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 모인 곳이 아수장이 되어가고 있을 때 앙칼지면서도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분명 살기가 넘치는 육식동물의 목소리였는데, 본능적으로 살벌함을 느낀 파랑새는 앞발로 쥐고 있던 카피바라의 머리털을 놔버렸고 너구리는 던지려고 집어 들었던 책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동물들이 돌아보니 기린 옆에 요가매트를 양팔에 가득 든 흑표범이 서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흑표범이 분명했다.
흑표범은 동물들 앞에 나서서 빠른 몸놀림으로 매트를 깔더니 이내 요가 자세를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 자세는 바로 육식동물들에게 특화된 고난도의 요가 자세인 '워리어' 자세였다. 1)
"다 같이 코와 입으로 파도 소리를 내면서 숨을 최대한 깊게 들이쉬고 내쉬어봐.”
흑표범이 권고하듯 설명을 하면서 자세를 취하는데, 왠지 분위기가 너무 엄숙해서 따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동물들은 얼떨결에 다시 요가를 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모두 마음이 차분해졌다고 느꼈음에도 흑표범의 요가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부터 요가는 체벌로 변해가고 있었다. 직립으로 선 채로 양팔을 뻗어야 하는 워리어 동작은 네발로 생활을 해온 동물들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동작이었고, 급기야는 몸에 경련이 일어난 동물들이 풀썩 풀썩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에서 같이 요가를 하던 사자 역시 탈진해서 앞발과 뒷발을 뻗은 채로 누워있었는데, 이때 기린이 다가와 귓속말로 말했다.
"정치나 종교 문제로 싸울 때는 이렇게 문제가 커진답니다. 이 때는 흑표범이 한 것처럼 요가의 난이도를 오리면 돼요. 요가자세 20~30번이 고난도 자세들이니 참고하세요."
"기린, 제가 생각이 바뀌었는데 그냥 동물들을 공부 안 시키면 어떨까요?"
사자가 무리한 요가로의욕을 모두 잃어버렸는지 힘없이 기린에게 말하자 기린이 물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나요?"
"아 근데. 이건 너무 적응이 안되요. 이런 문제가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어요."
사자의 말에 기린은 나약한 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앞발을 쭉 뻗어 사자의 입에 갖다 댔다.2)
1) '워리어 자세'는 강력한 진정 효과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때 오라클들이 이 자세를 '궁극의 자세'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은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현대의 오라클들은궁극의 자세가 오랜 시간 지속해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자세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2) 이야기 중에는 앞발을 입에 대서 상대가 말을 못 하게 하는 무례한 동작이 몇 번 나온다. 이 동작에 대해서는 <부록: 동물들의 제스처>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