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아이가 태어난 날

by 권성선

배에 주사를 놓으면서 아내는 숨을 꾹 참았다.

아내의 배에 새로운 바늘 자국이 겹쳐졌다. 멍은 보라색에서 파랗게, 다시 누렇게 변하며 배를 뒤덮었다. 마치 작은 전쟁터 같았다. 그는 주사를 놓는 간호사의 손보다 더 떨리는 아내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괜찮아."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의 목구멍은 늘 바짝 말라 있었다.

결혼 10년 차. 그들은 집도, 차도, 그 흔한 여행 사진도 없었다. 가진 건 병원 진료 카드와 늘어난 대출금뿐이었다. 토요일마다 새벽에 일어나 병원 대기표를 뽑았다. 시험관 시술을 위한 배란 유도, 채취, 이식. 그 과정마다 아내의 몸은 기계처럼 다루어졌다. 의사는 담담했고, 그들은 고개만 끄덕였다.

처음 몇 번은 '이번엔 될 거야' 하는 희망이 있었다. 아내는 시술 후 며칠을 침대에 누워 배를 쓰다듬으며 '우리 아기'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임신 관련 앱을 깔고 주차별 아기 발육 상태를 찾아보곤 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실패가 이어지면서 부부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시술 후에도 아내는 이제 배를 만지지 않았다. 그는 임신 앱을 삭제했다.

시술비를 마련하기위해 그도 아내도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점심시간마다 그는 은행 앱을 열어 카드 대금을 확인했고, 아내는 인터넷 카페에서 난임 부부들의 후기를 읽으며 마음을 붙들었다. 실패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내는 눈물조차 잘 흘리지 않았다. 주사 자국이 더 선명해질수록 그녀의 웃음은 옅어졌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섯 번째 시술을 앞두고 아내가 말했다. 목소리에 감정이 없었다.

"몸도 한계고, 돈도 한계야. 안 되면 그냥 우리 둘이 사는 거야."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마음속에도 같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으로 꺼내기는 너무 무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검사실에서 불려 나온 순간.

의사의 짧은 말.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

그 짧은 문장을 그는 수십 번 마음속으로 반복했다. 믿기지 않았다. 마치 로또에 당첨된 사람처럼 자신이 진짜 그 주인공이 맞는지 확인하듯이 결과지를 몇 번이고 펼쳐 보았다. 아내는 순간 말을 잃더니 겨우 그의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그제야 울음이 터졌다.

복도로 나와서도 그들은 한참을 서 있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그들에게 찾아온 기적이었다.

그 후 아홉 달은 기적 같으면서도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혹시 잘못될까 봐, 그들은 새로운 옷도, 아기용품도 사지 않았다. 초음파 사진을 받아들고도 쉽게 기뻐하지 못했다. 작은 심장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오늘은 괜찮구나' 안도할 뿐이었다.

임신 중기가 되어서야 부부는 조심스럽게 아기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중고 제품으로만 구성했지만, 하나하나 들여놓을 때마다 가슴이 벅찼다. 작은 옷가지들을 보며 아내는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한테도 아이가 생기는 거야, 정말."

그녀의 배가 불러올수록 부부의 마음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아이 이름을 지어보고, 어떤 사람으로 키울지 이야기하고, 미래를 그려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10년의 세월이 그들을 너무 신중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오늘 새벽 4시, 아내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여보, 나 배가 많이 뭉쳐. 진통이 시작하나봐."

평소 통증을 잘 참는 아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급히 병원 가방을 챙겨 들었다. 미리 준비해둔 택시를 불렀지만, 기사를 기다리는 10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진통은 계속 이어졌다. 분만실 앞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그는 담배를 몇 개비나 피웠다. 가끔 들려오는 아내의 신음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괜찮아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간호사가 중간중간 나와서 상황을 알려줬지만 그는 계속 불안했다. 10년을 기다린 아이인데 마지막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아내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아이를 세상에 데려왔다.

작은 울음소리가 분만실에 울려 퍼졌을 때 그의 다리는 덜덜 떨려 제대로 설 수도 없었다. 아내는 온몸에 땀과 눈물이 뒤섞인 얼굴로 그를 향해 겨우 미소 지었다.

"당신, 아빠 됐네."

