에타이, 방송댄스, 필라테스, 요가, 등산 등등 각종 여러 가지 종류의 운동들을 거쳐보면서, 제 성향이나 체질에 제일 잘 맞고 좋았던 운동들이 추려져서 현재까지 계속적으로 해오게 된 것 같아요.


일단 몸이 냉하고 찬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 바로 감기가 걸려버리는 저는 수영이 맞지 않았고요. 에어로빅, 무에타이, 방송댄스는 할 때는 신나고 재미있을지 몰라도, 하고 나면 격한 운동량이나 신나는 음악 때문인지 에너지가 방전이 되고 주의가 분산되어서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게 필라테스, 요가, 등산이었는데요. 고시생 시절에는 요가와 등산을 꾸준히 했었어요. 요가와 등산이 심신단련과 집중력, 인내력, 지구력 향상에 좋은 운동이자 수련인 것 같아서 공부하시는 분들에게 특히 권해드리고 있어요. 필라테스는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어깨와 목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 하기 시작했는데, 통증을 없애는 데는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저의 ‘체력이야기’는 ‘운동이야기’이자 ‘요가를 하게 된 이야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네요. 이전에도 잠깐 이야기한 적 있지만, 신기하게도 몸이 힘들수록 운동을 더욱 챙겨가며 열심히 하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가장 바쁘고 가장 힘들 때 오히려 신체상태가 제일 좋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요가와 등산을 하면서 체력도 좋아지고 잘 먹고 잘 자서 그런지 저의 잔병치레가 사라졌고, 무사히 ‘신체적 나약함’이라는 ‘고비’를 극복하면서 크게 아프지 않고 고시생활을 완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웹툰 <미생>에서도 그런 대사가 나오잖아요.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중략)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이 말이 정말 맞다고 느낀 게, 사법연수원에 처음 입소하고 나서, 정말 태릉선수촌에 바로 들어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체력과 승부욕을 가진 사람들이 다들 모여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체력’ 이야기를 했으니, 자연스레 이어지는 ‘정신력’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게요.


앞서서 제가 ‘신경성’ 증상들로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런 ‘신경성’ 증상들은 ‘정신적 예민함’, ‘정신적 스트레스나 불안함을 견뎌내는 힘’이 약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신체화 증상’들이었던 것 같아요.


한 과목당 기본 1,500페이지가 넘던 방대한 양의 수험과목들, 하루라도 펑크가 나면 안 되는 폭주기관차 같이 멈추지 않고 진행되는 모의고사 스케줄, 매일매일 모의고사를 보고 가차 없이 매겨지는 나의 점수들과 등수들로 인한 스트레스와 예민함, 실전에서 하나라도 틀리면 그동안 쏟아부었던 몇 해 동안의 노력들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는 불안감, 나 자신과 주위를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압박감….

다시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 생각을 하니 아찔하고 약간 현기증이 날 것만 같은데요.

그런 상황들 속에서 예민함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체력’뿐만 아니라, 그런 심리적 압박이 큰 상황들 속에서 버텨내면서 과정에 온전히 집중해 낼 수 있는 정신력 또한 매우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그런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방법은 제각각 다양했던 것 같아요.

종교에 의지하는 친구, 인생 뭐 있나.. 하면서 무덤덤하게 앞만 보며 가는 친구, 놀 때 화끈하게 놀고 공부할 때도 확실하게 공부하는 터프한 친구…


근데 저는 앞선 편지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원래 법학 외에 다른 것들에 더 재미를 느끼고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었고, 사람도 좋아하고, 다양한 덕질(?)을 즐기던 사람이었어서 자칫하다가는 다른 것들에 곁눈질을 하면서 집중력을 잃기 딱 좋았기 때문에, 제가 불안감과 압박감을 피해 딴짓으로 도피하지 못하도록 막아주고 오로지 과정에 집중하면서 견뎌 나갈 수 있게 잡아 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습니다.


제가 저의 ‘교만함’을 알아차리고 아주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목표를 갖게 되면서 ‘혼자서는 할 수 없음’ 또한 인정하고, 친구의 소개를 받아 일명 ‘관리식 독서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이 독서실을 소개해 준 친구는 저보다 일찍 시험에 합격해서 독서실 자리를 먼저 뺐는데, 그 독서실을 소개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때 당시 저에게 정말 고마웠던 존재였습니다).


