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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프 Dec 14. 2022

내가 알던 그 아이

46. 행복하다니 다행이야

몇 해 전

혼자 종종 울던 아이가 찾아와

적당히 먹고살만해진 현실을

안주 삼아 이야기하고 있다


“그땐 정말 힘들었어요”라고 말하는

그 아이는 이미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에는

독기가 배어 있지 않았고

눈동자에 비친 꿈 자락 저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난 네가 더 멀리 갈 줄 알았기에

현실에 안주하는 그 모습이 시시해질 뻔했다


사람이 어떻게 늘 무언가를 이루고 싶고

절박할 수 있겠냐만

당장 손에 쥐어준 것에 만족하는 건

옆집 갓난아이와 다를 바 없다


불빛은, 꿈은, 삶은

결핍 가운데 심어져 양분을 찾고

그것들은 분명 그 아이에게 심어졌었다


그렇기에 몇 해 전

아이가 두 눈으로 흘리던 꿈을

본인이 아닌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아이는 몸이 기우는 걸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착각할지 모르지만


행복하다니 축하해줘야겠지


축하해 아이야,

유감이야 빛나던 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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