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술병이 났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과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지도 못한 채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었다. 숨도 못 쉴 정도로 밀려들어오는 사람들 속에서 겨우 발만 디딘 채 구역질을 간신히 참아냈다.
회사와 가까운 지하철역에 내리자마자 편의점부터 들러 숙취음료를 세 개 샀다. 한 개는 내 것, 두 개는 어제 나와 함께 술을 마신 사람들의 것이다.
본격적인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술자리에 참석했다. 그 술자리를 주도하는 사람은 대부분 회사 팀장님 두 분이었다.
술자리 참석을 강요한 것은 아니라서 그 자리에 참여하는 직원들은 매번 달랐다. 확실한 건 나는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건 내가 성공욕이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뭐든 지고 싶지 않았고, 술 문화에도 누구보다 잘 적응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회사 내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 일 외적인 부분에서도 잘나가고, 심지어는 분위기를 주도하며 상사를 포함한 직원들과의 교류를 돈독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혹은 그저 약해보이지 않으려고 열심히 술을 들이붓기를 선택했다.
일종의 책임의식도 있었다. 총 직원이 10명도 되지 않는 소규모 회사. 나보다 입사가 반 년 가까이 늦었던 직속 팀장님과 이곳에서 근무한지 15년이 넘은 다른 팀 팀장님, 3년 차 대리인 나와 근무한 지 반 년도 안 된 나머지 직원들. 이 사이에서 내가 회식에 참여하지 않으면, 회식 자체가 진행되지 않았다.
팀장님들은 단둘이서 술을 드시진 않았고, 직원들은 회식을 원하지 않았다. 그나마 중간 직급의 내가 참석하면 일부 몇 명이 따라 참석했다. 직원들이 참석하지 않아도 어찌 됐건 나만 있으면 세 명이서라도 회식이 성립되곤 했다.
내가 참석하지 않을 때마다 모든 술자리가 무산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그냥 신경 쓰지 말고 퇴근 후에는 개인 시간을 즐기라는 조언도 종종 들었지만 앞서 말했듯 잘나가고 싶던 성공욕 덕분에 아쉬운 소리하는 두 팀장님을 가벼이 넘길 수 없었다. 그래서 종종 셋이서 술을 마시곤 했고, 지난밤도 그랬다.
“김대리는 술을 잘 마셔. 언제부터 마셨다고 했지?”
“스무 살 되자마자 아빠한테 배웠어요.”
“제대로 배웠네.”
“그리고 대학교 때 엄청 많이 마셨어요. 그만큼 술 먹을 일은 더 없을 줄 알았는데, 요즘 팀장님들 때문에 갱신 중이잖아요!”
나는 준팀장님과 정팀장님을 향해 살짝 눈을 흘기며 소주 한 잔을 원샷했다.
“참치 더 먹어. 더 먹고 싶으면 또 시켜.”
이 술자리에 나를 꼬여내기 위해 두 팀장님은 참치라는 회심의 카드를 꺼냈다. 덕분에 나는 내 돈을 쓰지 않고도 원 없이 참치를 먹고 있었다. 넙죽 잘 먹는 나를 보며 팀장님들은 흐뭇해했다.
“참치 아니었으면 오늘 안 왔을 거예요.”
“그래, 그래. 고맙다.”
비싼 참치와 술값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이 자리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어린 부하에게 그들은 그저 고맙다고 말했다. 내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툭툭 내뱉는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대리 아니면 우리 회식도 없잖아. 요즘 사람들은 회식 참여 안하니까. 내 또래 사람들은 이런 술자리가 가득한 문화에서 사회생활 했다 보니 왠지 씁쓸해.”
“요즘 그런 발언 위험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끼리 있을 때만 하잖아.”
“저를 어찌 믿으시고요? 내일 직원들한테 얘기해줘야겠다.”
농담조로 킥킥대며 놀리는 나를 보며 정팀장님도 따라 웃었다. 준팀장님도 우리의 빈 소주잔을 채우며 함께 웃었다.