겨울에 보일러도 고장 나고 상당히 노후화된 시설과 독서실에 올라가다가 ‘여기가 아닌가? 좀 무섭네...’하면서 되돌아가게 되는… 그런 비교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용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던 독서실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이용자들을 ‘관리’(?)해주시던 원장님이 계셨고, 그 관리 방법이라는 것은 ‘마주칠 때마다 쉬지 않고 귀에서 피가 나도록 잔소리를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


다른 분들은 원장님만 보면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도망 다니기 바빴는데, 저는 저에게 잔소리를 해주시는 원장님이 좋았어요ㅎㅎ


그때 당시 저에게 누가 ‘정신 바짝 차리고 한 눈 팔지 말고 공부하라.’고 그렇게까지 독한 잔소리를 해줄 수 있었겠어요. 원장님은 친구들도, 가족들도 해주지 않는 아주 모진 말과 독한 소리들을 독서실 학생들에게 해주셨습니다ㅎㅎㅎ (지난한 과정 동안 해이해질 때마다 저의 ‘교만함’을 없애고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가장 최적의 방법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다 저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저의 합격을 염원하는 애정이 담긴 잔소리라 생각하고 뼈에 새기며 원장님이 시키시는 대로 공부했습니다.(제가 원장님의 잔소리가 좋다고 했더니 주변 몇몇은 저보고 변태 같다고 했었습니다 ^^;;ㅎㅎ)


여하튼, 원장님이 입에 달고 사시던 잔소리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것 하나는 “시장 바닥에서도 시험을 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요. 그만큼 정신 사나운(?) 열악한 곳에서도 핑계 대지 않고 흐트러짐 없이 정신을 집중해서 공부하고 시험에 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합격한다는 말이었습니다(지금 생각해 보니 뭔가 ‘도를 닦는’ 느낌이었네요).


또 그때 당시 다니던 요가원의 원장님도 우연찮게 고시공부를 하셨었던 분이었어서 요가를 지도해 주시면서도 수험생활에 관한 조언 내지 잔소리(?)도 함께 해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막다른 길목에서 안락하고 편하고 익숙한 환경이 아닌 열악하고 낯선 환경에 저 스스로를 데려다 놓고, 일상 내내 여러 가지 다양한 조언과 잔소리들을 들으며 정신력을 단련(?)하면서 흐물흐물하던 저의 나약한 정신상태가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뭔가.. 남자분들이 군대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끝없이 줄줄줄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저도 짧지만은 않았던 고시생 때 이야기를 하면 또 이야기가 끝없이 줄줄 나오네요.


그동안 굳이 누군가에게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인데, 지선 선생님이 운을 띄워 주신 덕분에 다시 예전 기억들을 떠올려 보며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더 할 얘기들도 많지만, 또 편지가 길어지고 있어 이번 이야기는 이쯤 해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나약함에 시달리고 언제나 나약함이 달콤한 타협의 말을 건네고 있다고는 하지만, 현재의 삶에서 책임을 지면서 주어진 어른의 여정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나현 님!


요새 조금씩 읽고 있는 책에 이런 문구가 나오네요.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나현 님은 스스로의 나약함을 현명하게 극복해 나가면서 지금 주어진 삶과 매 순간 하게 되고 또 해야만 하는 선택과 결정들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삶에 스스로 대답을 해나가는 멋진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나태가 섞인 나약함이 스스로를 괴롭힐 때는, 제가 그 나약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귀에서 피가 나도록 잔소리해 드릴 수 있으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제가 과거에 전수(?) 받았던 잔소리를 좀 더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열심히 해줄게요!!ㅋㅋ


그리고 편지의 순서가 약간 바뀌었는데, 여전히 저의 질문 대상자는 다능 선생님이네요.


얼마 전 다능 선생님과 대화를 하던 도중에 다능 선생님의 “저는 요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고 싶어요.”라는 말이 제 마음속에 콕 박혔습니다.


제가 열정이 넘치던 다능 선생님과 비슷한 나이였을 때 “법을 다루면서 해볼 수 있는 경험들을 최대한 다양하게 경험해 보고 싶다.”라고 생각했었던 때가 생각이 났어요.


다능 선생님의 열정이 많이 느껴지는 말이었고, 현재도 다양한 시도들을 실천해 보면서 지내고 계시는 것 같은데, 다능 선생님이 요가로 해보고 싶으신 다양한 것들 중에 ‘먼 훗날, 가장 큰 정성과 공을 들여서’ 해보고 싶은 게 있으실지, 있다면 어떤 것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답장 기다릴게요~




[사진 : 황현아 作, 어떤 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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