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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YOU Oct 27. 2024

입원, 누군가의 Happy Ending

맨해튼 정신과의사(8)

입원, 누군가의 Happy Ending




어떻게 하면 이 실습생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잠시 흐르던 불편한 정적을 깨기 위해 한 마다를 꺼내려하는데 옆에 계시던 22년 차 사회복지사님이 나중에 다 알게 될 거라며 괜찮으니 먹을 수 있을 때 피자나 먹으라며 이 친구에게 피자조각 하나를 건네주셨다. 사회복지사님의 파워풀한 눈빛과 이 짧은 한 마디에 본과생은 건네주신 피자를 받아 조용히 먹기 시작했다.


난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나누는 농담이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행동을 하는 것은 결코 왠디가 겪고 있는 힘든 일들에 대해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게 아니란 걸, 우리는 그저 우리의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멘털이 털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도 인턴땐 나이브한 맘으로 세상을 바라봤으니. 이 의대생의 이런 생각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30분에 한 번씩 독방에 들려 왠디의 안전을 체크하고 포박된 손과 발을 모두 풀고 편하게 잘 수 있게 셋업을 해 두었다. 그렇게 4-5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왠디를 지켜주던 가드에게서 연락이 왔다. 왠디가 일어났다고.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들고 왠디에게 가니. 왠디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맙다며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너무 게걸스럽게 먹는 거였다. 예전의 그 책이 생각났다. 죽고는 싶은데 떡볶이는 먹고 싶어. 왠디가 식욕이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뭐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좋은 사인이기 때문이니까. 참고로 외래에서 환자분들께 물어보는 너무 당연하지만 중요한 두 가지 질문이 있다. 바로 잠과 식욕이다. 이 두 가지 본능이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성이 적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울증의 진단조건 중에도 이 두 가지가 포함이 되어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사회복지사로부터 왠디가 입원할 병원을 찾았다는 말을 듣고 왠디에게 알려주니. 왠디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느껴졌다. 많이 기다렸다는 듯. 보통 응급정신과에 오는 환자분들은 정신병동으로의 입원에 대해 거부감이 많은데. 참 의아했다.


왠지는 어린아이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물었다.


"언제 갈 수 있나요"


"아침에 새로운 스테프들이 오면 바로 트랜스퍼가 될 예정입니다."


"감사해요. 닥터 유."


왠디의 뜻밖의 반응에 난 그녀의 자살 소동은 병원으로 가기 위한 쇼였던가 하는 생각이 뇌리에 스치었다. 뮌하우젠 신드롬* 의 한 형태가 아닌가 싶었다.


옆에 있던 간호사님께서 속삭이신다.


"이번에 들어가면 12번째 입원이 될 겁니다. 한번 들어가면 안 나오려고 해서 의료진들이 애를 먹는다나 봐요..." 


12번... 뭔가 조금 더 명확해진 듯했다. 진단서에 진단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뮌하우젠 신드롬 (Munchausen syndrome) 은 인위성장애 (factitious disorder)라고도 한다. 환자 자신이 의도적으로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증상을 거짓으로 꾸며내어 치료나 입원을 유도하지만 이런 행위에 대한 대가는 자신이 환자가 되어 의료진들이나 주변인들로부터 관심을 받는 것뿐이라고 믿어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경험한 꾀병 (malingering)과 비슷한 행동양식이지만, 꾀병은 의도적으로 만든 증상의 목적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난 어릴 적 머리가 아프다며 학교에 빠진 적이 있다. 학교를 가지 않는 것이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머리가 아프다는 꾀병을 부린 것처럼. 


뮌하우젠 신드롬은 언뜻 보면 별 심각한 장애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예상외로 위험한 병 일 수가 있다.


내가 2년 전 내과에서 인턴으로 열심히 구르고 있을 때.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교수님께서 내게 새로운 환자를 맡아 주겠냐고 제안을 해 주셨다. 근데 이상한 건 그 환자는 내 동료의 환자였고 퇴원을 앞두고 계속 퇴원일이 미루어진 환자였기 때문이었다. 난 속으로 왜 이렇게 복잡한 케이스를 나한테 넘기는 거지 했는데. 교수님의 부탁도 있고 내 동료도 그 환자분을 버거워했기에 언제나처럼 No를 못하는 내 성격에 굴복했다. 


"좋습니다, 제가 맡을게요."


그때 담당 간호사 한분이 내게 다가와 걱정 어린 목소리로 그 환자에 대해 얘기를 해주었다. 인슐린을 맞을 시간이 아닌데 반복적으로 인슐린을 스스로 허벅지에 투여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나중에 물어보면 계속 부인을 하고 있다고. 그 환자는 퇴원을 앞두고 갑자기 저혈당 shock을 일으켜 퇴원일이 지연돼서 내 동료가 무척 당황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간호사님이 내 어깨를 툭 치시며 농담 삼아 얘기를 하신 기억이 난다.


"닥터 유, 내년부터 정신과로 가시죠. 혹시 이 환자를 보게 되면 잘 부탁해요."


그 환자의 이런 행위로 인하여 환자 자신의 생명이 위태롭게 될 수도 있었다. 현실적인 이익 추구가 없는 이런 행동들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고 솔직히 지금도 그 모호함은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행동을 보편화하는 건 무척 위험한 발상 이겠지만. 내 짧은 정신과 커리어를 돌이켜 보면 성격적으로 관심에 집착하시는 분들이나 어릴 적 관심받지 못하는 환경에 있던 분들이 아주 드물지만 종종 이 증상을 가지고 병원에 오시는 걸 알게 됐다. 부모나 가족의 무관심으로부터 정서박탈을 경험하고 보상심리로 의료진으로부터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려는 무의식적인 행동일까...


