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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헌 May 24. 2016

쉬, 가죽소파, 베이킹소다

⑤ 오줌 소탕작전

1

등교 5분 전 가방을 주섬주섬 챙긴다. 필통 교과서 스프링노트 체육복 카세트플레이어를 넣고 방을 나서는 순간, 영단어 책이 눈에 띈다. 왜 바닥에 있지 하고 집고 보니 아뿔싸. 눅눅한 책 겉장을 따라 노란 액체가 흘러내렸다. 잊을 수 없는 2001년 벤의 첫 오줌 테러.


2

1박 이상 외출 시 가스밸브만 확인한 게 아니다. 온가족이 집을 비웠을 때 얘기다. ①벤 사료 채우기 ②물 두 그릇 이상 채우기 ③배변패드, 신문지 깔기 ④라디오 켜놓기 ⑤개껌 또는 소시지 풀어놓기


③번은 설명이 필요하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집 한 켠엔 지난 일간지가 쌓여 있다. 다시 보려는 게 아니라 오줌받이용. 며칠 집을 비울 때면 벤의 '타격범위'에 들어오는 집기 위엔 신문지를 덮었다. 소파, 거실 바닥 그리고 베란다. 녀석은 머리가 굵으면서 요상한 버릇을 보였다.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줌 반경도 덩달아 넓어졌다. 말만 안 했을 뿐이지, 나만 두고 어딜 갔다오냐는 모종의 시위였다.


3

침대에 싸는 건 좀 심했다. 이건 녀석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저항. (화가 머리까지 난 녀석이, 아마도 같은 이유로) 안방 이불에 지도를 그려놓곤 했다. 이마저도 관절이 성할 때나 얘기다. 12살이 지나곤 침대에 오르지도 못했다.


4

90년대 후반 엄마가 논현동서 공수해온 소파를 몇년 전 버렸다. 진한 쑥색 가죽과 원목이 멋스런 앤틱 가구였는데,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녀석이 여기에도 쉬를 싸놔서… (벤, 이건 너무했다) 돌이켜 보면, 이게 다 마려워서 쌌다기보단 일종의 마킹(영역표시)이 아니었나 싶다. 산보를 나가도 기둥만 보면 쉬싸기 바빴다. 오른발 한 번 들고, 왼다리 들고 번갈아가며 많이 쌌다.


5

베이킹소다의 재발견. 제빵 재료로만 알고 있었다. 어느날 누나가 암앤드해머(Arm&Hammer)라고 적힌 플라스틱 통을 가져왔는데, 베이킹소다라고 했다. 무엇에 쓰는 것이냐 물었더니, 지린내 제거에 특효라며 건넸다. 밀가루 같은 하얀 분말을 쉬를 닦고 난 자리에 뿌리면 냄새가 말끔히 사라진다는 것. 구글링해보니 이렇다.


'베이킹소다는 100% 탄산수소나트륨(NaHCO3)으로 이뤄진 백색 분말 형태로 열을 가하면 탄산가스(CO2)가 발생하기 때문에 식품의 팽창제로 사용되며, 독특한 산·알칼리(오줌은 산성) 균형 유지 작용으로 클리닝과 탈취에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 베이킹 소다와 물을 섞어 사용하면 불용성인 오염물질을 수용성으로 변화시켜 강력한 세척제로 활용되며, 냄새 분자를 중화시키기 때문에 다양한 탈취제로 널리 쓰인다.'


욕실 어딘가에 있을, 물때가 잔뜩 끼었을 소다 통은 쓸모를 잃었다. 그래도 오래오래 둘 생각이다.


오른쪽이 탈취용 베이킹소다. Pet Fresh!

 



벤과의 5600일 - 프롤로그

이야기를 시작하며


벤과의 5600일① 대낮의 실종

8월 땡볕, 가출, 도깨비풀


벤과의 5600일② 녀석의 간식들

천하장사 소시지


벤과의 5600일③ 벤과의 러닝

형, 이것밖에 못 뛰어?


벤과의 5600일④ 털 손질

탈모여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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