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코너의 그 남자 002

그는 나에게 장소를 정해달라고 했다.

by stephanette

그는 나에게 장소를 정해달라고 했다.

나는 아는 장소가 없다.


밤 시간대의 외출을 한 것도

십 년이 훌쩍 넘었다.

모든 것이

낯설다.


출근 때 입었던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나, 평소에 입던 편한 복장도 아니다.


난 그 사이 어느 구간인가에

어중간하게 멈춰버린 옷차림으로

거리로 나왔다.


집에서 창문으로 바라본 밖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그러나 거리는 밝았다.


소란스러움은

거리의 불빛에

실제보다 더 많은 광량을 부여하고 있었다.


악수를 마친 그는

웃고 있다.


오른편에 서 있는 그는

블랙이다.

실루엣은 흐리다.


여전히 아는 장소는 없다.

그를 기다리며

생각을 안 해 본 것도 아니다.

머리가 아프다.


늘 가는 곳으로

나는 발걸음을 향했다.

밤의 그 곳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여전히 오른쪽에 서서 걷는다.


가는 곳은

첫 만남에 좋은 장소는 아니다.

번잡스럽고

시끄럽고

대충 사람들로 인해

에너지는 고이지 않고 흩어져버리는 장소니까.


오래된 건물의 지저분한 엘리베이터

그 앞에는 이미 기다리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그는 입구의 계단을 채 올라오기도 전에

나를 쳐다본다.


나의 시선은 아래로 떨어진다.

여전히 웃는 낯이다.


검은색 군화는 10cm가 넘었었나.

그는 시선을 여전히 발에 두고 물어본다.

“이런 건 어디서 사요?”


“네? 아...”

그는 다시 구두 이야기를 한다.

“예전에 이런 걸 신었던 것 같은데.”


그와 나 사이의 공기에는

미세한 금속성의 직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딱히 어디서 샀다고 하기도 이상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다시 유행이래요.

닥터 마틴이라고.”


검은 군화에 노란색 스티치가 선명하다.

그 선명함은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어쩌면 선명함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바람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말 대신

엘리베이터의 숫자를 확인했다.


차가운 금속의 엘리베이터 출입구는

유광으로 반짝이고 있다.


그러나 건물의 연식을 가늠할 만큼의

미세한 스크래치들의 형태로 인해

붉은색 숫자는 멈춰 있었다.


시간의 흐름은 그렇게 분절되었다.

이전 01화라면 코너의 그 남자 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