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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13. 2019

'왜'라는 의문 갖기

세상에 나쁜 질문은 없다.

"질문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미국 대통령이 환대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한국 기자에게 특별히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순간 영원과도 같은 정적은 흐르고, 오히려 민망해진 미국 대통령은 상황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며 애써 웃었다. 그리고 질문은 결국 한국 기자가 아닌 중국기자가 하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기자들을 탓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한 상황과 풍경, 정적이 내가 자라오며 매우 익숙하게 봐왔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던 기자였다면 과연 힘차게 손을 들고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 내 질문이 좋은 질문이 아니면 어떡하지? 수준에 맞지 않으면 어떡하지? 혹시라도 콩글리쉬가 튀어나오면 어떡하지? 다 끝나가는 분위기에 이런 질문이 적절할까? 이런 고민을 하는 동안 옆에 있던 중국 기자는 어느새 손을 들고 있었을 것이다.


질문에 대한 두려움이
'왜?'라는 씨앗을 마르게 한다.


우리나라는 정답을 하나로 강요하는 교육이 문제라고들 한다.

물론, 요즘은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간혹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거나, 주니어들에게 강의를 할 때면 이전보다 많은 질문을 받는다. 또 어떤 친구들은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나는 이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조금 나아졌다는 것이지 질문에 대해 주저하는 모습이나 좋은 질문이란 생각이 들지 않으면 하지 않으려는 근본적인 모습은 여전히 보인다.


정말로, 우리는 질문을 왜 이리 두려워할까?

가장 안타까운 것은 질문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우리가 제기해야 할 '왜?'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질문이 자유롭게 용인되지 않는 사회 정서상 '왜?'라는 질문은 어쩌면 금기와도 같다. 생각을 정리하고 본질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5 why'라는 기법이 있다. 어떤 현상이나 의문에 대해 말 그대로 5번을 묻는 기법인데, 우리네 정서를 비꼬아 '싸대기 맞기 좋은 기법'이라는 안타까운 별명이 있을 정도다.


'왜?'라는 의문을 가져야 하는 이유


그럼에도 우리는 '왜?'라는 의문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은 삶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질문'은 인류가 문제에 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이겨내어 온 훌륭한 도구다. 이 생각의 도구가 인류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흐름은 빨라지고, 각박해지다 보니 이젠 '왜?'라는 질문 보단 '어떻게'란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문제에 닥쳤을 때 사람들은 문제의 본질보단 솔루션에 집착하는 것이다.


'어떻게'에만 몰두하면 뇌는 굳어지고 생각이 사라진다.

시작하자마자 해결책부터 알아내려 한다면 뇌에 과부하가 걸린다. 동기부여도 안될뿐더러 마음만 조급해진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람들을 따라 부동산 재테크를 하거나 자신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의사, 변호사가 되겠다는 시대의 모습을 보면 그것을 더 뼈저리게 느낀다. 정답(이라고 믿는 것)을 정해놓고, '어떻게/How'만을 권하는 사회. 내가 그것을 '왜?'해야 하는지 보다는, 어떻게 경매를 하고 절세를 하고 대출을 받을 것인지, 어떻게 과학고를 가서 의대에 합격할 것인지에만 몰두한다. 그것을 이루고 정신을 차렸을 때, 그 결과에 만족하면 천만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방향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대표적인 예지만,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돌아보면 나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음을 고백하게 된다.


어느 날, 옆 부서 신입사원 한 명이 질문을 하며 아래와 같이 말했다.

"선배님, 세상에 나쁜 질문은 없잖아요. 그렇죠?"

평소라면 이미 알고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해 핀잔을 받을 수도 있는 질문이었지만, 사람들은 웃으며 흔쾌히 그것을 알려줬다. 후배의 센스가 놀라웠다. 그 말이 맞았다. 좋은 질문이 있고 없고를 떠나, 나쁜 질문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실제로, 나는 이전보다 좀 더 자주 묻는다. 다른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이 밖에도 '왜?'라는 질문은 삶을 좀 더 윤택하게 한다.

인과 관계를 규명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일상에서 그냥 지나치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고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 준다. 생각해보니, 어느 나라에 대해 쓴 나의 첫 저서도, '집들이 왜 기울어져 있지?'란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그저 지나치던 것들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가져다 붙이면, 정말로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 그저 지나치던 것들에 대해 다시 묻는 호기심.

좋은 질문이 아니면 어떡하지란, 시작부터 정답을 염두한 질문이 아닌 '세상에 나쁜 질문은 없다'라는 생각. 이것이 이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고 견디고, 버티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나는 믿고 또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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