그 한마디에 지난 10년의 무게가 한순간에 풀리는 듯했다. 그는 오열에 가까운 울음을 삼키며 작은 아이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기적이란 이런 것이구나, 믿게 되었다.

간호사가 아이를 그의 품에 안겨주었다. 2.8킬로그램의 작은 무게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무게였다. 아이의 작은 손이 그의 손가락을 꽉 붙잡는 순간 그는 아버지가 되었다는 실감이 밀려왔다.

"10년을 기다렸던 아이네요. 건강하고 예쁘게 태어났어요."

의사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내를 바라봤다. 그녀는 지쳐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우리 해냈네."

아내의 작은 속삭임에 그는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렸다.

아내는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께 연락을 드리고, 회사에도 출산 휴가 신청을 했다. 모든 일이 꿈만 같았다.

밤이 깊어지자 아내는 잠들고, 그는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혼자 고수포차를 찾았다.

낡은 천막 문을 걷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알루미늄 냄비에서 끓는 국물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하루의 노동을 마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아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잔에 따라 들이키자마자 목이 뜨겁게 타올랐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취하고 싶었다.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고수가 그릇을 닦다 말고 물었다. 늘 무심한 얼굴인데 유독 그의 눈을 오래 바라봤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주변이 순간 조용해졌다. 술잔을 들던 옆자리 손님도,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청년도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다들 환호했다.

"축하드려요!"

"첫 아이세요?"

"건강하게 태어났나요?"

사람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그의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기분이 좋았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게 느껴졌다.

고수는 말없이 그의 앞에 새 잔을 놓았다.

"이런 날은 혼자 마시면 안 됩니다."

고수는 술을 그의 잔에 가득 채우고, 자신도 잔을 들었다.

"축하합니다. 10년 만에 얻은 아이라면서요?"

그는 놀란 눈으로 고수를 바라봤다. 언제 알았냐는 듯 고수는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손님 얼굴이 말해줍니다. 그런 얼굴은 아무나 못 짓거든요."

그는 잔을 들어 고수와 마주쳤다. 목구멍으로 술이 넘어가는 순간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기쁨과 후련함이 뒤섞여 어쩔 수 없었다.

"10년 동안 정말 많이 기다렸어요. 아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주사 맞는 것도, 실패할 때마다 울던 것도. 포기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데 오늘 정말 저희에게도 아이가 생겼어요. 2.8킬로그램의 작은 아이가 제 손가락을 꼭 붙잡더라고요."

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었다.

"아이들은 정말 신기해요. 태어나자마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리죠."

"맞아요. 뭔가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뀔 것 같아요. 이제는 정말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옆자리 아저씨가 끼어들었다.

"자식 키우는 게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만큼 보람 있는 일도 없죠. 건강하게만 키우세요."

"감사합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포차 안 분위기가 따뜻해졌다. 사람들은 각자의 육아 경험담을 들려주었고, 그는 귀 기울여 들었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모든 게 새로웠다.

고수는 잔을 내려놓더니 곧장 싱크대로 향했다.

손에 잡은 그릇을 정성스레 닦기 시작했다. 닦고, 헹구고, 또 닦고. 그릇 닦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마치 오늘의 그를 위해 준비된 의식 같았다. 포차 안 공기까지 맑아지는 듯했다.

"고수님."

그가 고수를 불렀다.

"네?"

"오늘 정말 고마워요. 이 기분을 혼자 간직하기에는 너무 벅찼는데, 이렇게 함께해 주셔서."

고수는 그릇을 닦던 손을 멈췄다.

"이런 날은 나누어야 하는 거예요. 기쁨은 나눌수록 배가 되니까요."

그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릇이 반짝일수록 오늘 하루의 기억이 더욱 선명하게 마음속에 새겨졌다.

그리고 그는 알았다.

오늘의 술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아이의 첫 울음소리를, 아내의 고통스러운 미소를, 그들이 지나온 10년의 세월을 기리는 술이라는 걸.

마지막 잔을 비우고 일어서면서 그는 고수에게 깊이 인사했다.

"내일부터는 정말 아버지로 살아야겠어요."

"잘하실 거예요. 10년을 기다린 만큼, 더 소중히 여기실 테니까요."

포차를 나서면서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 그는 천천히 걸었다. 내일부터는 아버지로서의 인생이 시작된다. 10년을 기다린 만큼 그 무게를 잊지 않고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병실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다. 아내와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새로운 가족의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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