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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Feb 29. 2024

작가의 말

힐끔 단편선 - 完

 어느 날, 소설을 쓸 수 없게 됐다. 머릿속에 찬란하게 펼쳐지던 상상력이라는 무지개가 사라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만든 캐릭터들은 갈피를 못 잡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세계관은 술을 먹은 것처럼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말들은 점차 사라지더니 이내 침묵하기 시작했고, 소설 속에 깊게 베여있던 내 감정들은 진실인지 거짓인지 갈피를 못 잡게 되었다. 아무래도 소설을


 그만 써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 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편 소설 6개. 짧은 단편 50개 정도. 매 년 신춘문예나 공모전에 응모했지만 결과는 연속적인 탈락뿐. 그래, 이 정도면 노력했다. 후련한 마음이라도 들었던 걸까. 소설을 쓰지 않은 채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때때로 마음속에 어떠한 감정이, 하고 싶은 말이 생겼지만, 이내 사라져 버렸다.


 뭐라도


 써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소설을 쓰지 않은 지 이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그렇게 나는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에세이를 쓰고, 서평을 썼다. 주변으로부터 에세이를 잘 쓴다는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내 글을 보고 책을 샀다는 말을 듣게 됐다. 어쩌다 보니 도서 부문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소설이라는 장르가 나한테는 맞지 않았던 거야. 나는

  

 에세이를,


 서평을


 쓰기 위해 태어난 거야.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왜일까. 에세이를 쓰고, 서평을 썼던 탓에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었는데, 가슴속이 허전한 이 기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왜 에세이를 썼지? 나는 왜 서평을 썼지? 나는 왜 소설을 썼지? 나는 왜 블로그를 시작했지? 나는


 왜


 글을 썼지? 애석하게도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한결같았다. 맹남욱이라는 이 인간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보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나는 생각보다 생각하는 것도 많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내 입으로 말하기에는 그건 너무도 벅찬 짐을 이고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나는 주인공을 만들고, 세계관을 만들고, 악역을 만들고, 그들의 입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뱉는다. 그들은 나의 훌륭한 대변인이며 맹남욱이라는 존재의 완벽한 대역이다. 이런 생각을 끝마치자마자 문득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그렇게 소설을 처음 썼을 때처럼 아주 짧디 짧은 소설 한 편을 썼다. 소설을 놓아버렸던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다시 소설을 쓰는 그런 이야기였다. 읽으면 읽을수록 참 뻔하고 지루한 이야기였다. 누구나 다 쓰고, 알 거 같은 그런 이야기. 살다 보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런 이야기. 다 읽고 나서야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는 소설을


 써야만 하는구나.


 오랜만에 써봤던 소설은 여전히 재밌었고, 미숙하긴 했지만, 내 캐릭터들과 세계관은 이전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짧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매주 주제를 정하고, 세계관을 만들고, 캐릭터를 만들고, 그들의 상황, 감정을 고민하고, 고민하여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총 14편의 숏 – 단편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내 모습이, 혹은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조금씩 투영되어 있다. 소설집을 다 완성한 뒤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야, 여전히 소설 쓰는 건 재밌잖아.


 우리는 가끔씩 우리의 능력은 제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소설로 등단하지 못했으니까 나는 소설에 재능이 없어. 소설을 더 이상 잘 쓰지 못하니까 소설엔 재능이 없어. 글로 돈을 못 버니까 글 쓰는 것에도 재능이 없어. 이렇게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과연 내가 잘하는 건 뭐였을까.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꼭 잘해야만 하는 것일까.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다면, 못하면 어떻고, 뒤처지면 어떤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될 것을.


 친한 친구인 Y와 술을 마시다 이런 얘기를 들었다. 가끔씩은 허세도 부릴 줄 알고, 뻥도 칠 줄 알아야 한다고. 당신이 언젠가 그 자리, 위치에 도착할 걸 당신이 믿는다면 그 정도 허세를 부릴 줄 알아야 한다고. 그래, 미래에는 내가 어떤 모습일지 지금의 나는 알 수 없다. 지금보다 더 유명해졌을지. 책을 냈을지. 북토크나 사인회 같은 걸 하고 있을지. 아니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을지. 미래는 알 수 없기에 그저 믿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현재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더 나은 글을 쓰고 있기를. 마지막으로 지금보다 더 행복하기를.


 그래, 결국 글쓰기란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다. 언젠가,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지라도, 나는 나를 위해서 글을 쓰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을 몽땅 쓰고, 지우고 싶은 말은 지우며 그렇게 글을 쓰며 살아가고 싶다. 14주라는 긴 시간 동안 나의 글쓰기 여정을 따라와 주신 독자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이후에는 소설을 쓸지, 에세이를 쓸지, 혹은 시를 쓸지 그건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글을 쓰던지, 나는 즐겁게 쓸 것이라는 것.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뱉을 것이라는 것.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글을 쓸 것이라는 점이다.


2024년 2월의 마지막 날. 맹남욱 드림.




 숏 – 단편은 모두 ㄱ~ㅎ까지 총 14개의 주제를 사용하여 집필하였습니다.


1주 차 : 교통체증

2주 차 : 낯선

3주 차 : 담배

4주 차 : 로봇

5주 차 : 명화

6주 차 : 바나나

7주 차 : 사과

8주 차 : 아내

9주 차 : 자전거

10주 차 : 첫눈

11주 차 : 쿠키

12주 차 : 터널

13주 차 : 풍류

14주 차 : 한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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