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은 친절함 더한 농부의 빵.
막연히 유럽은 비슷한 성향을 가질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아직도 생김새로는 독일사람들과 다른 유럽사람들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지만 가끔은 옷차림으로 구분을 하기도 한다.
아시아인들을 잘 구분 못한다는 서양인들이 이해가 되는 지점이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의 성향이 참 무뚝뚝하는구나를 확연히 느끼게 된 계기가 있다.
네덜란드에서 전철을 타고 이동 중에 유모차에 탄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빤히 쳐다보는 아이에게 인사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중에. 옆에 있던 남편이 손을 들어 인사를 했는데 아이가 멀뚱한 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 엄마가 너무 환하게 웃으며 친근하게 농담을 하는 게 아닌가. 아이가 남자들한테는 플러팅을 하는 거라고. 그러고 보니 전철을 타고 내리는 젊은 아가씨들의 인사에는 아이가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아이 엄마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짧은 대화를 하는 동안 잠시나마 문화적 충격을 받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좀 부담스럽기 때문이었다. 독일에서는 유모차 탄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면, 엄마가 보지 않을 때 살짝 소심하게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독일엄마들의 살짝 경계? 또는 당황? 당최 읽을 수 없는 표정과 알 수 없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시선을 거둘 때가 대부분이다.
요 녀석 귀엽네라는 표정을 지어 보여줬다 생각했는데 내가 특별히 무섭게 생긴 걸까? 너무 못생겼나? 뭐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레 몸에 뵌 습관 같은 게 생겼더랬다.
그런데 네덜란드인들에게 받은 느낌은 일단 '프랜드리(friendly) 하다'였다.
이런 친근한 반응들이 속내를 숨긴 계산된 반응이었을 수도 있다. 네덜란드인들을 깊이 있게 잘 모르니 겉으로 보는 모습만을 보는 이방인에게는 재미있는 나라라는 느낌으로 좀 더 호감이 생겼다.
반면에 독일인들의 반응은. 비록 속내를 숨기는 같은 방식이라고 해도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딱딱한 이미지가 생겼다. 이런 전반적인 분위기를 딱히 표현할 길이 없었던 차에 '비정상회담'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현했던 독일 사람 다니엘이 생각났다. 매번 이탈리아인 알베르트가 재미없다고 놀리는데도 딱히 반박하지 못한다. 그냥 웃기려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정말 그렇다. 비단 다니엘만 재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독일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그런 듯하다.
독일인들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아예 자리 잡던 중 늘 그렇듯 큰 기대 없이 동네 마트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빵을 한 덩이 샀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자주 오는 마트이지만 빵은 처음 사봤다. 하필 그날은 눈도 침침하니 떠듬떠듬 이름을 말하고는 그냥 선반에 보이는 빵을 달라고 했다. 계산을 하면서 빵이름을 다시 물었고, 들은데로 다시 되뇌는데 발음을 잘못했나 보다. 몇 번 발음을 교정해 줘도 틀리는 이방인에게 아예 선반에서 이름이 쓰인 태그를 꺼내 보여준다.
보여주면서 본인이 설명을 잘 못했다며 연신 미안해했다. 에고 이 젊은 청년이 뭐가 그리 미안한지. 내가 더 멋쩍구먼. 안 그래도 바쁜데... 이런 싹싹한 친절함을 받는 날은 종일 훈훈하다.
다른 때 보다 긴 시간 빵을 샀던지라 대단히 특별한 빵을 산 줄 알았다. 그런데 가끔 먹는 농부의 빵이었다. 파머스 브래드라는 이름의 빵들은 보통 큐민이 뿌려진 빵이다. 알싸한 향신료와 사워도우의 신맛이 조화로운 빵이다. 하지만 이번 빵은 같은 농부의 빵이어도 친절한 맛이 가미된 빵이어서인지 더 귀하게 먹었다.
국가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성향이 다른 것은 말해 무엇하랴. 독일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이 무뚝뚝하다고 모든 독일인들이 다 그러지는 않겠지. 겉으로는 무심한 듯 하지만 챙겨주려고 하는 마음들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막 치대고 싶어 진다. 이건 또 급발진이지?
오히려 한 발 떨어져 데면데면한 독일인들이 편할 수도 있겠다 싶다. 옆집의 숟가락, 젓가락 숫자를 꽨다는 시골정서여도 너무 좀 힘들지 않겠나. 그럼 그렇고 말고. 나 역시도 적당한 친절함을 착장 한 이방인이 되어야지 했다.
반백살에도 인간관계를 끊임없이 부딪히고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