뮌하우젠 신드롬에서 한발 더 나아가면 대리 인위성 장애 (Factitious disorder by proxy)라는 장애가 있다.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해를 가하거나 증상을 만들어 내어 치료나 입원을 유도하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에게 해를 입혀 병원에 입원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아닌 자신의 아이를 환자로 만들어 헌신적으로 간호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동정과 관심을 받는. 


대리 인위성 장애 또는 대리 뮌하우젠 신드롬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2014년 1월 3일 Garnett Spears라는 5살의 어린아이가 뉴욕의 한 병원에서 사망선고를 받는다. Garnett의 어머니인 Lacey Spears는 오랫동안 치사량의 소금을 Garnett에게 계속 먹여 결국 뇌부종으로 사망하게 만들었다. Garnett의 어머니는 Garnett의 건강이 악화되는 모습들을 인터넷에 올려 그녀의 기이한 주목 욕구를 채웠다. 하지만 결국 그녀의 범죄는 들통이 난다. Garnett의 혈청 나트륨 레벨이 이상하게 높고 집에서 있는 시간보다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점, 어머니의 이야기와 실제 상황이 일치하지 않고, 병원에서 진행한 여러 가지 테스트 수치가 이해가 되지 않은 점등이 아동학대의 적신호로 간주되어 수사가 진행이 된 것이다. 그녀는 법정에서 25년의 형을 받고 이후 인위성장애를 진단받고 그것이 참작이 되어 20년형으로 감형이 된다. 하지만 법정은 그녀에게 가석방의 기회를 박탈해 버리고 2034년 6월 12일 전에는 출소가 불가능하도록 판결을 내린다.


이처럼 문뜩 보면 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 같은 이런 장애들은 심신이 미약한 아이들이나 노인들의 학대 또는 따돌림을 유발할 수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서 여겨져야 할 정신적인 질환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내가 만난 왠디의 케이스에서도 인위성 장애의 증상이 확연이 드러나 보이긴 했지만, 왠디의 행동 양상이 병적이던 아니던 왠디의 자해 형태가 너무 지속적이고 심각한 상황이었기에 왠디의 안전을 위해서도 입원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모든 스태프들은 알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입원이 스태프들도 왠디도 모두 만족한 행복한 결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왠디의 자살 소동 이후. 내가 야간 당직을 하는 동안 2번 정도의 call* 이 들어왔다.


*Call 이란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 레지던트에게 연락이 오는 것을 말한다.


다행히 두 Call 모두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일이 없을 땐 주로 레지던트는 당직실에서 잠깐 쪽 잠을 자며 콜을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간호사 분들과 사회복지사분들은 꼬박 밤을 새우며 상시 대기를 하셨다. 난 그분들과 같이 의국에서 그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다. 잠깐 자면 더 피곤한 것도 있고 해서.


그날 밤 이래 저래 작은 소동들이 있었지만 시간은 어느새 흘러가 의국의 창으로 해가 비춰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6:30 AM.


"예쓰~"


당직 내내 교수님을 깨우지 않은 내가 대견했다.


이 시간부터 레지던트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7시에 다른 교수님이 출근하시면 기필코 밤중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어보며 질문을 해 대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 약을 썼는지. 그 약의 부작용은 뭔지. 환자 노트에 이걸 왜 빠뜨렸는지…. 등등" 이렇게 1시간 정도가 훅 지나가기에. 야간 당직 레지던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6:55 AM 엔 병원을 나가려 안간힘을 쓴다.


문제는 다음 시프트의 레지던트가 일찍 와 줘야 얼른 인수인계를 하고 이 자리를 떠날 수 있는 것이다.


6:44 AM. 의국이 문이 열리고. 내 동료 티파니가 들어왔다. 세상 이쁜 티파니. 티파니의 등뒤로 아우라 빛이 보이는 듯하였다.


난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남아 있는 에너지를 총 동원해 속사포처럼 꼭 알아야 할 환자들의 정보를 전달해 주고. 가방을 주섬주섬 싸기 시작했다.


그러자 티파니가 그런다 "You can do it! Run Run”


혹시나 교수님과 마주칠까 병원을 부랴부랴 나서는데 저 멀리 왠디가 근처의 정신병원으로 이동하는 앰뷸런스에 탑승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를 보았는지 반갑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해주었다. 어제 그렇게 소란을 피우고 내 얼굴에 침까지 뱉더니 저렇게나 좋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나도 손을 들어 그녀의 쾌유를 빌어주었다.


토요일이 순삭 된 주말이었지만. 집으로 걸어가는데 괜히 실실 웃음이 났다.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그래도 큰 사고 없이 응급실을 잘 지켜내고 밤을 잘 버텼다는 안도의 웃음이겠거니.


집으로 가는 길에 난 언제나처럼 토요일 야간 당직후 하는 나만의 일요일 아침 리츄얼을 진행했다. 


맥도널드에 들려 해시브라운과 팬케익의 조화로운 행복한 아침을 영접하며 내 이빨 잇몸 사이로 흐드러지게 신맛을 전달하는 시원한 오렌지 주스 한잔의 리츄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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