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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양 Dec 20. 2020

괜찮은 척, 끝내지 않아 다행이다

최악의 사건, 이 일의 끝은 내가 정한다


내가 좋아하던 (구)우리집 밤풍경. 이별은 어렵게 했지만 않았지만 재미있게 보냈던 곳.


이사는 그렇게

더럽게 끝났다 



  2020년에 벌어진 가장 큰 사건은 이사였다. ‘2020년의 이사’는 기승전결을 가지고 있는 서사다. 전셋집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이사를 알아보던 차에 행복주택에 기적적으로 당첨이 되어 너무나 행복했다. 집주인은 무조건 돌려줄 전세금이 없다고, 집 팔리기 전에는 한푼도 줄수 없다고 베짱을 부렸다.(그리고 부동산에는 시세보다 2,000만원 높게,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매물을 내놓는다) 정해진 기한까지 이사를 가지 못하면, 당첨은 취소될 상황.      


우리는 울며 겨자먹기로 기존 대출에 추가 대출을 받아 힘겹게 이사를 했다. 한편 전자소송을 시작해 인간의 볼꼴, 못볼꼴을 제대로 직면하게 된다. 그 괴롭던 여름날들. (그날의 일기장에는 ‘인간의 디폴트는 불행’이라고 쓰여 있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고독한 질문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가을, 결국 법원에서 임차인 등기명령이 떨어졌고, 법적 효력이 발생하자 집주인은 없는 돈을 바로 토해냈다. 이사는 그렇게 더럽게 끝났다.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사람들은 떼일만한 돈을 받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올해를 넘기지 않아 운이 좋았다고도 했다. 소송을 경험했으니 배웠다고 치랬다. 하지만 나는 좀체 그 말들이 기쁘지 않았다. 원룸 생활 10년차로 이사만 벌써 네 다섯 번째지만 이렇게 더러운 경우는 없었다.


받아야 할 돈을 이렇게 고생해서 받았는데 도대체 뭐가 괜찮고, 뭐가 다행인가? 끝까지 스스로 ‘어디 남한테 폐끼친 적 없다고’ 떠들던 집주인에게 밀린 이자는커녕 원금만 돌려받고 ‘더 이상 법적인 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까지 써줬는데, 뭐가 운이 좋단 말인가? 일이 해결되고도 좀체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일이 나에게 어떤 배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하루는 앉아서 곰곰이 지난 일들을 돌이켜봤다. 감정적인 내용은 다 빼고, 있었던 일을 덤덤하게 기록해나가기로 했다. ‘조금도 손해보지 않기로 마음 먹은 사람’을 소통하는 일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평생 서로 이해하지 못할 사람'과 상종하는 일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기록했다.


  글로 정리하고 나니 감정도 조금은 정리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글을 다듬어 그 무렵 열린 에세이 공모전에 글을 보냈다. 그리고 그 일에서 거리를 둘만큼 시간이 지났을 즈음, 처음으로 당선 전화를 받았다. 큰 상은 아니었지만, 말로만 듣던 그 당선 전화였다.     


“여기는 00사인데요. 느루양님 되시죠? 축하드립니다. 동상에 당선되셨습니다.

좋은 글을 보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사올 무렵, 그 집앞에 핀 벚꽃이 참 예뻤다.


괜찮은 척

끝내지 않아 다행이다


  뭐 하나 명쾌하게 해결되는 일 없이 문제만 산적해가고 있던 올 가을, 따뜻한 노래를 들으면 괜히 서러운 눈물까지 흘렀던 그 가을날, 이 전화 한통이 내게는 작은 매듭이 되어주었다. 아주 작은 성취지만, 그래도 누군가 내 글을 끝까지 읽고 대답해준 기분이 들어 위로가 되었다.      


“이야기 자체도 그러려니와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방식이 남들과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이 두 기준은 우리 삶에도 적용되어 삶의 자세를 단단히 붙든다.” 홈페이지에 게시된 심사평은 마치 나에게 다시 질문하는 듯 했다. 행복이 누가 잘해서 주어진 게 아니듯, 불행 또한 누가 잘못해서 벌어진 것은 아닐 터인데, 삶이라 주어지는 행복과 불행 앞에서 너는 이 사건을 어떻게 말하겠느냐고. 그저, 힘들다. 죽겠다. 어째서 나에게. 왜 이런 일이.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이냐고.      


  이사의 기승전결은 이렇게 끝났다. 그러니까, 돈을 받고 ‘괜찮아 보이는 척’하고 끝난 게 아니라, 그 사건을 기록한 글로 수상을 하고, 상금으로 배불리 고기를 사먹는 것으로 끝났다. 이제 나는 이사를 생각하면, 그 억울했던 순간들보다 당선 전화를 받았을 때의 저릿함, 수상했을 때의 기쁨, 그때 먹은 고기 맛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괜찮아졌다. 주어진 대로 ‘괜찮은 척’하고 끝내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결국 이사라는 사건이 내게 알려준 건 이것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내가 결정할 순 없지만, 끝은 내가 결정한다.       








* 남은 2020년, 매일매일 한해를 타오르는 눈빛으로 응시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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