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설 (그 물건의 진짜 설명서)

예고편 (매주 토요일 연재)

by 글못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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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


해가 지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집에 돌아가는 길 하늘은 깜깜했다. 어둑한 풍경은 여자 혼자 걸어가기에는 무서웠지만, 빨개진 얼굴을 감춰주는 역할을 해줘서 고맙기도 했다.


손으로 볼을 만져보니 아직도 열이 올라, 볼이 손보다 온도가 높았다. 입사하고 참석한 첫 회식이기도 하고, 신입사원인 자신을 위한 환영회여서 술을 뺄 수 없었다. 며칠 전만 해도 대학교에서 가장 높은 학년이라 술을 적당히 마셔도 되었는데, 그토록 바라던 취업을 하니 술을 뺄 수 없는 막내가 돼버렸다. 이 송은 보는 사람도 없는데, 빨개진 볼이 부끄러워 집에 가는 발이 빨라졌다.


대학교 때부터 산 고시원 현관문을 들어가자마자 자취방 살림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왼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침대 그리고 침대에 붙어있는 책상 하나. 책상 위에는 메모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메모지마다 글이 아닌 책상, 빨래건조대, 거울 같은 물건이 그려져 있었다.


술에 취해서 바로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정신을 붙잡고 샤워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재생하고 샤워했다. 샤워하는 틈틈이 말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들었을 소리지만, 이 송은 술에 취해서 샤워하는 데 급급했다.


샤워하면서 술이 좀 깼지만, 어깨 위에서 사람 몸만 한 물풍선 크기의 알코올이 빨리 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송은 알코올의 유혹을 뿌리치고, 책상에 앉아 펜을 들었다.


“휴…… 그래도 그림 하나는 그리고 자야지.”


항상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메모지에 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오늘은 술을 마셨으니 초록색 소주병을 그렸다. 펜으로만 그리는 거라 그림은 금방 그렸다. 이 송은 메모지를 찢어서 코르크 게시판에 압정으로 꽂았다. 이송은 오늘도 미션을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해하며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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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려고 누웠는데 소곤소곤 말소리가 들렸다.


‘옆 방에 친구가 왔나?’


하필 피곤한 날에 유난히 옆 방이 시끄러웠다. 이 송은 잠을 방해하는 소리에 인상을 찡그리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 야, 일어나.

- 오늘은 꼭 물어봐야겠어. 일어나.

- 야, 야.


이 송은 머리카락을 건드리는 느낌에 짜증 나서 손으로 쳤다. 그런데 손의 느낌이 이상했다. 벌레인 줄 알았는데, 얇은 종이에 손이 베인 느낌이었다. 이 송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벌레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는 자신이 그렸던 메모지들이 서 있었다. 종이인데 사람처럼 우뚝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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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려 떨어진 게 아니라, 모서리를 바닥에 두고 종이가 서 있었다. 이 송은 자신이 꿈을 꾸는 건가 싶어 눈을 비볐다.


- 드디어 일어났네.

- 야, 너는 이름이 뭐야?

- 나는 이름이 뭐야?

- 궁금해 알려줘. 네가 나를 그렸잖아.


“종이가 말을 하네?”


그림 속 물건은 생명을 가진 것처럼 이 송에게 말 걸었다. 옆 방에서 떠드는 소리인 줄 알았던 소리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말하는 소리였다.

- 나는 뭐야? 내 역할은 뭐야? 응? 알려줘. 궁금하단 말이야.

그림 속 물건이 자신의 이름을 뭔지 물었다. 이 송은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황에 빠졌다.






그림 속 물건과 물건을 그린 작가의 만들어 가는 그 물건의 새로운 설명서. 매주 토요일 11시에 찾아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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