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은 만 4개월에 접어들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가장 친한 친구보다 자주 만나 이야기를 했다. 시간이 쌓여가니 관계는 단단해졌다. 친한 친구를 만나듯 시작은 비슷하다.
"지난주 별일 없으셨나요?"
"어? 표정이 좋지 않으신데? 무슨 일이세요?"
"잘 지내셨지요?"
머뭇거리며 말을 줄이던 모임 처음과는 다르다. 이제는 다들 이야기를 시작한다. 알 수 없는 우울함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불합리와 부조리를 인간화 된 상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해결되는 일은 없지만,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해소된다.
어떤 날은 손에 먹을거리가 들려있기도 하다. 맛있는 빵을 먹고는 책 친구들과 함께 나누겠다고 가져오신다. 빵집에 위치, 가게된 이야기로 한참을 나누게 된다. 집에 들어온 선물을 나눠 함께 먹자며 가져오기도 한다. 어떤 선물이었는지, 왜 왔느니 재잘거리며 이야기 하게 된다. 몸에 당이 돌아가니, 이야기도 한참을 돈다.
돌고 돌아 책 이야기로 돌아온다. 책에 진심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읽었던 책에서 귀한 느낌을 포장해서 온다. 오늘 각자가 포장해 온 책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쿠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인생은 허무하다, 허무는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이어서, 영혼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데, 생이 이토록 빨리 지나가다니. 이럴 때 두려운 것은, 화산의 폭발이나 혜성의 충돌이나 뇌우의 기습이나 동연한 정전이 아니다. 실로 두려운 것은 그냥 하루가 가는 것이다."
마릴린
<레몬>, 권여선
"나는 이런 삶을 원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살고 있으니, 이 삶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이 삶을 원한 적은 없지만 그러나, 선택한 적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계절 (커피문고 대표)
<당신의 계절이 지나가면>, 주얼
"올해도 계절이 그렇게 지나갔고, 또 어느새 새로운 계절이 다가올 것이다. 계절이 지나갈 때마다 나는 조금 더 성장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예전과 변함없이 여전한 것 같기도 하다. 그 어느 것이 맞는 건지, 그리고 어느 것이 좋은 건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나는 그저 내가 그 계절을 살았다는 것, 그리고 그 계절이 준 것들을 마음속에 계속해서 간직할 수 있기를 희망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일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로스차일드 (starry garden)
<책 한번 써봅시다.>, 장강명
"긴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 늘어나면 사회가 발전한다. 이해와 성찰의 총량이 그만큼 증가한다는 뜻이므로. 반대로 사람들이 한 줄짜리 댓글에 몰두하는 사회는 얕고 비참하다."
꺼내 놓은 책 이야기를 모아두고 보니, 단어 하나가 되었다.
"허무"
단어를 두고 책 친구들은 문장을 만들고 문단을 만들어 이야기를 나눴다. 우린 때때로 허무하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달려가다 의미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때로는 삶의 의미를 목표와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열심히 달려 삶의 의미라 생각하고 도달한 목표에는 아무것도 없어 허무가 나를 누른다.
어느 누가 자신이 완전히 원하는 삶을 살아갈까?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그 삶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일까? 아닐 테다. 온갖 이유로 우리는 원하지 않지만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선택이 모여 나를 만든다고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내가 이룬 것이 하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헛헛해진다. 노력하며 견디고 살았지만, 생이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 오늘 하루가 별일 없이 흘러가버리고 있다. 다시 허무가 다가온다.
흩날리는 벚꽃은 어느새 지고, 여름이라는 계절이 한껏 가까이 왔다. 계절이 지나는 동안 나는 무엇이 변했나?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마음이 다시 허무를 마음에서 부유하게 만든다. 마음 한 구석에 숨겨둔 '허무'라는 단어를 내어두고 책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니 위로가 된다. 나만 허무함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에.
아무리 씻어도 지울 수 없는 허무의 피 비린내는 평생 우리를 따라 다릴 테다. 허무는 불쑥불쑥 떠올라 내 마음을 흐리게 할 테다. 허무를 이겨내기 위해 오래도록 많은 철학자, 심리학자, 종교인이 방법을 제시했지만, 지금까지 통일된 하나의 방법이 없는 것 보니, 뚜렷한 방법은 없는 모양이다. 모두 자기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내고 다듬고, 지켜내는 일뿐이리라.
우연일까? <책 한번 써봅시다>에 허무를 이겨내는 방법 중 하나가 있다. '우리 모두 글을 씁시다.' 허무해 보이는 하루. 두렵도록 빨리 흘러가는 하루를 잡아내는 글쓰기. 무거운 이야기 마지막에 난 한마디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글을 쓰세요. 일기도 좋고,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쓰는 글쓰기는 더 좋습니다. 우리 책 친구들은 정말 잘 쓰실 겁니다."
다들 그 이야기할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고, 가져온 책으로 눈을 가져간다.
아뇨.
사람은 참 다양하다. 그만큼 생각도 다채롭다. 거기다, 비슷한 결, 자신을 받아줄 편안한 관계가 되면 더 많은 생각과 말이 오간다. 말이 오갈수록 기억이 두터워진다. 말과 말이 겹쳐 다른 생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니 기억이 단단하게 되어 추억이 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해결에 실마리를 찾는 경우도 가끔 있고, 말하는 순간 해소되는 경우도 잦다. 그렇게 독서모임이라고 적고, 마음 모임이라고 말할만하다. 책에 진심이니 목적을 잊지 않고 돌아온다. 아니, 자연스럽게 책으로 돌아온다. 우리 모두 책에 진심이기에.
오늘도 이야기는 떠돌다 책으로 돌아왔다. 책을 읽고, 책 이야기로 끝 마친다. 그리고 끝내는 문장도 비슷함을 깨달았다.
"다음 주 뵐게요."
"파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평안한 한 주 되길 바랄게요."
마음 깊이 서로를 응원하고, 한 주를 이겨낼 힘을 얻어 간다. 우리 모임이 더 단단해진다.
한 줄 요약: 독서모임에서 책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