“요즘 사람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야. 그냥 나는 그랬거든. 회사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분명 있어. 그런 일들은 의외로 밖에서 서로 술 한 잔하면 쉽게 풀리기도 하거든. 강제로 술을 권하는 일들만 하지 않는다면 직장 밖에서의 회식은 좋은 역할을 할 수도 있는데 말이야. 김대리랑 나처럼.”
많은 직속 상사와 부하의 관계가 그러하듯, 실제로 회사 내에서 나는 정팀장님과 가장 갈등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정팀장님이 들어오기 전 반 년 가까이 팀장 없이 최고 결정권자인 국장님과 직접 부딪히며 일을 해왔고, 정팀장님은 동종 경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몹시도 특이한 국장님의 성향에 맞춰진 나를 부하직원으로 데리고 일하는 데 한참 애를 먹었다.
국장님은 팀장님에게 해야 할 지시를 내게 직접 내리거나, 모든 일에 나를 우선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보고체계도 엉망이었다. 국장님의 지시를 반대로 내가 팀장님께 알려드리기도 하고, 팀장님에게 이미 전달된 내용인 줄 알고 넘어갔는데 아무것도 몰랐던 팀장님이 회의시간에 낭패를 보기도 했다. 나 역시도 이런 일이 반복되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팀장님은 팀장님대로 나를 존중하면서도 팀장의 위치에 적응하려 애썼고, 나는 나대로 팀장님을 존중하고자 눈치를 보며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말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엉망인 체계와 서로의 다른 성향 덕분에 계속해서 오해가 쌓여가기만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나는 먼저 정팀장님에게 술 한 잔 어떠시냐고 물었고, 그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술자리에서 우리는 서로가 가진 생각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서로의 의견을 묻고 타협을 보면서 그간의 섭섭함과 오해를 풀었다.
나중에 정팀장님이 말하기를, 자신도 진즉부터 술 한 잔하며 털어놓고 싶었는데, 내가 여직원이라 문제가 될까 염려되어 먼저 제안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내준 게 무척 기쁘고 고마웠다고 했다. 물론 그 후로도 갈등은 계속해서 반복됐지만 그 때마다 소주와 함께 빠르게 오해를 풀곤 했다.
그래서인지 정팀장님이 말한 회식의 순기능에 대해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거기에 두 팀장님은 억지로 술을 권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안주도 매번 직원들이 먹고 싶은 걸로 고르게 했다. 나는 두 팀장님을 데리고 맥주와 샐러드를 먹으러 간 적도 있을 정도이니 그 마음을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직장 안에서의 일은 직장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제일 좋죠.”
“김대리, 정말 이럴 거야? 우리가 그동안 김대리 먹인 게 얼만데 자꾸 이렇게 젊은 척 할래?”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온전히 그들의 편을 들 수 없었던 것은 다른 직원들이 회식을 싫어하는 마음도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술자리를 좋아하는 팀장님에게는 태연하게 회식 강요하지 말라고 얘기하면서도, 다른 어린 직원들에게는 회식의 순기능을 강조하며 회식에 오라고 권유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서글퍼졌다.
두 집단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상사의 회식 참여 요청을 다른 직원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아휴, 그래요! 회식 좋은 거지. 그냥 저도 꼰대하죠, 뭐. 짠!”
그들은 툴툴거리면서도 매번 함께하는 나에게 고마워했고, 나 역시도 내가 회식을 싫어하지 않게 애써준 것이 감사했기에 다음날 숙취음료를 그들의 책상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보답하곤 했다. 그리곤 내 자리로 돌아와 숙취음료를 들이키고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생각했다.
‘아, 역시 회식 너무 싫어! 다음엔 절대 참여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나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술을 혼자 실컷 들이키고는 회식 탓을 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회식에 참여하고야 마는 사람으로 한참동안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