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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망 Sep 30. 2024

사무실의 새 동료

소화되지 않는 것들


“직장 생활은 뭐랄까, 내 본성, 본능을 거스르는 행위 같아.” 


언젠가 술자리에서 친구가 한 말이었는데, 정확히 내 마음이었다. 모두가 어쩔 수 없이 일하긴 하지만 회사 생활을 유난히 못 견디는 부류가 있긴 하니까. 7년간 회사 4곳을 다녔다. 어느 회사건 비슷하게, 경직된 분위기가 힘들었다. 몸과 마음은 연결돼 있었다. 내 마음도 항상 책상 앞에 쪼그려 앉아 기를 못 펴고 바깥과 단절됐다. 주로 복도, 화장실 문가, 정수기와 미팅룸 근처만 왕복했다. 


담배 피우는 직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가지만, 다른 팀 과장은 화장실에서 20분간 모바일 게임을 한다는 얘기도 들렸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렇게 날 가로막는 데엔 어떤 주문이 작용했던 게 분명하다. 사무실 출입문 옆 홍채 인식으로 출근 도장을 찍는 순간 몸에 새겨지는 금기의 문신처럼. 



 사무실은 항상 조용했다. 그 고요한 정적은 몇 년을 다녀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가끔 누가 전화를 받으면 살아있었네 알게 되는 정도였다. 4층에만 100 명 넘게 근무했는데 말이다. 의자에서 엉덩이를 고쳐 앉는 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프린트물 넘기는 소리까지 조심스러웠지만 어떨 때는 답답한 침묵을 깨보고도 싶었다. 여기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 어떨까? 전화를 크게 받으면서 춤을 춘다면? 크게 웃으며 다른 팀 동료에게 장난을 친다면? 상상만으로도 짜릿했다. 물론 진짜 해볼 만큼 미치진 못했다. 


사무실이 유일하게 북적거릴 때는 누군가 새로 입사할 때뿐. 신입과 소속 팀장이 사무실을 돌며 인사를 하고는 팀원들과 공용 테이블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루틴이 있다. 그러고 다시 고요 속으로 빠졌다.  




그날은 초겨울이었다. 나는 일하는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 창밖에 앙상해지는 나무를 바라보았다. 회사 앞엔 큰 공원이 있었다. 창밖 자연이라도 눈에 담으면 좋은 기운이 몸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모니터 앞에서 지친 눈과 마음을 잠시 쉬어 보냈다. 오전이라 나무 사이에서 ‘호로로’하는 새 소리도 들렸다. 



문득, 공기의 흐름이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쌔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올라갔다. 다른 파티션의 팀원 몇 명이 웅성거리기 시작하길래 새로운 소리의 침입에 귀를 기울였다. 옆옆자리 직원이 놀라서 큰 소리로 말했다. 

“어머 저게 뭐야?” 

사람들의 고개가 창문으로 돌아갔다. 

……새!? 


비둘기도, 까치도 아니고 더 큰 새였다. 흰색 깃털에 회색이 오묘하게 섞였고 날개엔 윤기가 흘렀다. 철새의 일종인가. 언제 어디로 들어왔지? 아무도 모르는 사이 난데없이 새 한 마리가 사무실 안에 들어와 있었다. 하필 새는 사무실에서 가장 높은 분 쪽에 자리를 잡았다. 본부장님 옆 화이트보드에 발톱을 걸치고 유유히 앉아 있었다.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서. 나는 입을 벌리고 쳐다봤다. 거기서 뭐 해? 눈으로 말을 걸었다. 마침 고개를 양옆으로 돌려대던 새와 눈이 마주쳤다. 그게 신호였을까? 푸드덕 날갯짓하더니 날아올랐다. 휙휙- 활강하며 사무실 양쪽 끝에서 끝을 가로질렀다. 


“으악 새상에!” 


직원들이 꺅꺅거리며 흩어지는 모습은 새 떼 같았다. 그중 고고한 우두머리 같은 그 새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직원들 비명 말고 새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왠지 웃기고 즐거웠다.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도망갈 태세를 취하는 사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앉은 채 몸만 돌려대는 사람, 뭔가 잡을만한 도구를 찾아보는 사람, 출입문 쪽에 벌써 나가 있는 사람이 보였다. 사무실이 이렇게 난리가 난 광경은 처음이었다. 장수풍뎅이가 들어왔을 때랑은 비교도 안 되는 파급력이었다. 


“어머 저거 어떡해? 119 불러야 되는 거 아녜요?”

“뭐 어떻게 못 잡나? 그물 같은 거 없나요?” 

“무서워요. 저 새 공포증 있단 말예요!” 


이제 새는 사무실 안쪽 파티션 위에 앉았다. 이런 상황엔 직급도 성별도 없는지, 팀장들도 팀원들처럼 문 쪽으로 피신해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비상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적인 모습이라니. 다만 본부장님은 체통을 지키기 위해 크흠하며 애써 업무에 집중하려 했다. 지금 저럴 상황인가?



나는 이 모든 게 웃겨서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키킥, 푸흡’ 웃으며 사진 몇 장을 몰래 찍었다. 사진 제목은 ‘사무실의 새 동료’. 새는 입사한 신입처럼 사무실 구석구석 인사를 다녔다. 인간 동료가 오면 웃지 않던 사람들이 ‘새 동료’가 오니 그제야 웃었다. 인간 세상에 낀 동물만이 웃음과 당황을 선물할 수 있었다. 그것도 가장 권위 있는 사무실에서. 


“창고에서 가져왔어요!”

어떤 남직원이 의기양양하게 사람 키만 한 장대를 들고 외쳤다. 새는 그걸 쓸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열어놓은 창문으로, 아무에게도 잡히지 않고 스스로 날아갔다. 답답한 사무실을 조롱하고 인간 본연의 모습들로 흐트려놓았다. 때 묻지 않은 날개를 푸드덕 이며 뭔가를 쓸어갔다. 사무실에서 보낸 5년간 어떤 순간보다도 그 새가 살아있는 느낌을 주었다.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들어와 활보할 수 있는 그의 자유로움이 멋져 보였다. 어이쿠 내 정신머리 봐, 새와 함께 날라갈 뻔했네. 직원들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수습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었다고 생각하며 머릿속에서 빨리 지웠다. 





새가 나간 지 1년 후쯤 회사를 그만두었다. 프리랜서로 자리잡으려는 포부를 안고 퇴사했으나, 2년이 된 지금까지도 돈은 잘 못 번다. 자리잡기엔 멀었고… 나는 좀 새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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